다도방

눈을 보며 차를 마시는 그 즐거움 - 1월의 차

아기 달맞이 2010. 8. 14. 07:43

눈을 보며 차를 마시는 그 즐거움 --- 1월의 차


때에 맞추어 차를 마신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차를 마신다는 일은 그냥 더운물에 찻잎 넣어 우려 마시면 되는 그런 쉬운 일이지만, 정말 맛있는 차 한 잔을 마신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주위환경과 어울리는 차 한 잔, 그리고 권하는 사람의 향기가 그대로 전 해지는 차 한 잔을 우려내기란 차에 웬만큼 정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옛날 《대관다론(大觀茶論)》이란 다서(茶書)에서 차를 따는 날짜를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차 만들기에 좋은 날씨를 만나 면 축하한다고 하였습니다. 차만들기가 그러할진대 차마시기에 좋은 때를 만나면 우리 선조들은 그 흥을 시로 표현하거나 좋은 사람과 마주하여 정담 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동다송(東茶頌)》에 일부 전하는 《동다기 (東茶記)》에서, 아침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

뜬 구름이 비 개인 하늘에 곱 게 떠 있고, 낮잠에서 갓 깨어났을 때, 맑은 달이 푸른 시냇가에 휘영청 비추일 때 차마시기 좋다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자연과 어울린 차 한 잔, 실로 멋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멋스러운 차생활은 사계절의 구분이 명확한 우리 나라에서는 더욱 여러 가지 차생활의 형태로 나타났습 니다.

그런 차생활을 여러 문헌과 차시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도 오늘날의 차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넉넉했던 우리 선조들 의 마음에 깃들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혹 솔방울로 차를 끓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솔방울 로 차를 끓인다는 이야기는 명나라 전예형(田藝衡)의《자천소품(煮泉小品)》 에 보입니다. 전예형은 추운 겨울철에 솔방울을 가득 쌓아두고 차를 끓이면 더욱 그 고상함이 갖추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솔방울로 차를 끓인다는 이야 기는 작은 솔방울이 불 속에서 벌어지면서 뿜어 낼 솔내음 속에,

솔방울 하 나하나를 던지면서 화력을 조절하였을 옛 사람의 슬기로움이 배어나오는 듯 한 맑은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끓인 차는 과연 어떤 맛이 났을까요?

 일찍이 고려의 진각국사(眞 覺國師)는 솔방울로 차를 끓이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고개 위 구름은 한가로와 흩어지지 않는데

시냇물은 어찌 그리 바삐도 달리는가

차를 달아니 차는 더욱 향기로와라

진각국사는 솔방울로 달인 차가 여느 차보다 더욱 향기롭다고 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도 차부뚜막에서 솔방울로 차를 끓인 시를 남겨 놓고 있는 것 을 보면 솔방울로 차를 끓인다는 이야기는 차의 은근한 멋을 아는 여러 선 조들이 즐겨하떤 찻물 끓이던 풍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겨울의 차생활 가운데 더욱 시정이 넘치는 일은 아마도 천지에 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며 그 눈으로 차를 마신다든가,

눈이 온 뒤 적막함 속에서 화로에 불을 일구어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는 일이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중국 허차서(許次序의 《다소(茶疏)》에서는 큰 비나 눈이 올 때엔 차를 마시지 말라고 하였습니다만,

하늘과 땅을 온통 은빛으 로 바꾸는 흰눈을 보면서 차를 마시는 일이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것입 니다.

그 눈을 한 웅큼 떠서 화로에 녹여 김이 오르고 솔바람 소리가 밀려올때,

다관에서 푸른 차잎사귀가 마치 봄바람에 나부끼는 깃발과 같이 피어 오르 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차와 선(禪)이 하나가 되는 시선일미( 詩禪一味)의 경지가 아닐까요,

초의(艸衣) 스님의 절친한 차벗이었던

홍현 주(洪顯周)의 누이 유한당 홍시(幽閑堂 洪氏)는

눈을 보며 차를 끓이는 즐거움을 다음과 같은 시로 남겨 놓고 있습니다.

처음 벼루를 열자
밤은 시를 재촉하네
북두칠성은 하늘에 걸리고 달은 더디 나온다
등을 달고 한가롭게 앉은

높이 솟은 누대 위 눈을 보며 차를 달이는 그 즐거움 나는 안다네

눈을 보며 차를 달이는 즐거움은 어떤 즐거움이었기에

유한당 홍씨는 추 위를 무릅쓰고 높이 솟은 누대 위에서 차를 달여 마셨을까요. 한참 동안 갈 아야 되는

벼루의 효능을 잊은 지 오래된 우리로서는 아마도 유한당 홍시의 차는 맑은 차향기와 투명한 대지의 기운이 하나가 된

그런 찻자리에 어울린 한 잔의 차였다고 짐작할 수밖엔 없지요.

눈을 보며 차를 마시는 즐거움과 함께 우리 선조들이 즐겨하시던 맑은 일 은 눈을 녹여 차를 끓이던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렸을 적에는 눈이 내 리면 혀를 한껏 내밀고 눈을 입속에 집어 넣거나,

손바닥으로 눈을 받아 먹 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잊혀졌지만 우리 어렸을 적에 눈을 보며 즐거워하던 그 마음 은 차를 마시던 옛 어른들도 같으셨던 모양입니다. 중국의 정위(丁謂)라는 다인은 눈오는 날 눈으로 차를 끓이는 것을 즐겨하여 귀중한 차를 아끼고 아껴 서랍 혹에 깊이 넣어 두고서 눈오는 날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눈이 내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첫눈은 늘 반갑다고 어느 시인은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눈은 차의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운 밤 손님 이 오면 차로 술을 대신하여 대접한다는 옛 싯구 한야객래다당주(寒夜客來 茶當酒)가 있습니다.

반가운 눈오는 날 오래 보지 못하던 친구와 차 한잔을,

찻잔으로 손을 녹여가며 뜨거운 차를 마신다는 것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훈훈하여집니다.

눈 녹인 물로 차를 끓인 기록을 남긴 최초의 사람은 송나라의 도곡(陶穀) 입니다.

그는 눈 녹인 물로 덩어리 차를 끓여 마셨습니다. 그가 남긴이 기록이 후대에 두고두고

차의 맑고 운치 있는 옛 이야기로 전하여지고 있습니 다.

어릴 때 우리가 혓바닥으로, 손바닥으로 받던 눈을 우리 선조들은 입이 좁은 매병에 담았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담은 물을 땅 속에 묻어 두고 귀한 차를 마실 때 조금씩 나누어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입이 좁은 매병을 대지의 정기를 담은 눈을 받으려고 내놓았을 옛 다인들. 매화가지 내린 눈을 조심스럽게 병에

 옮겨 놓던 옛 다인들. 참으로 성에 낀 유리창 너머에 보이는 그리운 얼굴들입니다.

-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