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향기 어리는 이른 봄 날의 차 - 2월의 차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는 2월입니다. 바야흐로 이른 봄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느 계절이지요.
이 달에는 입춘과 우수의 절기가 들어 있고, 차례를 지내는 설날이 있습니다.
정말 한 해의 시작은 입춘부터라고 할 수 있지요.
해를 넘기면서 차는 맛을 잃어 싱싱한 햇차가 벌써부터 그리워집니다. 이 렇듯 햇차가 그리워지는 계절에 우리 선조들의 차생활은 어떠하였는지 참으 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규경(李圭景)의《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演文長箋散考)》에는 매화꽃이 바야흐로 피려고 할 때 찻물이 끓기 시작한다는 차 기록이 나옵니다. 매화 꽃과 차가 어울리는 이야기는 여러 문헌에서 나오는데,
차를 마시면서 매화 를 감상하는 이외에 매화로 차를 달여 마신 기록도 보입니다. 명대의 주권( 朱權)은 그의《다보(茶譜)》에서 잔을 먼저 데워서 가루차를 내는 법을 설 명한 뒤에, 다음과 같이 매화차에 관한 기록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과일로 대신하여 차를 내지만, 매화나 계수나 무꽃, 그리고 말리(茉莉)꽃이 더 좋다.
이 꽃봉오리 여러 개를 찻잔에 넣은 다음 조금 지나면 꽃이 피기 시작한다.
찻잔이 입 술에 가 닿지 않아도 향기가 코에 넘친다.
이 기록은 비교적 이른 시기의 꽃차에 관한 기록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계수나무꽃과 말리꽃으로 만든 꽃차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차와 꽃의 만남은 운치 있는 일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산업 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수나무가 많은 중국의 계림에서 나는 계수나무꽃차나, 우리가 흔히 쟈스민차라고 하는 말리꽃차는
이런 오랜 전 통 속에서 개발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당 최규용(錦堂 崔圭用)은 주권과 같은 매화차를 내십 니다.
이른 봄 범어사에서 피는 매화 한 가지를 조심스레 옮겨와, 매화 봉 오리 하나를 더운 김이 오르는 찻잔에 넣고서
조금 기다리면, 매화꽃과 차 가 어울린 한 잔의 차가 됩니다. 이런 풍류스런 차를 마시면,
문득 가슴속 에서 매화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차와 꽃의 어울림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견해도 일찍부터 있 어 왔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 이의산(李義山)은 꽃을 보면서 차를 마시 는 것은 살풍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다서에서 차에 다른 향기로 운 과일이나 꽃을 넣는 것을 무척 꺼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차는 새로운 차가 좋고, 먹은 오래 묵은 먹이 좋다고 합니다.
해를 넘긴 덩이차는 불에 구워서 말린 다음 가루를 내어 마신다는 기록이 채양(蔡讓) 의 《다록(茶錄)》에 보입니다.
묵은 잎차를 정갈한 한지 위에 올려놓고 은 근한 불에 살짝 불기운을 쪼여 차맛을 기르는 방법은 육우(陸羽)의
《다경( 茶經)》에서도 보입니다만, 《고반여사(考槃餘事)》의 차를 저장하는 법에 의하면 차를 만든 다음에도 하지와 추분, 동지 등 모두 다섯번에 걸쳐 차를 볼에 쪼여 보관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차를 보관하기 용이하 지 않던 시기에 생긴 차 보관법입니다.
냉장법과 진공포장 등 차의 보관이 쉬워진 오늘날에 이와같은 방법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개 봉한지 오래된 차를 정갈한 한지에 올려 놓고 불에 쪼여 말린 뒤 우려서 마시면
종전에 맛보지 못한 새로운 차맛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매화와 어울리는 꽃은 수선화와 동백꽃입니다.
중국인들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수선을 방안에 들여 놓고 수선화가 피기를 기다립니다.
수선화는 금잔옥대(金盞玉臺)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즉 금으로 만든 잔과 옥으로 만든 잔받침과 같은 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강희안(姜 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보면 우리 선조들도 그와같은 멋을 가지 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차 가운데에도 수선차(水仙茶)가 있습니다.
이 차 이름을 처음 들으면 쟈스민차와 같은 꽃차 같지만 꽃차가 아니고, 수선이라는 차나무 품종 으로 만든 것입니다.
수선차는 무척 향기로우며, 그 맛이 진하여 여러번 우 려내도 그 맛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나오는 우수한 차이지요.
2월의 차생활 가운데 수선화와 더불어 차실에 어울리는 꽃으로는 동백?ㅄ? 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민요의 하나인 《동백꽃타령》에 보면 다음과 같 은 가사가 있습니다.
가세 가세
동백꽃을 따러 가세
빨간 동백 따다가는 고운 님 방에 꽃아 놓고
하얀 동백 따다가는 부모님 방에 꽃아 놓으세
이런 민요 이외에 차를 사랑한 많은 우리 선조들은 동백꽃을 노래하였습 니다.
산다(山茶)라고 노래되는 꽃이 바로 동백?ㅄ봉都求?.
일본 사람들은 차실에 가장 어울리는 꽃을 무궁화와 동백?ㅄ봉繭箚? 합니다. 일본인들이 차실에 무궁화를 꽂기 좋아하는 것이 무척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동 백?ㅄ봉? 좋아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에서 무궁화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무궁 화와 동백꽃이 잎 밑에서 숨어 피어나면서 쉽게 지는 모습에서 잠시 이승에 스쳤다 가는
바람과 같은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빨간 동백 한송이 고운 님 방에 꽂아 놓고 매화 향기 어리는 차를 마십니 다.
매화 향기, 차 향기 어린 작은 찻잔 안에 봄이 눈 틔우고 있습니다.
-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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