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성역(聖域)’이라고나 할까. 그 바깥 마을에 ‘속계’란 이름이 붙은 게 이 성역과 대비된 ‘세속세계’라 해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운문면 신원리 그 ‘속계마을’서 남쪽 운문분맥을 향해 들어가는 계곡은 ‘큰골’이다.
그걸 디뎌 나아갈 때 먼저 나타나는 것은 상가촌인 ‘황정마을’이다. 좀 더 들어가 닿는 입장료 징수소 일대는 ‘사기점마을’ 터다. 10여 년 전 공원부지로 편입돼 23가구가 이주해 나갔다고 했다.
거길 통과하고 솔밭을 거치면 운문사 큰절에 닿는다. 큰절 서편 물 건너 땅은 ‘장군평(將軍坪)마을’ 터다. 신원리 어르신들은 그 마을이 1980년대에 뜯긴 것으로 기억했다. 일반 관광객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그 즈음의 운문사 큰절까지다. 더 깊은 골로 들어가려면 또 한 관문을 거쳐야 한다. 더 안쪽에 자리한 ‘사리암’의 기도객만 통과시키는 통문이다.
그 관문을 넘어 얼마 안 가면 운문사의 ‘문수선원’이 나타난다. 더 서편에서 흘러내리는 한 지류가 거기서 큰골에 합류한다. 합수(合水) 모습이 두드러지지 않아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그 지류 또한 ‘큰골’만큼이나 굉장하다.
그 지류의 전래 명칭은 ‘못골’이라고 했다. 큰골과 못골을 가르는 산줄기는 운문산 정상서 북으로 내려서는 ‘운문북릉’이다. 그 능선을 정상서 타고 내리자면 초입부터 서편 못골 상류에서 장관이 펼쳐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절벽 계곡과 그 바닥서 솟아 오른 암괴기둥이 외경할 정도다. 그런 도중 산줄기는 잠깐 떨어졌다가 1,053m봉으로 되솟는다. 사방이 직벽이고 남쪽으로만 겨우 접근을 허용하는 암봉이다.
누군가가 거기다 ‘독수리바위’라는 표석을 세워뒀다. 하나 멀리서 보면 도사려 앉은 부엉이 같은 느낌이 더 진하게 와 닿는 봉우리다. 그 구간을 지나면 고도가 많이 떨어져 830~860m 높이로 한참 이어가다가 커다랗게 구획된 별도의 산덩이로 올라선다.
최고점 높이는 893m. 그 정점과 더 앞선 지점에 헬기장 2개가 연이어 자리 잡았다. 그 산덩이가 조금씩 낮아져 갈 때 직진 방향으로 곁줄기가 빠져나간다. 동편 큰골의 ‘천문동’으로 내려서는 지릉이다. 본능선은 그와 달리 서편으로 굽어간다.
그리고는 얼마 뒤 마치 산줄기가 끊긴 듯한 느낌까지 주면서 582m재로 폭락했다가 639m봉으로 다시 솟구친다. 큰골 상류서 내려올 때 가장 우뚝하게 솟아 보이고 못골 상류서 내려올 때는 매우 큰 암괴절벽으로 두드러져 보이는 뚜렷한 지표다.
그게 높아 보이는 건 봉우리 양편이 매우 낮기 때문이고, 두드러지는 것은 산줄기가 굽느라 진행방향 전면으로 맞닥뜨려 보여서다. 그렇게 되바라진 데다 암괴절벽으로 하얗게 분칠까지 하고 있다보니 이 봉우리는 운문산과 호거산 구간 운문분맥 위에서도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못골은 이렇게 내려서는 운문북릉과 더 서편 호거능선 사이에 형성된 계곡이다. 운문북릉의 종점이자 못골의 초입인 문수선원서 골 바닥으로 걸어 오르자면 15분 후에 사방댐에 도달한다. 거기까지는 널찍한 계곡도로가 개설돼 있다.
그리고 사방댐서 5분쯤 더 오르면 못골의 하이라이트라 할 풍광이 펼쳐진다. 물길이 매우 넓어지는데다 골 바닥 또한 굉장한 반석들로 덮인 곳이다. 그것은 ‘못안(골)’이라는 상당히 큰 지류가 합류해 오느라 생긴 지형이다.
못골과 못안골을 가르는 능선은 호거산 정상 962m봉서 출발해 내려선다. 지금 살피는 그 합수점서는 저 분계능선을 거꾸로 타고 오르는 등산로도 발달해 있다. 합수점을 지나 못골 본류를 20여분 더 오르면 아까 봤던 639m봉 암괴절벽을 지난다. 다시 5분쯤 더 가면 마지막 평평하고 넓은 쉼터가 나타난다.
그 상류의 모든 골들이 모여드는 집합소 같은 곳이다. 본류는 거길 지난 뒤 운문산 정상이 있는 동쪽으로 곧장 오른다. 그 안이 바로 절경 암괴단애들이 포진한 곳이다. 하지만 거기로의 진입로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워낙 험한 계곡이라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결과다. 대신 등산길은 서편으로 굽어 나 있다. 40여분 더 걸어 딱밭재로 이어가는 것이다. 문수선원서 여기 이르는 골을 그 아래 신원리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못골’이라고 지목했다.
거기에 못(저수지)이 있어서 이 이름이 붙었다는 경우가 있고, 지형이 못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는 경우도 있었다. 또 ‘못안’에 대해서는 그냥 ‘못안’이라고만 불렀을 뿐 골이라는 말은 잘 붙이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골은 ‘목골’로 표기되거나, 상류 부분만 가리켜 ‘천문지골’이라는 더 알 수 없는 이름으로 표시된다. 청도군수·경산소방서장 명의의 현장 구조팻말들이 그렇게 전파하고 있으니 더 답답하다.
1대5,000 지형도가 ‘목골’이라고 잘못 표시하는 것 또한 큰 문제다. 장기적으로 전래 지명을 전승할 유일하다시피 한 수단이 그것인데 이래서 될 일이 아니다. 다음으로 축척 큰 1:25,000 지형도만 해도 골짜기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데 말이다.
다시 문수선원 지점으로 되돌아 가, 거기서 못골 대신 큰골을 따라 오르면 곧 사리암 주차장에 도달한다. 거기 서 있는 출입금지 안내판에는 ‘목골’ 대신 ‘못골’로 돼 있고, ‘큰골’과 함께 ‘천문지골’이란 이름을 나열해 놨다.
뭔가 근본조차 정리 안 된 듯하다. 사리암 주차장서 출발해 20분쯤 큰골을 오르면 매우 큰 세 골의 합수점(合水点)에 이른다. 왼편(동편)에서 내려오는 ‘학소대골’, 오른편(서편) 큰골(아랫재골), 지룡능선 속 배너미골 등이 합류하는 곳이다. 배너미재 너머의 ‘삼계마을’ 자리와 비슷한 지형인 셈.
그러다 보니 삼계마을 쪽에 평평한 터전이 생겨나 있듯, 여기 또한 한 마을이 들어서기 족할 넓은 터가 형성돼 있다. 이곳을 신원리 어르신들은 ‘천문동’ 혹은 ‘천문골’이라 지목했다. 신라 때 ‘천문(天門)갑사’라는 큰 절이 있었을 것으로 지목되는 곳도 바로 여기다. 근세에는 ‘천문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최근엔 10여 년 전까지 한 주민이 거주하면서 벌을 치고 행락객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지금 그 이름은 엉뚱하게 못골에 가 붙여져서는 ‘천문지골’이라는 더 왜곡된 합성어로 변질돼 있다.
거기에 마치 ‘천문지’라는 저수지가 있었던 듯 말해지게 된 것이다. 이 천문동서 갈라져 오르는 세 골 중 그냥 큰골이라 부르거나 기껏 ‘아랫재골’ 정도로 불러왔다는 운문북릉 쪽 계곡이 지금 ‘심심이골’로 더 잘 통하는 것도 문제다.
동편 지룡능선 쪽에서 그것으로 합류해 드는 골은 그냥 ‘학소대골’ 정도로 지칭됐으나 현재는 응당 ‘학심이골’로 유통된다. 지명 왜곡이 이렇게 심각하다. 이들 아랫재골과 학소대골을 가르는 능선은 가지산 정상에서 북으로 내려서는 ‘가지북릉’이다.
비 내리던 어느 날 합수점서 출발해 올랐더니 가지산 정상에 도달하는데 거의 두 시간 반이나 걸렸다. 출발 한 시간 안에 고도를 대폭 올려 이 능선 유일의 헬기장에 도달한 뒤, 20여분 간 좀 편안히 가는가 싶었으나 다시 두 차례에 걸쳐 절벽을 올라야 했다.
도합 2시간 걸려 도달한 곳은 가지북릉의 하이라이트인 1,125m ‘청도귀바위’ 혹은 ‘북봉’이다. 정말 장쾌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 가지북릉 서편의 아랫재골은 매우 편안하고 원만하다.
초입의 20여분간은 길이 거의 임도 같고 풍광조차 조신하다. 등산객들이 걷기 심심하다고 해서 ‘심심이골’이라 부르게 됐다는 농담이 진담같이 느껴질 정도다. 도합 1시간이면 도달하는 ‘아랫재’에 선 낡은 나무이정표는 ‘운문산 1.2km, 가지산 3.87km, 남명초교 3.9km’라고 안내한다.
남쪽으로 넘어서면 밀양 얼음골 상양마을이며, 그 일대 시례 중심지에 자리한 게 남명초교다. 이와 달리 학소대골은 험하다. 협곡이 이어져 산비탈로 오르락내리락 피해 다녀야 하는 구간도 짧잖다. 그렇게 40여 분 오르면 다시 두 골이 하나 되는 합수점에 도달한다. 둘 중 어느 쪽으로 진입해도 금방 폭포를 만난다.
서편 것은 ‘학소대폭포’로 불린다 했다. 그 아래 바위에 ‘鶴巢臺’(학소대)라고 새겨놓은 것은 거기가 학의 둥지 자리라는 뜻일 터이다. 동편 것은 ‘비룡폭포’라 불리는 바, 두 폭포로 대표되는 두 골을 등산객들은 흔히 ‘좌골’ ‘우골’이라 나눠 부른다.
이들 좌·우 골의 분계능선은 가지산 정상 동편의 1,118m봉서 내려서는 산줄기다. 이걸 타고 오르다 보면 서편 계곡 안으로 굽어드는 산길이 나타난다. 학소대 폭포 위 골을 통해 가지북릉 쪽에 바짝 붙어 1,118m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20여 분 동안 아주 편안히 이어지나 나중엔 급등하느라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반면 가름능선을 타다가 동편 지룡능선 밑 골로 들어서면, 얼마 후 1,074m봉서 내려오는 짧은 능선으로 올라서게 된다.
그 능선길은 1,074m봉 북편으로 우회하는 임도와 연결돼 있다. 누군가가 쌓아둔 돌탑이 이 등산로 들머리 표시다. 합수점서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거기서 1,118m봉은 20분 거리다. 1,118m봉은 주능선 답사 때 본 그 헬기장이 있는 곳이며, 가지산 정상은 그곳서 20여 분 떨어져 있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지방제휴사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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