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찻사발은 매우 작은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하늘의 숨결과 땅의 정기로 피어 올린 찻 잎의 덕성과 인간의 마음을 담아 내는 그릇이다. 묵전요 김태한 찻사발 / 변희석 기자
찻사발의 명칭
도자기 부위에 대한 명칭은 동서양이 모두 인체에 비유하는 공통성이 있다. ‘입술이 두툼하고, 어깨가 당당하다. 허리 밑이 너무 훌쭉하지만 굽 다리는 튼실하다’ 등 우리 몸의 일부처럼 말을 한다.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마지막과 흙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도자기의 시작이 결국 한 이치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찻사발의 부위에 대한 명칭이나 종류별 찻사발의 우리식 명칭이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일본 다인들이 그동안 우리 찻사발을 종류별로 명칭을 붙이고 하나 하나에도 그들 나름의 이름을 지어 놓았다. 우리 그릇이면서도 일본 사람들이 정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공감이 가지않는 이름을 제각기 아무렇게나 지어 부를 수도 없다. 뜻있는 사람들이 우리 찻사발에 이름 붙이는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서 의견을 모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현재 정립되지 않은 찻그릇 명칭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다인들이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사용하는 찻사발에 대한 명칭이나 용어는 필자 개인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 많음을 밝혀 둔다.
찻사발의 차격(茶格)과 크기
사발은 직선의 굽과 반구형의 곡선으로 된 몸통과 원형의 전(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가장 단순한 직선, 곡선, 원형이라는 이 세 요소가 조합되어 한없이 다양한 형태의 사 발을 만들어 낸다.
▲ 찻사발이 보통 사발과 다른 점은 차격(茶格)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차격은 찻사발이 가지고 있는 우아함, 의젓함, 당당함을 의미한다. / 사진 雲.中.月 제공 | |
사발은 두 손으로 둥근 물체를 공손히 받쳐든 반구형의 형태로 그 크기가 한 손만으로도 다루기 편하고 내용물 또한 어느 정도 충분한 양을 담을 수 있다.
또 두 손으로 안았을 때 어느 정도 양감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부담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어서 먹고 마시는 기능에 알맞은 그릇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사발이 모두 찻사발이 되지는 못한다. 찻사발이 보통 사발과 다른 점은 차격(茶格)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차격이 있는 사발이란 차 정신에 맞는 분위기가 있는 사발로 아취, 기품, 충만한 힘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는 사발을 말한다.
찻사발은 다인 손에서 오래 머무르는 그릇이므로 차격이 있으면서도 크기와 무게가 적당해 야 하고 손으로 안는 맛도 편안해야 한다. 찻사발의 높이는 보통 두 손으로 감싸 안았을 때 손바닥 넓이만한 높이거나 이를 기준으로 조금 높고 낮아도 관계없다. 또 사발은 입의 크 기에 따라 큰 것은 입 지름이 17cm, 중간 것은 15cm, 작은 것은 12cm 정도 되고 큰 것을 발(鉢), 중간 것을 완(碗), 작은 것을 소완(小碗)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큰찻사발, 중찻사 발, 소찻사발이라고 한다.
찻사발 부위별 나눠 보기
찻사발 부위 명칭
▲ 찻사발 단면도 부위별 명칭 | |
찻사발의 굽을 제외한 겉 전체 표면을 겉울이라하고 찻사발의 안쪽 표면 전체를 안울이라고 한다. 겉울은 다시 입술 바로 밑 부분을 어깨, 겉울의 중간 부분을 배, 배와 굽 바로 위까지의 중간을 허리라고 한다. 허리밑에서부터 굽 바로 위까지를 허리붙이라고 한다.
안울 쪽은 겉울의 배자리에 해당하는 곳을 차수건 자리라고 한다. 이는 차수건으로 찻사발을 닦을 때 엄지손가락 끝이 닿는 부위다. 또 겉울의 허리자리에 해당하는 안울 자리를 차솔자리라고 하는데 솔질을 할 때 솔이 움직이는 공간부위를 말한다. 안울 밑바닥 중심에 둥글게 살짝 패인 곳을 차고임 자리라고 한다.
찻사발의 감상
찻사발은 매우 작은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하늘의 숨결과 땅의 정기로 피어 올린 찻 잎의 덕성과 인간의 마음을 담아 내는 그릇이다. 이때 인간의 마음이란 차를 달일 때 자신 과 상대를 위해 차의 신령스런 기운을 가능한 잃지않고 살려내려는 지극한 정성을 말한다. 우리가 찻사발을 감상할 때는 사발 형태의 조형성, 유약의 상태, 소성(燒成)조건, 제작수법에 유의해야한다.
사발의 조형성을 볼때는 굽의 모양, 크기를 주시하고 그 굽위로 뻗어 나간 울선(몸통선) 오름새의 힘과 굽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 찻사발은 도공의 마음과 흙과 불이 완성하는 작업이다. 묵전요 장작가마 작업/ 변희석 기자 | |
유약의 상태를 볼 때는 속살흙과 유약이 어우러져 나타내는 질감, 유약의 확산과 응결상태, 유약의 투명성 여부와 빛깔등에 관심을 갖는다.
소성조건이란 흙으로 만들어진 사발이 어떤 상태의 불속에서 새 생명을 얻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을 말한다. 가마 속의 불이 맑은 불이었는지, 연기가 있는 탁한 불이었는지, 그 중간 불이었는지 또 얼마나 높은 온도였는지에 따라 그같은 요인들이 사발표면의 질감과 빛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눈여겨 본다. 제작수법에서는 몸통의 물레선과 굽을 깍아낸 칼질등에 표현된 자연스러움, 운동감, 힘 등을 느껴보고 사발을 안았을 때 이러한 것들이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맛을 감상해 본다.
그러나 이상에서 말한 외형적 감상법에만 마음을 뺏겨 정작 사발이 주는 큰 의미를 놓쳐서 는 안된다. 사발의 형태를 이루는 울의 선은 굽에서 시작해서 사발의 입술에 이르러 그 오 름새의 흐름이 끝난다. 그러나 또 다른 눈으로 보면 오름새의 선은 입술에서 시작하여 그 울선의 곡률을 따라 공간으로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작은 찻사발의 공간은 확장하면 무한 공간을 담아 내고 축소하면 다시 본연의 몇치 안되는 작은 공간으로 돌아온다. 차사발은 작은 그릇에 불과하지만 청정한 하늘과 차나무의 생명력으로 끌어올린 땅의 정기와 차를 통해 자신과 남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의 인격을 하나로 모아 담아 낸다. 차의 정신에 비추어 세계를 보려고 하는 다인들에게 있어 찻사발은 지상의 모든 그릇중에 가장 큰그릇이 된다. 다인이란 차그릇이 담고 있는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 차생활은 아름다움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티&피플 제공 | |
이와 같은 생각은 사람에 따라서 지나친 추상적 관념론이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다. 그 러나 사물은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그 의미대로 내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내가 의미를 주 었지만 나중에는 그 의미에 의해 내가 만들어진다. 모든 구체적인 낱낱의 사물은 자신을 다 듬는 화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아름다운 시는 의미심장하고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명상으로 이끄는 대상으로 나에게 다가 오면서 하나의 화두가 된다. 다인들에게 있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을 담는 찻사발은 영원 한 화두의 대상이면서 인생의 역정(歷程)을 함께하는 도반이기도 하다.
/김동현 (차문화 연구가)
김동현은 다회(茶會) '작은 다인들의 모임' 회장이고 차문화 공예연구소 운중월(雲中月)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는 흙과 나무로 차 생활에 소용되는 기물을 만들며 그 것들을 사용함으로써 생활이 생기 있고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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