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살림을 위해 한잔의 차를 마시면서 자신의 내면 깊숙이 알아차려 가면 한 송이의 차 꽃에서 또는 한 잔의 차 속에서 우주의 전(全)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차 마시는 것이 그대로 우주의 몸짓이요. 생명살림의 아름다운 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차 마시는 근본목적을 이해한다면 차 마시는 행위 자체가 항상 수행의 방편이면서 차 마시는 그 자리가 수행도량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지운스님 -
우리가 분노를 느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분노라는 감정속에서 순간 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화를 내고 얼굴이 벌개지고 긴장으로 몸이 떨리며 어찌할 바를 모른채 감정을 분출하지만 그 감정에
대해서 차분하게 생각해 볼 여유는 없습니다.
그러한 감정은 곧 사라지지만 때가 되면 반복적으로 의식의 표면에 떠오릅니다.
만일 우리의 감정과 느낌, 그 자체를 거부하지 않고 인정하면 우리 의식은 그 감정의 뿌리를
치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것입니다.
우리 내부에 분주히 활동하고 있는 의식의 움직임을 거부하지 않은 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깨어있는 삶의 시작일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기대어 쉴 수 있는 진실되고 아름답고 선한 것이 필요합니다.
깨어있음에 기대어 쉬는 것,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에 온 몸과 온 마음을
다 기울일 수 있는 힘인 깨어있음에 귀의하는 것은 안전한 것이고 전혀 추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틱낫한스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물 한잔을 마실 때 물 한잔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게 바로 깨어있음입니다.
우리가 앉거나 걷거나 서거나 숨쉬거나 할 때 우리가 앉아있고, 걷고, 서고,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린 깨어있음의 씨앗과 접한 것이고 이렇게 며칠이 지나면 우리의 깨어있음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깨어있음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는 빛입니다.
깨어있음에서 지혜가 나오고 깨달음이 나오고 사랑이 나옵니다.
반대로 깨어있지 못한 삶에서 에서 두려움이 나오고 성냄, 갈등 그리고 고통스러움이 나오는 것입니다.
영혼의 스승들은 우리 모두 내부에 깨어있음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던 것들과
사소한 듯이 보여 무시하던 것들과 습관적으로 일어나서 인지할 수 없는 것들을
다시금 되돌아 볼 때 우린 그 씨앗과 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깨어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귀의하는 것이 매일 하는 수행입니다.
깨어있는다는 것은 새로운 의미에서 새로운 삶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것입니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깨여있음을 실천해 나아가는 하나의 좋은 방편이 됩니다.
차를 따르고 찻잔을 조심스럽게 놓고 차의 색깔과 향내 그리고 맛의 변화를 느끼는 것 자체가
깨어있음의 실현입니다.
여기에서 지운스님의 차수행법 강의집인 '찻잔 속에 달이 뜨네'(법공양)을 중심으로
차와 깨어있음에 대해서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지운스님은 차를 따르고 찻잔을 조심스럽게 놓고 정성을 다하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자각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조심스러움이 바로 주의 집중이고 자기 비움이고 상대방에게 끌려 가지 않음입니다.
이는 자신이 스스로를 아는 것이기에 마음을 챙김이라 하며 그대로 정념(正念)입니다.
정념이 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상대를 주관적 시각으로 고정시키거나 자신을 내세우는 등의 번뇌는
일체 용납이 되지 않고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각(차를 우리는 사람)이 차를 정성스럽게 우려내어서 손님에게 차 공양을 올리는 것은
또한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작업입니다.
공양받는 손님도 그 순간에는 빈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과정이 그대로 빈 마음으로 서로를 수용하게 됨으로
마음의 본래면목이 서로 통하게 됩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시기 전에 먼저 찻물의 색깔을 주시합니다
차수행은 먼저 명상을 통해여 마음을 정화시키고
말과 생각을 떠나는 선(禪)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말합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시기 전에 먼저 찻물의 색깔을 주시합니다.
연녹색이나 표현할 수 없는 빛깔은 맑고 투명합니다.
미묘한 빛깔, 맑고 투명한 빛깔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이 맑고 투명하다고 명상합니다.
그 빛깔을 무한히 확대해 갑니다.
먼저 작은 연못을 연상하여 나아가 잔잔한 호수를 연상하다가 바다의 맑고 투명함까지,
마음이 그와 같음을 명상합니다.
더 나아가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하늘을 연상하여 마음도 그와 같음을 명상합니다.
그러면 맑고 투명한 마음이 무한히 확장되어 가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맑고 투명해 집니다.
이 명상을 계속해 가면 마음의 본성인 맑고 투명함이 무한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바늘구멍 같은 좁은 자신의 마음이 무한히 확장되어 작은 일에 매이지 않고 관대해지며
큰일을 당해도 대범해지며 시야가 한없이 넓어집니다.
맑고 향기로운 차향기를
자신의 마음에 대입하여 명상합니다
다음은 차향기를 맡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차향기를 자신의 마음에 대입하여 명상합니다.
마음의 향기는 더러운 몸의 냄새와 정신적 냄새를 지웁니다.
코와 입안에 차향기가 가득 함을 연상하고 점점 확대하여
온 몸 안에 차향기가 가득함을 명상합니다.
나아가 몸 밖으로 온 몸을 감싸 안음을 연상합니다.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향기로 투과시켜서 모든 맑지 못한 냄새를 정화합니다.
즉 담배냄새, 술냄새, 탁한 음식으로 나는 모든 냄새와 구취, 송장냄새 등 악취를 제거합니다.
정신적 냄새로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더럽고 탁한 기운,
물건을 태우는 기운, 무지의 기운, 이기심으로 인한 차고 냉한 기운 등을 차향기로 정화합니다.
느껴지는 맛의 변화를 잘 주시하는 것
그 다음은 느껴지는 맛의 변화를 잘 주시하는 것입니다.
차 맛의 변화추이를 처음과 중간과 끝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차 맛이 생기는 순간순간 차 맛이 사라지는 순간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정신적 물질적 현상이 똑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때는 모든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면 모두 똑같이 한 맛이 됨을 명상합니다.
즉 시간적으로 무상이며 독립된 실체가 없어 공이며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무아(無我)입니다.
그리하여 차 맛의 고유한 어떠한 실체도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즉 무미의 맛을 체득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무미의 한 맛을 바다의 한맛으로 연상하면서
생각과 몸의 현상과 밖의 모든 현상들도 무미의 맛과 같이 무실체임을 확장해 가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물과 그에 상대하여 일어나는 정신작용이 마치 인드라망의 그물 처럼
상호의존하고 있음이 확연해지고 동시에 평등해진 하나의 맛으로 관통됨을 체험합니다.
이 자리는 맛보는 주체와 맛이라는 대상이 사라진 즉 주관과 객관이 사라지고 없는 경계입니다.
차를 마시면서 주의 깊은 의식과 각성의 상태를 점차적으로 습득함으로써
다른 모든 행위로까지 깨어있음이 연결된 다면 우리의 파편화된 모든 삶은
새로운 대변혁이 일어날 것입니다.
차 마심의 행위가 우리 의식의 가장 깊은 곳을 울려 자극할 때
그 울림은 세상에서 가장 평안하고 조화로운 울림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행위를 하더라도
완전히 깨어있는 동시에 전체적으로 행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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