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방

대방사 도안 스님의 황차/옮김

아기 달맞이 2009. 9. 28. 07:49

초파일이 들어 있는 5월은 절이 가장 분주하고 바쁠 때다. 연등을 만들고 청소를 하며 불자와 참배객을 맞을 차비를 한다. 올 초파일에는 도심을 떠나 산 속 깊이 자리한 좋은 절을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심으로써 ‘차공양’을 해보면 어떨까. ‘차 한잔에 모든 행복이 깃들어 있다樂在一碗中’고 했다.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만들어주는 사찰의 명차를 만나보자.


 
 
1. 대방사 서암의 앞뜰에서는 삼천포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photo01 반발효차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삼천포 각산의 대방사를 찾았다.

 

크게 소문난 절은 아니지만 서울에서도 차를 하신다는 분 중에 마셔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파되고 있었다. 삼천포 바닷가에 있는 절은 크기도 크지 않고 호젓하여 바닷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달래기에도 적절한 장소라고 생각되었다. 많은 스님들이 이곳 선방에 수행을 하기 위해 찾아온다니 그 풍경을 짐작할 수 있다. 절에 오르니 남해안의 수려한 경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크고 작은 섬과 산세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키가 큰 도안 스님은 멀리서 온 촬영팀을 서암西巖으로 안내하였다.


서암의 마당에서 바다를 보며 대방사의 지형 설명을 들었다. 앞으로 바다를 두고 있는데 그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은 낮지만 뾰족한 봉우리 하나에 비슷한 모양의 둔덕을 가지고 있다. 절에서 그 바다를 찍은 사진을 들고 나온 스님은 사진을 돌려 세우더니 섬의 모양이 부처의 옆얼굴을 닮지 않았느냐고 질문한다. 그런 섬이 세 개가 나란히 있어 절 앞의 바다는 부처 셋이 누워 있는 형상이다.

 

절의 뒤쪽으로는 절의 바로 뒤에 큰 봉우리가 봉황의 머리처럼 솟아 있고 그 양쪽으로 똑같은 높이의 작은 봉우리가 두 개씩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펼쳐 절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풍수지리에 밝지는 못한 사람이라도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 이곳 절터의 비범함을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photo01 “들어갑시다” 하며 일행을 안으로 인도하는 스님의 손에 복사꽃 대여섯 송이가 들려 있다. 물을 끓여 차를 만든 스님은 잔에 차를 따르고 복사꽃을 하나씩 얹었다. 차를 우리는 과정이 복잡한 것 없이 단정하고 간결하다. 다관에 우린 차를 거름망을 얹은 숙우에 따른 후 각자의 잔에 따라낸다.

 

그리고 정성스레 꽃잎을 가지런히 띄운다. “초봄에는 매화를 띄우고, 지금 같은 때에는 복사꽃을 띄우고, 가을에는 국화를 띄우면 1년 내내 화차花茶를 낼 수 있습니다.” 따뜻한 남쪽에 절이 자리한 덕에 대방사의 찻잔은 화려함을 잃지 않는다. 잔을 들어 입술에 대고 살짝 숨을 들이마시니 꽃향이 들어왔다. 이렇다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데 한 모금 머금은 차는 그 맛과 향이 부드럽고 깊다.


찻잎은 독초라고 한다. 상록수여서 1년 내내 푸른 잎을 볼 수 있지만 차나무의 잎은 억세고 뻣뻣하다. 풀 중에 못 먹는 풀이 없는 것이 염소인데, 이런 염소도 어떻게 알았는지 차나무 잎에는 독이 있음을 알고 먹지 않는다고. 봄에 따서 차를 만드는 여린 새잎도 마찬가지다. 차를 법제하는 것은 이 독을 제하는 작업이라는 것이 도안 스님의 설명이다. 스님이 만드는 차는 반발효차인데, 덖음차나 홍차 같은 완전 발효차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반발효차는 중국에서 많이 마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전 우리나라 스님들이 즐겨 드시던 차도 반발효차다. 간혹 시중에서 차를 마시면 혀가 마르고 목이 뻣뻣하게 당기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차를 법제하는 방법이 올바르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발효를 제대로 하면 마시고 난 뒤 목이 마르지 않는 좋은 차가 된다.


대방사에는 차밭이 따로 없어서 스님은 하동 지방에서 야생으로 자란 찻잎을 구해와 차를 만든다. 차를 만든 지 벌써 20여 년이 되어가지만 본인이 쓰는 것 이외에는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부탁받은 만큼만 만든다. 찻잎을 구해오면 만들어줄 뿐이라고. 차를 따오면 그날 저녁에라도 물에 슬쩍 데쳐낸다. 물에 잎을 데친다는 것은 찻잎에 붙은 황사며 공해 물질을 씻어내기 위해서다. 데친 찻잎은 덕석에 펼쳐 말리고 아침부터 아홉 번 솥에 덖고, 아홉 번 방에 널어 발효를 한다. 그 중간에 두 번 정도는 덕석에 잘 비벼야 한다. 이렇게 만든 차는 우려내면 은은한 노란 빛깔의 차가 된다. 그 물의 색이 금빛이어서 이 차의 이름도 ‘황차黃茶’다. 스님의 반발효법은 ‘황차’라는 이름으로 얼마 전 특허를 받기도 했다.

 
1. 노랗게 우러난 황차에 복사꽃을 띄웠다. 마실 때 코로 들어오는 향이 은은하다.
2. 반발효시켜 만든 도안 스님의 황차.

 

photo01

서암의 큰 방에서 방문을 열어 바다를 보며 객과 불자들이 둘러앉아 스님이 주시는 차를 마신다. 구수하고 좋은 차가 봄을 머금은 바닷바람과 어우러진다. 스님은 ‘ 좋은 차만 있다면 별다른 격식은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격식보다 중요한 것은 차에 담긴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그 첫째는 자기 몸이 차와 다르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를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가지로 보는데 이것이 모두 차 안에 담겨 있다. 차 역시 땅에서 난 것이고, 물을 쓰고 불과 같은 열이 있고, 흐르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니 차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다. 두 번째는 찻잔 비우는 법을 아는 것이다. “마시지 않고 계속 따르면 어찌되겠소?” “잔이 넘치지요.” “그렇지. 그러면 어찌되겠소?” 스님의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힌다. “그걸 닦으려면 걸레가 가야 하는 것이오. 도가 넘치면 닦아야 하니, 중광 스님이 자신을 걸레라고 한 것도 같은 이치요. 세상의 넘침을 닦아야 하지 않겠소? 잔을 비우면 그곳에는 삼천포 앞바다도 다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우고, 비우고, 비워야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는데 중생들의 번뇌는 찻잔만큼 쉽사리 비워지지는 않는다.

 

photo01

스님에게 맛 좋은 차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혹 물의 온도나 정도에 맞는 다도법을 소개해줄까 싶었지만 스님은 ‘물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만 전할 뿐이었다. 똑같은 온도의 똑같은 물을 쓰는데도 사람마다 차맛이 다르게 나오는 것은 서로 물을 다스리는 방법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물은 맛이 좋은 생수를 써야 하고, 우리는 온도에 따라서 차맛이 달라짐을 알아야 한다.

 

뜨거운 물로도 부드러운 차를 우릴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차를 찬물에 우려 마시기도 한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자신이 맛있다고 생각되는 방법을 찾아 차를 즐겨야 한다. 차는 불교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도 젖어 있다. 신라 시대, 등에 짐을 지고 돌아가는 충담 스님에게 사람들이 어디를 다녀오느냐고 물으니 “차공양하고 돌아갑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서양의 차가 많이 들어와 있지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차를 생활화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다시 한 번 생활로 옮겨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찾아가는 길 남해안고속도로 사천IC로 나와 3번 국도를 따라 계속 직진한다. 삼천포대교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과적검문소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절 이정표가 나온다. 전화 055-832-6985


주변 관광지 절에서도 보이는 삼천포대교와 그 앞의 대방진굴항을 들러 삼천포의 풍부한 수산물을 구경할 수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운영하는 항공우주박물관(055-851-6565)도 아이들을 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1. 부처를 모시는 곳인 ‘큰법당’. 한글로 된 현판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2 대방사에는 여러 가지 불상들을 모시고 있다. 푸근한 모습의 ‘포대화상’은 늘 커다란 포대를 메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시주를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를 끊임없이 베풀어 준 선인이기도 했다.
2. 3 절을 지켜주는 ‘미륵반가사유상’. 4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대방사 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