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맛있는집-서울 신촌 '덕실리 국수'

아기 달맞이 2009. 9. 30. 00:46

【서울=뉴시스】김조수 외식저널리스트 = ‘국수 먹다가 배불러 죽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서울 신촌 창서초등학교 옆 ‘백야 피부 에스테틱’ 건물 1층과 지하층에 문을 연 ‘덕실리 국수(02-333-5455)’의 도발적인 캐치프레이즈다.

이 집은 잔치국수, 비빔국수를 2900원에 판다. 그러면서도 양은 여느 국수집의 곱빼기보다 많다.

잔치국수는 다시다 국물이 아닌 진짜 멸치 국물에 이 집만의 특별한 소스를 넣어서 맛을 냈다. 진하면서도 짭조름한 것이 그야말로 별미다. 고명으로 호박, 당근, 양파, 계란, 유부 등이 국수 양 못잖게 풍성하게 앉아있다.

국수를 많이 준다는 집에 가보면 국물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집은 어찌 된 일인지 국물이나 국수나 양이 비슷하다.

비빔국수는 역시 엄청나게 많은 양의 국수에 맛난 양념을 잘 섞은 뒤 그 위에 싱싱한 배, 오이, 상추 등과 잘 익은 김치 같은 고명들을 아낌없이 얹어 내온다. 향긋한 국수도 입 안에서 살살 녹지만 고명을 잘 섞어 먹으면 더욱 맛깔스럽다.

국수 외에도 해물파전(5000원)과 부추전, 김치전(이상 3000원)도 파는데 이것들 역시 맛과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

주인은 납북자 가족돕기, 해외 입양인돕기 등에 앞장서고 있는 시민운동가이자 ‘난 남자다’의 가수 이광필씨다.

‘덕실리’라는 상호는 이씨 부친의 고향인 함경북도 덕실리에서 따왔다. 예부터 국수의 고향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이씨가 이 가게를 오픈한 것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다. 덕실리 국수집이 자리한 건물이 바로 이씨 소유다. 신촌 한복판에 있어 임대 수익만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씨는 소외된 이웃, 등록금에 치이는 학생과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차렸다.

이씨는 “요즘에는 1년 등록금이 1000만 원에 달할 정도인데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의 학생들이 모이는 신촌 일대는 음식값까지 비싸 학생들이 컵라면 등으로 배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20대에 영국에서 유학하며 고학했던 기억이 났다”며 “그래서 국수라도 적은 돈에 많은 양을 제공하면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 국수집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앞으로 탈북자, 2급 이상 장애인, 납북자 가족, 해외 입양인들이 찾아오면 무료로 국수를 대접할 생각이다. 매달 정기적으로 국수 한 그릇을 900원에 팔아 수익금을 전액 소외된 이웃을 돕는데 쓸 계획이다.

이씨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음식 쓰레기를 줄일 수 있도록 다 못 먹고 남길 것 같은 사람은 미리 적게 달라고 하든가, 두 사람이 하나만 시켜서 먹는 것이다.

지상 24석, 지하 100석으로 초대규모다. 오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