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주 선암사의 영산홍과 자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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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칠전선원 ‘호남제일선원’ 문 오른쪽 옆에 있는 600년 된 영산홍. 돌담 너머까지 주홍빛 어깨를 걸치고 산색과 호응하는 자태가 보는 이의 마음에 아름다움을 입혀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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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마지막 포효
선암사 '꽃보라'
봄꽃들은 이윽고 녹음과 자리바꿈을 하려 하고 있다. 목련은 꽃망울을 밀어 올릴 때는 옹골진 기대를 갖게 하지만 피자마자 찌들어버리는 탓에 ‘허망한 꽃’이라 불린다. 산허리 연녹음에 끼여 핀 자목련도 허망하게 자색 빛을 버리고 있다. 산벚꽃이나 철쭉꽃도 이제 빛이 쇠는 기운이 역력하다. 그러나 봄꽃이 다 졌다고 미리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서 제일 고색창연하고 꽃과 나무가 가장 많은 절 선암사, 선암사엔 아직 봄잔치가 끝나지 않았다. 선암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600여년) 다섯 가지 나무와 꽃이 있다. 선불전 옆 와송(누운 소나무), 무우전 돌담가 토종 (홍·청·백)매화, 칠전선원 차밭 전통차나무, 그리고 칠전선원 ‘호남제일선원’문 양쪽 영산홍과 자산홍이 그것이다. 지금 선암사에 가면 연분홍 겹왕벚꽃이 경내를 모두 뒤덮고 있다. 풍경 소리가 크게 일 때마다 먼 산빛 사이로 왕벚꽃 이파리들이 흩날리는 모습에 아련히 눈을 앗기는 사람들도 있다. 벚꽃 눈보라에 번뇌를 실어 날리자는 것일까…. 그러나 왕벚꽃이니 아카시아니 양으로 과시하는 꽃들보다는 색깔과 연륜과 사연과 향기와 운치로 다가오는 꽃들을 만나 질로써 교감을 나눠보면 우리의 일상은 한결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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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전선원 달마전 돌담가에 핀 금낭화. 멀리 위쪽에 보이는 것은 영산홍과 짝을 이룬 자산홍이다. |
땡그런 풍경소리
흔들릴 때마다
먼 산빛 사이로
연분홍 왕벚꽃
이파리들이
눈보라처럼 흩날린다
선암사의 다섯 가지 예스런 나무와 꽃 가운데 지금 한창 절정에 이른 자태로 시선을 끄는 게 영산홍과 자산홍이다. 선암사엔 수십년 된 것을 포함해서 경내에 10여 그루의 영·자산홍이 있지만 칠전선원 ‘호남제일문’ 양쪽 옆에 있는 영산홍과 자산홍은 가히 명물 반열에 놓기에 부족함이 없겠다. 고려시대 절의 창건과 더불어 누군가가 심었을 것이니 그 나이가 족히 600년을 넘었을 것이다. 이 두 영·자산홍의 연륜은 먼저 그 크기로 짐작할 수 있다. 키는 3m 남짓, 많은 가지들이 펼치는 너비는 사방 10미터 남짓, 돌담 안 마당 귀퉁이에 서서 담 안팎 세상을 다 밝게 하려는 듯 담장 너머까지 가지를 휘어늘여뜨린 운치가 기가 막히다.
고상한 진홍색 영산홍은 자색 자산홍과 짝을 이뤄야 색깔의 대비가 완성을 이루고 부부처럼 외로움을 던다. 그 고운 자태가 어느 하나만 있다면 아름답다기보다 처량하다 할 것이다. 선암사 칠전선원에 있는 이 영산홍과 자산홍은 이 원리를 아는 어느 스님이 심었을 것이고 그 ‘우주의 원리’는 칠전선원 선다맥의 보살핌으로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주지 지허스님의 거소인 칠전선원 미타전에서 향취높은 ‘지허스님의 차’를 들며 이 영산홍과 자산홍을 바라보는 정취는 차를 혼자 마시면 선(仙)이요 둘이 마시면 승(勝)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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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동승>에 나온 칠전선원 석정 |
번뇌조차 산산이 날리듯
봄은 그렇게
기어코 가나보다
선암사 꽃잔치만 남기고
오래된 다섯 가지 나무와 꽃에 끼지는 못하지만 선암사 칠전선원 돌담엔 또 하나의 정취 그윽한 명물이 있다. 선원 달마전 바깥 돌담벽 중간 땅바닥에서 어른 키 높이 되는 곳 세 군데에 언제부터인가 이때가 되면 어김없이 금낭화가 모습을 내민다. 돌담 안에 뿌리를 숨기고 있다가 봄마다 화사한 모습을 드러내는 이 금낭화 가족이 있기에 선암사의 꽃잔치는 더 감동적이다. 반반한 땅도 아닌 돌틈 사이에서 여느 금낭화보다도 건강한 줄기와 고운 꽃을 빼곰히 드러내는 이 금낭화를 보면 생명의 보람을 만나는 것 같다. 젯밥 주걱 밥풀 한 톨을 입술에 물다가 시어머니에게 맞아죽은 며느리의 원혼이 서려 있어서 ‘며느리밥풀꽃’이라는 꽃, 달마전 돌담 금낭화는 어느 며느리의 비구니 현신일까…
순천/글 사진 최성민 기자 smchoi@hani.co.kr
스님‥왜 웃으시나요?
선암사 창건 이래 보기드문 인파
"외로웠던 절 중생들이 찾아주니"
올해 선암사는 창건 이래 드문 ‘인파의 호황’을 맞고 있다. 평일에도 관광객과 조계산 등산객이 끊이지 않지만 주말엔 차를 댈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줄을 잇는다. 그래서 선암사 스님들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
선암사는 태고종 종풍을 오롯이 이어오며 힘이 센 타 종파의 공격 등 늘 적잖은 도전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외로운 절’ ‘가난한 절’이라 불린다. 분규 중인 사찰의 재산관리는 지자체가 하는데, 1954년에 이른바 불교분규를 일으킨 ‘개혁파’가 지금도 ‘선암사 접수’를 포기하지 않아 선암사의 입장료 수입 등 일체의 재산은 순천시장이 관리한다. 따라서 관광객이 많다고 해서 절 살림에 한 푼도 도움이 느는 것은 아니지만 선암사 스님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태고종과 선암사의 존재를 중생들이 더 알아주고 격려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란다.
올해 특히 선암사에 관한 일반의 관심이 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하나는 주지 지허스님이 낸 <지허스님의 차>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상영 중인 영화 <동승>의 한 부분을 선암사 칠전선원 차샘 석정(돌샘) 가에서 찍은 것이다. <지허스님의 차>는 아직까지 ‘아무도 제대로 말하지 않은, 일본차인 녹차와 일본 다도로 왜곡돼 있는 한국 전통차’의 참모습을 매우 쉽고 상세하게 말한 ‘차 만들기와 음용’의 실용서여서 차계에서는 ‘한국 전통차와 차문화에 관한 전무후무한 고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이 우리 전통차에 관한 일반인의 관심을 높여서 전통차 수요가 부쩍 늘고 있음은 올 선암사차가 아직 만들기 전인데도 예약이 동난 데서 알 수 있다. (사)한국전통자생차보존회는 지허스님을 ‘전통차 법제 인간문화재’로 지정했고, 순천시는 이 참에 30억원을 들여 선암사에 한국 전통차 체험관을 짓는다.
칠전선원 석정은 품격높은 한국 샘물의 전형이다. 상·중·하·말탕 등 네개의 돌확으로 이루어져 상탕은 찻물이나 제수물, 중탕은 밥짓는 물, 삼탕은 몸씻는 물, 말탕은 허드렛물로 쓴다. 또 차우리는 물은 차밭을 스쳐오는 수맥이 제일이어서 이 석정물로 우려낸 선암사차를 지허스님의 방 미타전에서 영산홍과 자산홍을 바라보며 마시는 체험은 요즘 선암사를 찾는 이들의 소원이다.
최성민 기자
■선암사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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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나들목을 지나 7분이면 승주(선암사)나들목에 이른다. 이곳으로 나가 우회전하여 10분 정도 올라가면 선암사에 닿는다. 선암사는 문화재 도난방지 이유로 밤 10시면 문을 닫으니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선암사 ‘뒤깐’ 옆 객사 해천당에 객실 여덟칸이 있다. 선암사와 관련되는 특별한 이유라면 종무실(061-754-5247)에 전화를 걸어 숙식을 청해볼 만하다.
승주나들목을 막 벗어나면 쌍암기사식당이 나온다. 예전 시외버스 정류장 식당이어서 반찬이 푸짐하다. 주먹만큼씩 썬 돼지고기 김치덖음과 두 토막을 친 고등어 두루치기 등 20여 가지의 반찬이 나온다. 선암사 아래 사하촌 식당 남헌의 ‘남헌밥상’(8천원)도 먹을 만하다.
선암사에서 나와 왼쪽으로 상사호를 10분 돌면 나오는 아젤리아호텔은 모텔급인데도 이부자리가 깨끗하고 호수를 바라보는 전망이 뛰어나다(1박 4만원~8만원). 주말엔 예약해야 한다.(061-754-6212). 선암사 너머 금둔사(낙안읍성 가는 길) 아래 새로 문을 연 낙안온천은 유황성분이 많아 물이 매쓰러운 맛이 일본 온천에 버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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