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재처럼

자연주의 살림꾼’ 효재가 만난 사람 ③ 오세훈 서울 시장

아기 달맞이 2009. 9. 18. 07:34

보자기를 들고 다녀 보세요, 삶이 소박해집니다

“에너지 절약하라고 100번 얘기하면 뭐합니까? 할 수 있게 해 주고 합시다 해야죠. 전기절약형 콘센트 개발하고 집도 에코 디자인으로 짓도록 하는 게 바로 녹색 경영 아닐까요”

오세훈 시장과 이효재씨는 처음 만난 자리지만 ‘친환경’이라는 주제로 풍성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씨와 여성잡지 프리미엄 여성중앙이 ‘명사와 함께-효재의 지구를 살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이효재씨가 명사를 초대해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 운동 방법과 친환경적인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세 번째 손님은 ‘녹색 경영’을 펼치고 있는 오세훈 서울 시장이다.

3년 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오세훈 시장 후보는 녹색 넥타이를 매고 ‘녹색 서울’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일조권’을 둘러싼 소송을 준비하면서 법이 명시한 ‘환경권’ 개념과 처음 맞닥뜨린 것이 10여 년 전. 환경단체와 함께 시민운동을 했던 그때부터 오 시장은 ‘녹색 경영’을 꿈꿨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과 이효재씨는 오늘 처음 만났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각기 녹색 경영을 하고 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자신의 주변부터 조금씩 ‘친환경적인 삶의 방법’을 전파하는 것이 이효재씨의 몫이라면, 오세훈 시장의 무대는 서울이다.

‘녹색 경영’ 서울 공기가 달라졌다

“얼마 전 광화문 사거리에서 삼각산을 바라보느라 한참 머물렀어요. 그동안 뿌연 공기 때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산이 또렷하게 보이더군요. 비 온 뒤라 그런가 생각했죠.” 이효재씨는 “요즘 공기가 맑아진 것을 실감한다”며 말을 시작했다. 이는 오 시장의 환경 공약 가운데 ‘대기오염 개선’과 연관 있다. 오 시장은 취임 직후 “임기 말 즈음에는 국민들의 평균 수명이 3년 늘도록 하겠다, 와이셔츠를 빨지 않고 4일은 입을 수 있게 만들겠다”는 등의 환경 공약을 약속했다. 그리고 ‘녹색 서울’을 만들기 위해 우선적으로 대기질 개선에 주력했다. 3년 사이 서울 공기의 미세 먼지 농도는 10% 감소했다고 한다. 매연을 뿜는 주범이었던 시내버스 중 80% 이상을 청정 연료 버스로 교체한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원래 환경이란 게 망가뜨리긴 쉬워도 회복시키는 데엔 시간이 걸리는 법이죠. 그러니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내려고 해서는 안 되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맑은 공기 마시며 건강하게 숨 쉬고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시내에서 조깅하는 분들을 보면 ‘저래도 될까’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이 놓여요.”

남기는 것 없이, 소박한 밥상이 친환경

오세훈 시장이 거시적인 안목으로 큰 변화를 만들고 있다면, 이효재씨는 아기자기한 일상의 실천으로 주변을 감동시키며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

“많은 사람이 저를 책이나 방송에서 처음 보고는 참 별나다며 ‘시간이 많으니까 저렇게 살지’ 흉을 봤대요. 그랬던 사람들이 6개월 뒤에는 전화해서 ‘그대로 따라 했더니 남편이 너무 좋아한다’고 말하더군요.”

남의 이목 신경 쓰지 않고 내 맘대로 유유자적한 삶을 실천하는 그녀지만 입이 닳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강요’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소박한 밥상에 관해서다.

행주·테이블보·수건·전기 스위치 커버 등등 방방마다 수를 놓은 꽃이 만발하다.
“마음 때문에 늘 넘치게 담는 게 우리 주부의 맘이죠. 손님이 가고 나면 남은 반찬을 어찌 처리할지 고민하는 것도 같아요. 손님 맞을 때 앞서는 마음을 조금만 누르고 적게, 먹을 만큼만 담으세요. 대신 정성껏 예쁘게 담아야죠.”

남기지 않을 만큼 가짓수를 적게 하는 것도 그녀의 원칙이다. 그러나 정성만큼은 듬뿍 담아 차려내기에 그녀의 소박한 밥상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감동스럽다. 이날은 아쉽게도 끼니때가 지나서 밥상 대신 단풍잎으로 장식한 소박한 떡 한 상이 오세훈 시장 앞에 놓였다.

“제가 하는 건 이렇게 작고 소소한 것들이에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해요. 한쪽에서 자연을 회복시키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들 다른 한쪽에서 끊임없이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면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니까요. 이효재씨의 상차림 법을 집사람에게도 전파해야겠습니다. 하하.”

소소한 행동들이 의미있는 변화 만들어

서울이라는 큰 무대의 지휘관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친환경 방법을 묻자 오 시장은 “습관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효재씨의 집에서는 휴지보다 행주를 찾는 일이 빠르다. 크기별로 만든 행주를 부엌 한쪽에 놔두고 식사할 때도 손을 씻을 때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아요. 뭐든 부담을 가지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거든요. 친환경도 습관처럼 체질화하는 것이 중요해요. 평소에 일회용 제품은 쓰지 않고 에어컨도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물을 아끼는 건 당연하고. 특별할 건 없지만 이런 소소한 행동들이 체질화되면 의미 있는 변화들을 만들어낸다고 믿어요.”

물론 사람들에게 습관을 무작정 강요할 수만은 없는 일임을 오 시장도 잘 알고 있다.

“콘센트만 잘 뽑아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100번 교육하면 뭐합니까. 대부분의 콘센트가 가구 뒤나 손이 잘 닿지 않는 구석에 있잖아요. 잘못하다가는 허리 다칩니다. 할 수 있게 해주고 합시다 해야 수순이죠. 설계부터 에너지 절약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장려하고 있는 건축과 제품, 이게 바로 ‘에코 디자인’입니다.”

이효재씨는 “콘센트에 관한 부분은 주부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고 불만을 가졌을 얘기”라며 맞장구를 쳤다.

백화점 보자기 포장의 변신

책과 방송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된 ‘효재 장바구니’. 색색의 고운 빛깔이 명절 분위기를 돋운다.
색색의 고운 보자기를 들고 이효재씨가 물었다.

“시장님은 가장 최근에 보자기를 사용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세요? 명절 때면 흔해지는 백화점 보자기를 이렇게 몇 번만 매듭지으면 고운 장바구니가 되죠.”

오 시장은 이효재씨의 손놀림을 따라 열심히 보자기 장바구니를 따라 만들었다. 그리고 남성의 서툰 손끝에서도 보자기가 멋지게 변신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감탄했다.

“이제 녹색 넥타이는 매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정책에 얼마나 환경 유전자가 녹아들어 가는지 그게 중요하겠죠. 하지만 이효재씨의 이 보자기는 꼭 들고 다녀야겠네요. 하하.”

글=강민경 프리미엄 여성중앙 기자 사진=문덕관 studio lamp

수저 받침 대신 나뭇잎 하나…보자기 몇 번 묶으니 ‘패션’ 장바구니

이효재씨는 ‘보자기 예술가’다. 크기와 상관없이 네모난 보자기 하나만 있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모자, 가방, 휴지ㆍ선풍기ㆍ토스트기 케이스 등을 만든다. “명절 때면 선물 포장용 보자기 한둘은 받게 되죠. 이걸 들기 편한 가방으로 만들어서 장 볼 때 사용해 보세요.” 효재식 가방 만들기 방법은 간단하다. 귀퉁이를 제각각 묶어 네 개의 긴 귀를 만든다. 물건을 담을 수 있게 옴폭한 부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인접한 귀끼리 다시 묶으면 손잡이를 만들 수 있다. 사이즈를 작게 하면 복주머니처럼 아이들 명절 나들이옷에 어울리는 가방이 된다.

보통 떡 한 시루를 하면 동네 집집마다 한 접시씩 돌아갈 만큼의 양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들은 잔칫날이나 명절에는 꼭 떡을 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떡이 그다지 인기가 없다. 이효재씨는 넉넉한 인심으로 양껏 찐 떡이 남겨지고 굳어져서, 결국 냉동실을 거쳐 버려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컵케이크를 보고 디저트용 ‘컵시루떡’을 만들었다. 바닥에 구멍이 난 것이 영락없이 모양이나 기능은 시루인데 크기는 종이컵보다 작다. “이것을 대접할 때마다 저는 꼭 한마디 하죠. ‘널 위해 시루째 떡을 준비했어’. 그러면 실제 크기를 보고 한바탕 웃거든요.”

“마당에 심은 단풍나무가 때마침 곱게 물들고 있어서요.” 이효재씨가 차려온 상에는 이제 막 붉은색이 번지기 시작한 단풍잎 두 장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냥 그런 장식이 아닌 듯하다. 잎에는 각각 두 개씩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 사이에 얌전히 꽂힌 것은 젓가락과 숟가락이다. 문득 캠페인 첫 손님이었던 허영만 화백의 말이 떠올랐다. “식당에서 냅킨 한 장 아끼는 것부터 친환경을 시작하자”던 말. 이효재씨는 “휴일에 공원 산책길에서 예쁜 단풍잎 몇 잎 주워 그날 식탁을 꾸며보라”고 제안했다. “가을 내음 풍기는 특별한 밥상이 될 거예요.”

서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