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재처럼

자연주의 살림꾼’ 효재가 만난 사람 ④배우 이휘향

아기 달맞이 2009. 10. 31. 14:06

뭐든 남기면 아깝잖아요, 도시락에서 배웁니다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씨와 여성잡지 여성중앙이 ‘명사와 함께-효재의 지구를 살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이효재씨가 명사를 초대해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 운동 방법과 친환경적인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네 번째 손님은 ‘도시락 매니어’인 배우 이휘향씨다.


image:이효재휘양.jpg


출처:중앙일보
출처:중앙일보


7년 전 일이다. 어느 날 친구가 “밥을 사겠다”며 이효재씨를 불러냈다. 예나 지금이나 이씨는 밖에서 사먹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의 청에 못 이겨 나간 자리에는 배우 이휘향씨도 있었다. 한복 디자이너와 배우의 의례적인 만남. 그렇게 스칠 수도 있었던 이날의 만남이 각별한 인연이 된 것은 두 사람의 ‘식성’ 때문이다. 바깥 음식에 유독 까다롭고 또 웬만해선 입에 잘 맞지도 않아 집에서 요리해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씨를 이휘향씨는 별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음식에 관해서는 그 또한 이씨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써는 것보다 밥 한 공기에 나물과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비빔밥을 더 좋아하고, 인스턴트식품은 입에 대지도 않는 등 두 사람의 음식취향은 꼭 닮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예민한 몸이 먼저 반응하니까 깐깐하게 따져 먹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도 같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유별나다 싶을 만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챙겼다. 이효재씨는 입맛에 맞는 정갈한 음식들을 볼 때면 이휘향씨를 떠올리고, 이휘향씨 역시 맛있는 반찬이 생기면 잊지 않고 나눠 보낸다.



촬영장엔 이휘향표 ‘깐깐 도시락’


이렇게 가까워진 두 사람에겐 공통분모가 또 있다. 둘 다 알아주는 ‘도시락 매니어’다.


이휘향씨가 촬영장마다 도시락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건 방송가에선 이미 유명하다. 도도해 보이는 외모만으로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고급 요리만 즐길 것 같지만, 그에겐 애용하는 전용 도시락과 즐겨 먹는 단골 메뉴, 그리고 도시락 철학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왜 그렇게 욕심이 많은지 몰라요. 식당에 가면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반찬을 많이 시켰다가 남기기 일쑤잖아요. 그게 다 ‘내’ 음식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렇게 버려지는 음식들, 너무 아깝잖아요.”


사실 그가 도시락을 갖고 다니기 시작한 건 체질적인 이유가 더 크다.


“육류나 밀가루, 또 인공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배가 더부룩해 하루 종일 고생을 해요. 그게 싫어 내게 맞는 음식을 가려 먹자 생각했고, 그때부터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절로 환경운동도 되더라고요. 쓸데없이 버리는 걸 줄일 수 있거든요. 딱 나 먹을 만큼만 싸 갖고 다니니까 아까운 음식을 남겨서 버리는 일이 없죠.”


촬영 날 싸온 도시락 뚜껑을 열자 새우와 깨를 섞어 김 가루에 묻힌 주먹밥 네 개가 달랑 들어 있다. 반찬도 북어찜과 달걀 말이, 멸치, 김치가 전부.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린 생멸치는 혈당이 낮은 그가 즐겨 먹는 단골 메뉴라고 한다. 함께 싸온 삶은 밤과 땅콩은 출출할 때 먹는 하루치 간식거리다.


주먹밥 두 개를 먹고 난 뒤 남은 두 개는 오후에 먹는다며 반찬도 딱 절반만 먹고 남긴다.


“내가 내 양을 알아요. 처음엔 반찬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젠 하루 먹을 양을 귀신같이 구분해요. 버리는 걸 줄이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아요. 생수 하나를 사더라도 차에서 편하게 마시겠다고 500mL짜리 3개를 사기보다 1.5L 병 1개에 손이 가는 정도죠. 우리가 구입하는 대부분의 제품은 만드는 과정에서든 유통 과정에서든 온실 가스를 방출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제가 하는 식으로만 구매해도 에너지가 적게 들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죠.”



웰빙은 기본, 이효재식 ‘꽃 도시락’
이효재씨의 도시락 취향은 좀 더 깐깐하다. 웰빙은 기본이고 예쁘기까지 해야 한다. 그의 단골 메뉴 역시 먹기 편한 주먹밥이다.


“반찬보다 밥에 ‘힘’을 주는 게 우리 도시락 달인들의 비법이죠. 도시락은 첫째로 먹기 편해야 하고, 또 냉장고 속 잔반들을 처리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에요.”


냉장고 속에 굴러다니는 것이라면 채소·장아찌·두부 그 어떤 것도 이씨의 도시락 재료가 된다. 밥에 깨를 묻혀 깨밥을 만들고, 소화 잘 되라고 매실을 넣은 밥에 콩 몇 개 얹으면 도시락이 완성된다. 후다닥 만든 메뉴인데도 ‘단풍 접시’에 올리니 눈이 호사스러울 만큼 예쁘게 변신한다.


“도시락은 예뻐야 해요. 돗자리 깔고 앉아서 먹는 건데, 다른 사람들이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꽃같이 예뻐야 나도 즐겁죠. 뭐든 즐거워야 계속 실천하게 되죠.”


그러고 보니 이씨의 도시락 용기도 주먹밥도, 심지어 젓가락 케이스도 모두 ‘꽃밭’이다.



한결같이, 좋은 친구로 남는 법


별것 아닌 재료지만 정성껏 만들어 도시락 통에 예쁘게 담으면 진수성찬 한 상보다 즐거울 수 있다. 이씨는 “도시락 싸는 일이 즐겁다 보니 자연스레 도시락 용기에도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예쁘다고 눈도장 찍어놓은 도시락을 못 사고 돌아오면 걸레질을 하면서도, 이불을 빨아 널면서도 계속 눈앞에 어른거려 결국은 다시 가서 꼭 사게 된다는 것이다.


“언니를 아는 사람들이 그런대요. ‘뭘 선물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하하.”


도시락 통을 선물하면 함박웃음 지을 것을 알기에 지인들은 예쁜 도시락 통만 보면 이씨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렇게 선물 받은 도시락 통이 여러 개. 그 중엔 이휘향씨가 선물한 것도 있다.


식성도 도시락 예찬도, 남기거나 숨기지 않고 다 말하는 직설화법까지도 두 사람은 닮았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해 오래 못 입잖아요. 친구도 마찬가지예요. 한순간 반짝 매력을 느끼고 끝날 관계라면 친구가 아니죠. 내면이 닮아 서로 이해할 수 있고, 배울 점까지 있다면 지금의 우리처럼 이렇게 함께 평생 가는 거죠.”


글=강민경 프리미엄 여성중앙 기자 사진=문덕관 studio lamp



명사와 함께-효재의 지구를 살리는 캠페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성중앙’ 11월호를 참고하세요.



주먹밥 쌀 때 단풍잎 한 장 … 도시락에 가을을 담습니다

출처:중앙일보
출처:중앙일보


이효재씨나 이휘향씨 모두 도시락 메뉴로 ‘주먹밥’을 가장 좋아한다. 만들기 쉽고, 언제 봐도 동글동글한 모습이 예쁘고 먹음직스럽기 때문이다. 주부라면 냉장고 속에서 처치 곤란으로 굴러다니는 잔반과 자투리 재료들을 이용하기에 좋은 방법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야채나 새우 등의 마른 반찬을 블렌더를 이용해 곱게 갈면 밥을 뭉치기에 편하다. 갈지 않고 잘게 써는 정도로 뭉치면 재료 고유의 씹는 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이효재씨는 도시락에 주먹밥을 쌀 때 단풍잎 몇 장을 이용해 보라고 권한다. 도시락 속 고운 배경도 되고, 식사를 할 때는 천연 접시도 되니 일거양득이다.


도시락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소풍이다. 햇볕 따뜻한 날, 도시락을 싸들고 나선 소풍길. 이때 산길에서 고운 단풍잎 몇 장을 주워오면 집안에서도 가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효재씨는 종종 붉은 단풍잎, 노란 은행잎을 흰색 명주 천에 붙여 놓는다. “문방구에서 파는 딱풀을 이용하면 붙이기도 쉬워요.” 그는 이렇게 만든 천을 전기 스위치 가리개로 사용한다. 단풍잎이나 천이나 모두 가벼워서 벽지에 얇은 핀을 살짝 꽂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사진 속 ‘단풍 장식’은 이효재씨가 10년 전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10년 전 추억을 그는 지금도 고스란히 즐기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 또는 지인들에게서 받아 모은 도시락 통 개수가 꽤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이렇게 모은 도시락 통들이 대부분 일본 제품이라는 게 아쉽다. 도시락 문화가 발전한 일본은 메뉴별로 디자인이 따로 있을 만큼 도시락 통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학생용 플라스틱 통, 아니면 인사동에서 장식함으로 주로 파는 대나무 통이 전부다. 이씨는 “이왕이면 우리만의 멋이 도시락 통에서도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도시락을 쌀 때면 늘 우리 전통 문양이 그려진 보자기를 이용한다. “보기 좋아야 맛도 좋죠.”



서정민 기자
2009.10.30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