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재처럼

자연주의 살림꾼’ 효재가 만난 사람 ① 만화가 허영만

아기 달맞이 2009. 7. 24. 10:53

“손수건만 갖고 다녀도 환경 운동”“부채로 더위 쫓는 것도 지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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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씨와 여성잡지 프리미엄 여성중앙이 ‘명사와 함께-효재의 지구를 살리는 캠페인’을 시작한다.

한 달에 한 번, 이효재씨가 명사를 초대해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 운동 방법과 친환경적인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첫 번째 손님은 만화가 허영만씨다.

초록 잎사귀 시원한 정원에서 초록빛 녹차 한 잔을 즐기며 담소하는 허영만 화백과 이효재씨.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지구 살리기

3년 전, 이들이 처음 만난 사연이 재미있다. 13만 장의 그림을 통해 수많은 군상과 사연 많은 인생들을 이야기해온 허영만 화백이지만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효재처럼』은 충격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곧바로 출판사에 물어 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대뜸 “몇 월 몇 일 몇 시에 찾아 가겠다”는 그의 전화를 받고 더 설레며 기다린 건 이효재씨다. 웬만한 만화 스토리는 줄줄 외고, 아끼는 사람에게 좋은 만화책을 보자기에 곱게 싸서 선물하는 게 행복인 이씨의 만화 사랑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어색할 줄 알았던 첫 만남에서 허영만 화백은 자필 사인한 만화 『식객』을 건넸고, 이효재씨는 앞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맛깔스러운 차와 식사를 대접했다.

골방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자기 세상에만 몰두할 것 같은 만화계의 거장과 남들보다 한 걸음 늦게 천천히 삶을 음미하며 사는 이효재씨가 서로 존대를 하면서도 매년 왕래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건 둘 사이의 공통분모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초록 예찬’이다. 지구를 살리는 첫걸음은 거창하게 지구 반대편까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내 주변 반경 1m, 1㎞ 내에서 할 수 있는 작지만 건강한 일부터라는 것. 크고 화려한 말보다는 당장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 이 공통분모를 확인한 그날부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은 좋은 말벗이 됐다.



텃밭 채소로 차린 친환경 밥상

수국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부채 바람을 즐기던 허영만 화백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자주 찾진 못하지만 이효재씨의 정원은 올 때마다 즐거워요. 요즘 도시 사람들은 좋은 게 있어도 잘 즐길 줄 몰라요. 정원이 있어도 눈을 즐겁게 하는 관상용이 대부분이죠. 눈으로 보는 데만 그치지 않고 손으로, 코로, 입으로 누릴 수 있어야 그게 진짜 내 것인데.”

이효재씨는 저녁 식사에서 디저트 그릇으로 사용할 연잎을 따는 중이었다. 준비한 저녁 식사 재료는 모두 정원 텃밭에서 난 것들이다.

“허 선생님이 여름에 오시면 우선 냉수 한 잔 드리고, 에어컨을 켜는 대신 맨발로 정원에 나가 돗자리를 깔고 놀아요. 그러다 텃밭에서 얻은 식재료로 소박하지만 건강한 식사를 대접하죠. 우리가 여름을 날 기회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남아 있겠어요. ‘덥다’는 느낌을 하루 단위로 생각하면 당연히 짜증 나죠. 하지만 1년 단위로 생각하면 내 평생 경험할 수 있는 ‘여름 더위’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아요. 어차피 나야 할 여름, 투덜거리면서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소중한 마음으로 즐겨 보세요. 에어컨 같은 인위적인 바람에 의존하지 말고 땀 흘리면서 말이죠.”

세상에 하나 뿐인 부채를 선물하다

맨발로 정원을 걷던 허영만 화백은 얼굴에 땀이 맺히자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가 손수건을 챙기며 지낸 지는 오래됐다.

“이게 내가 하는 환경 운동이죠. 손수건을 갖고 다니니까 휴지를 몇 장 안 쓰게 되더라고요. 이런 게 바로 지구를 지키는 일 아닙니까.”

목욕탕에서 물 틀어 놓고 수다 떠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했다가 싸울 뻔한 적도 있다. 산에 쓰레기 버리고 가는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거창한 건 나도 못해요. 작은 약속들을 지키려고 노력할 뿐. 그런데 이 작은 실천이 정말 중요해요. 모든 국민이 손수건을 들고 다니면서 하루에 휴지 한 장씩만 덜 써도 지구는 훨씬 살 만한 별이 되겠죠. 자기 젓가락 하나씩 들고 다니는 날이 오면 정말 좋겠어요.”

이효재씨 집 현관에는 여러 개의 부채가 놓여 있다. 집을 방문한 손님이 쉽게 부채를 손에 들 수 있도록, 돌아갈 때는 잊지 않고 챙겨갈 수 있도록. 대나무 살에 하얀 종이만 바른 부채를 본 허영만 화백이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500원짜리 평범한 부채가 거장의 붓놀림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부채가 됐다.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 누누이 들어온 이효재씨의 남편 임동창씨에게 선물하기 위한 그림도 있다. 어느새 이효재씨도 한쪽에서 바삐 손을 놀린다. 부채에 분홍 한지를 예쁘게 오려 붙인 후, 보자기로 정성스레 싸는 중이다. 허영만 화백의 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사모님을 자주 뵙지 못하는데 이렇게 멀리서라도 마음 전할 수 있어 참 좋네요. 부채 하나, 손수건 한 장. 작지만 정성스럽고, 가볍지만 지구를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띤 이 둘과 함께라면 누구라도 즐겁게 감사하며 여름을 날 수 있을 거예요.”


한지로 꾸민 부채, 생감자 샐러드… 돗자리에 앉아 ‘자연’을 즐기고 먹다

오른쪽은 이효재씨가 허영만 화백에게 선물하기 위해 직접 해바라기를 수놓은 것이다. 오른쪽은 허영만 화백 본인의 것이다. “영감 같아 보일까 봐 알록달록한 색상을 고르죠. 하하.” 화장실에서 손 씻은 후, 땀을 닦을 때 아무렇지 않게 톡톡 뽑아 쓰는 휴지 한 장만 줄여도 지구는 훨씬 깨끗해진다는 게 허 화백의 주장이다. 또 허 화백이 추천하는 건 ‘냅킨 적게 쓰기’라고 한다. “식당에서 수저를 놓으면서 꼭 냅킨 한 장씩을 깔잖아요. 음식이 나온 후 수저통에서 바로 꺼내 사용하면 되고, 젓가락 쌌던 종이를 접어 받쳐도 될 것을 불필요하게 낭비하고 있는 거죠.”

이효재씨의 밥상은 언제나 간단하다. 전채 요리 한 가지와 1식 3찬. 맛깔스러움과 정성을 선사하는 밥상에 가짓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음식의 개수는 다섯 가지를 넘지 않는 게 좋아요. 많이 차리면 차릴수록 손님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할 수 없게 되거든요.” 허영만 화백을 위해 이날 준비한 것은 ‘생감자 샐러드’다. “여름에 갓 캔 감자는 씹을 때 사과처럼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서 맛도 일품이죠.” 생감자의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얇게 채 썬 후 물에 서너 시간 담가 두는 게 비법이다. 흰 감자에 초록색 미나리, 풋고추를 채 썰고 올리브 오일과 함께 내면 된다.

인사동에 나가면 라지 사이즈 피자만 한 한지 부채를 단돈 몇천원에 구입할 수 있다. 대나무 살 살짝살짝 비치는 흰색 그대로 사용해도 좋고, 이것저것 색을 입혀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부채를 만들어도 재미있다. 허영만 화백과 부인에게 선물한 ‘효재 스타일’ 부채는 분홍색 꽃잎이 우아하게 들어앉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위나 칼을 쓰지 말고 손으로 원하는 모양을 조심조심 찢어 내다 보면 한지 특유의 보풀이 일어나게 된다. 이 느낌을 잘 살리면 오려 붙인 그림이지만 한지 위에 먹으로 그린 수묵화처럼 ‘번짐’ 효과를 낼 수 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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