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창이 살려낸 1300년 전 백제의 사랑
햇살이 반짝이는 산사의 오후는 고즈넉하면서도 오랜만의 해후로 설렜다. 13일 오후 5시 전북 정읍시 정우면 정토사. 모처럼 산사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기다려 온 500여 명의 사람이 공연 2시간 전부터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 달려온 주부부터 근처 선운사에서 잰걸음으로 온 스님까지 각양각색의 관객을 위해 무대 뒤편에는 절밥이 차려졌다.
사위가 어두워진 뒤에야 무대에 오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임동창씨는 “1300년 전 불렀던 소박한 사랑노래의 원형을 되살리려 9년 공을 들였다”며 흥에 겨운 몸짓으로 건반을 어루만졌다. 문덕관(스튜디오 램프) | |
‘정토문화마당’ 주최로 마련된 이번 공연의 주인공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임동창(53)씨다. 9년 전부터 외부 활동을 일절 거둔 채 작곡에만 몰두해 온 임동창씨는 조선시대 관악합주곡 ‘수제천’을 현대적인 선율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온 힘을 쏟아왔다. ‘정읍사-1300년 사랑 이야기’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무대는 그 결실을 공개하는 첫 자리다.
풀벌레 울음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산사에 어둠이 찾아들자 임동창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공연은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임씨가 어둑어둑해야 소리가 제 맛이라며 해가 떨어진 후인 8시께로 늦췄다. 환호 속에 등장한 임씨는 20년 전 작곡한 산조로 공연의 첫 문을 열었다. 친구들 간의 우정을 표현한 ‘반짝이는 슬픔’, 샤갈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4월의 신부’, 만화가 허영만씨의 원작 ‘자장면’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곡한 ‘설기’, 500여 쪽에 달하는 ‘수제천’의 마지막 소곡인 ‘효은재미’ 등이 이어졌다. 연주 사이사이 임씨가 곡에 얽힌 사연을 구수한 입담으로 소개해 절집이 웃음바다가 됐다.
특히 한복 디자이너인 부인 이효재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무대 위로 불러내는 깜짝 이벤트를 열었을 때는 여성 팬들로부터 큰 박수가 쏟아졌다.
“‘정읍사’는 백제시대 정읍에 사는 한 여인이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부른 작고 소박한 사랑 노래죠. 이번 작업을 통해 남녀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부모·자식 간의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는 “9년 동안의 작업을 끝내고 나니 숙제를 마친 어린아이처럼 홀가분하다”며 “500여 쪽에 달하는 악보를 내놓았으니 앞으로 이 곡들을 녹음하는 일이 남았다. 녹음을 마친 후 세계로 연주 여행을 다닐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정읍=윤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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