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단성역 옛철길을 찾아서

아기 달맞이 2009. 6. 20. 01:44






중앙선에서 기차가 가장 넘기 힘든 곳은 아마도 죽령 또아리굴 일대일 것이다. 그만큼 경사가 급한 곳이니
대피선(또는 피난선) 하나쯤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

이곳 말고도 알려진 곳으로는 횡천역 일대의 피난선이 있다. (아래 사진과 곱동이 님의 답사기를 참조해 주세요)






☞ 곱동이 님의 횡천피난선 답사기 참조





단성역 피난선은 중앙선 기차를 타고 가면서 쉽게 발견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졌던 곳이다.
궁금증의 대부분은 '저 길 끝에는 뭐가 있을까?' 또는 '저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철길이지?' 일 것이다.

피난선이니 당연히 끝이 멀지 않을 것이고 끝에 가봤자 별거 없겠지만, 궁금해서... 떠났다 ^^;


단성역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약간 당황하시는 눈치다. 그러다가 플랫폼 위에서 역장님(또는
부역장님 --;) 을 만났는데 호쾌하신 분이다. 그리 길지 않은 설명에 이 말과 함께 허락해 주셨다.

" 저기 끝에 가면 피난선 올라가는 길 있어. 글루 가봐~ "

고맙습니다...^^

아무튼 요즘 드는 생각은 철도답사라는 게 그리 생소한 일도 아니고, 철도사진을 찍을 때 허락받고 찍으면
별 문제없으니 열차사랑 회원님들도 허락받고 찍으시기를 권한다...^^






단성역 구내는 단풍이 들어서인지 '아무것도 없으면서 꽉 찬 느낌'이다.






단성역에서 죽령 방향을 바라보면 아찔할 정도로 경사가 높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23.5퍼밀이다. 잘은 모르지만 눈으로도 그 높이가 식별될 정도로 기차가 올라가기 무척 힘든 경사다.

사진에서 가장 멀리 보이는 지선이 피난선이다.





단성역 구내 대피선 하나가 끝난 지점에 피난선 진입로가 보인다.





잠시 단성역 주변 개념도를 보자. 잠시후에 설명될 단양 수몰지역 이설 전의 철길을 이해하기 위해
지도가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에서는 단성역 피난선 뿐 아니라 과거 1980년대 초 충주호 건설계획을 확정하면서
수몰되어 이설하고 남은 중앙선 철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영진5만:1 지도에서 '관사촌'이라고 표시된 곳인데, 현재의 단성역과는 거리도 있고 높이차도 커서
무척 흥미롭다. 관사촌?? 산사춘?

사진을 잘 보면 관사촌 위로 숲이 가로로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그 뒤로 보이는 산의 절벽은 기차가 다닐 수
있도록 일부러 깎은 것이다. 즉, 수몰 전의 중앙선 구철로라는 얘기다. 위의 '개념도'에서는 '북하리'라고
적힌 자리다.

2006년판 영진 5만:1 지도나 알맵을 보면 이 노반 위로 아직 철길이 놓여있는 것처럼 나오는데, 아마도
항공위성촬영을 하면 이 노반이 구선로에서 그대로 뻗어나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도상에는
단성역 피난선이 2개인 것처럼 나온다. 그중 하나가 레일 없는 구노반이다.






피난선과 이설전 선로, 현재의 단성역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좋은 사진이다.

사진의 왼편으로 단성역 현재선로가 있는데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고, 왼편에 나와있는 철길이 피난선,
사진 중앙의 지붕이 수몰이전 관사촌, 사진 오른쪽 절벽 아래로 보이는 비포장도로가 구 노반이다.





단풍이 물든 산 아래로 달리던 기차는 지금 열차지기가 사진 찍은 곳으로 달리고 있다. 이 묘한 기분이란~





좀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보니 구노반 위로 보이는 옹벽이 나타난다.






스위스나 홍콩, 일본처럼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오르는 산악철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산 속'
으로 들어가는 철길의 모습을 본다는 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그 용도를 보자면 맥빠지는 게 사실이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즐기자!)

김진필 기관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의 경사는 60퍼밀이라고 한다. 헉... 열차지기의 부족한 지식으로
기차가 오를 수 있는 한계점이 대략 30퍼밀로 알고 있는데, 60퍼밀이라면 그 2배가 아닌가? 결국 피난선은
기차가 제동력을 잃고 탈선을 피하기 위한 최악의 상황에만 쓰이는 선로인 셈이다. (그런데 전차선은 왜
있는거지 -_-;)






피난선 위에서 바라본 중앙선 철길. 마치 피난선이 본선처럼 보인다.











이제 본격적으로 피난선을 살펴보자. 줌을 좀 땡겼더니 사진이 분위기 있어 보인다. ^^ 사진으로 봐도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얼마 가지 않아 정글처럼 덮인 대피선의 모습이 나타난다. 어차피 기차가 제동능력을 잃고 뛰어들어도
여기까지 오지도 못할 것 같으니 상관없다.

여기까지 적고 글을 읽는 분들께 양해를 구해야겠다. 이 선로를 관리하시는 직원아저씨와의 약속에 의해
이 구간 이후의 철길을 전체적으로 담은 사진은 올리지 않기로 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철길 위에 핀 꽃 치고는 운치있다.






아까 '정글'로 표현한 장소로 들어가기 직전에 뒤를 돌아보고 찍은 모습. 옛철길(좌측)과 관사촌(중앙),
피난선(우측)의 관계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레일이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이것도 철도사진이다. 앞서 본 사진을 확대한 것인데, 좌우 두 개의
나무를 연결하면 옛 철길이 된다.







정글을 헤치고 올라서니 단성역이 까마득한 아래에 내려다보인다. 8200번대 기관차가 끌고 가는
화물차가 잠시 정차해서 특유의 소리를 내고 있다.







알고보니 영주 방향에서 올라오던 새마을호와의 교행이다. 10월 말 이후로는 여기서 새마을호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이런 사진도 한달만 지나면 추억이 되는 것이다. 아아 -.- 믿을 수가 없다.

님은 갔지만 나는 새마을호를 떠나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시라도 써야 하는 걸까... ㅠ_ㅡ"









한참을 더 올라가는데 철길은 계속 이어진다. 중간에 '6'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었다. 0.6km 왔다는
거리표인가..?





꽤 많이 올라왔다. 아까 보던 옛철길이 까마득히 멀다. 줌을 땡겨 사진을 찍었더니 단풍은 이쁜데
이미 이곳이 과거를 간직한 철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귀신 나올 분위기처럼 보인다.


피난선은 이곳에서도 한참을 이어져 전체 길이가 약 800미터는 되는 걸로 보인다. 철길의 끝은
사진을 대신하여 설명하자면 한마디로 설명된다. '정글'.





내려오다가 역 구내에서 찍은 피난선 사진인데, 사진에서는 경사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높이가 어느정도 드러나는 비교사진이다.






피난선을 내려와 단성역으로 향하다가 발견한 구선로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시설물이다. 구선로의
일부는 피난선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피난선 노반 아래로 묻혔다.


과거 속에 묻힌 중앙선 옛 철길과 피난선, 둘의 차이점이라면 하나는 80년대 초에 사라진 선로,
하나는 80년대 초에 생겨난 선로라는 점이고, 둘의 공통점이라면 둘다 앞으로 쓰일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때로는 자신이 할 일을 잃어버림으로써 자신의 본분을 다 하는 사람이 있다. 대피선과 옛 철길의
역할이 그런 게 아닐까? 앞으로도 쓰이지 않을 것이기에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단성역 피난선, 중앙선 수몰이전 옛 철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