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꽃잎 사이로 보이는 붉은 벽돌에 파란 지붕의 역사가 인상적이다. 전남 보성군 노동면 명봉리에 위치하고 있는 명봉역. 한때 보성 읍내를 오가는 주민들과 통학생들이 주로 이용하였던 간이역이다. 1930년 12월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으나 현재는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다. 2008년 6월 16일부로 무인역이 되었다.
명봉역은 경남 밀양의 삼랑진역에서 광주의 송정리역까지 이어지는 경전선 구간이다. 전형적인 시골 역사인 이곳은 그냥 머물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다. 마음에 쉼표 같은 곳이다. 이따금씩 찾아와 아무런 생각 없이 고단하고 지친 삶을 이곳에 내려놓고 싶다.
단아한 소녀를 닮은 봄날의 명봉역
명봉역을 찾아간 날은 해보다 먼저 떠서 길을 나섰다. 벚꽃이 피어나는 이른 아침의 간이역은 원피스를 입은 단아한 소녀의 모습을 닮았다. 꽃피는 봄날에 한껏 부푼 가슴안고 찾아가도 좋을 그런 곳이다. 그래서일까. 벚꽃이 피어나는 봄날이면 인적 없는 조그마한 간이역의 모습이 기억 저편에서 아른아른 피어오르곤 한다.
그 어느 해 여름날, 광주에서 화순방향으로 달리다 길을 잘못 들어 빗길 속에 잠시 스쳐 지나쳤던 명봉역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느림과 그리움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옛길은 점차 사라져가고 새로 뻥뻥 뚫린 도로가 옛 정취를 자꾸만 앗아간다. 곳곳에는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명봉역이 아직 옛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소리만이 시골 간이역의 정적을 깬다.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벚나무의 고목에서는 이제 막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면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산자락의 긴 철로 위에서 이따금씩 뻐꾸기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근처 민가에서는 개가 컹컹 짖는다. 한가롭기만 한 시골길, 길가의 텅 빈집들도 빈 역사처럼 그저 허허롭다.
한때 '여름향기'의 촬영지로 꽤나 이름 알려져
울긋불긋한 꽃잔디와 하얀 벚꽃이 옛 역사와 제법 잘 어울린다. 빈 역사의 동산에 세워진 '교통보국' 비석이 애틋하다. 단기 4286년 5월, 비문에 또렷이 새겨진 연도다. 이곳에 머문 지 제법 시간이 지났나보다. 간이역에 아침이 밝아온다.
서로 그리워하며 울어대는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명봉이라 했다는 보성 명봉리의 명봉역은 그 경치가 제법 빼어나다. TV미니시리즈 '여름향기'의 촬영지로도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역사에는 여름향기의 주인공이었던 손예진과 송승헌의 사진과 사인이 담긴 액자가 걸려있다.
무인역에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안내방송에 역사로 들어 가봤다. 선로 저편에서 열차가 육중한 몸뚱어리를 끌고 힘차게 달려온다. 열차가 멈춰서고 한참이 지난 뒤에 할머니 한 분이 열차에서 내렸다. 화순 이양에서 친정집 조카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는 할머니는 승차권 넣는 함에 표를 넣고 역사 밖으로 사라져간다.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간이역이지만 이곳에서는 열차를 타고 내릴 수가 있다. 문득 누군가 사무치게 그리운 봄날에는 명봉역으로 가보면 어떨까. 이곳에 잠시 머물러도 좋고 이곳에서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길도 좋겠다. 세월마저 멈춰선 간이역 빛바랜 세월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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