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식사를 했다고 여기는 한국인들. ‘밥이 약’이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쌀알에 생명이 깃들었음을 일찍이 체득한 어린 시절이 우리에게는 있다. 잘 먹으면 보약보다 더 좋은 여름 밥 이야기.
한국인의 밥 이야기
밥은 31분간 불 위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드라마다. 밥은 조리도구+쌀+물+불+시간+사람이 만드는 합작품이다. 경험, 분석, 열정이 담겨 있어야 밥도 달고 차진 맛이 난다. 요즘이야 간 큰 남자로 분류되지만 어머니 세대의 여자들은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밥맛에 대한 핀잔과 서러움을 받은 경험들을 하나쯤은 갖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전기밥솥’ 하나로 옛말이 돼버렸다. 그래도 아직까지 대한민국 상차림의 맛 승부는 ‘밥’이다. ‘밥이 맛있으면 다 맛있다’로 다른 요리까지 격이 동반 상승한다.
옛 사람 중 ‘밥 짓기의 달인’들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삼국사기>에는 1세기 초반인 고구려 대무신왕 때 “솥에 밥을 짓는다”고 한 기록이 있는데, 이때부터 이미 쇠솥이 있었고 밥은 쇠솥이 핵심임을 짐작케 한다. 밥 짓기의 과정인 ‘삶고, 찌고, 태우는’ 세 단계의 방식 역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조선시대 요리와 농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서유구가 1800년대 요리서 <옹희잡지>에 쌀밥을 맛있게 짓는 법을 소개한 글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밥을 잘 짓기로 천하에 이름이 났다. 밥을 지을 때는 쌀을 깨끗이 씻어 뜨물을 말끔히 따라 버리고 솥에 안친 후 손 두께쯤 되게 물을 붓고 불을 땐다. 무르게 하려면 익을 때쯤 일단 불을 껐다가 1~2경 후에 다시 불을 때며, 단단하게 하려면 불을 끄지 말고 시종 약하게 땐다”고 하였다. 이 밥 조리법은 그대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밥 레시피의 원조가 된다. 새삼 이 글을 쓴 밥의 달인들이 모두 남자라는 것이 재미있다.
밥=쌀, 알고 먹자! 쌀의 유래와 성분
밥은 쌀을 끓여 만든 음식으로, 쌀이 주재료다. 쌀은 벼과에 속하는 식물로, 벼는 20여 종의 품종이 있다. 1920년 일본 농림학자인 카토 시게모토가 벼의 품종을 자포니카(japonica)와 인디카(indica)로 분류했는데, 국내에서 먼저 발견되었으면 코리아니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면 아쉽다.
자포니카는 쌀이 둥글고 투명하며 밥을 지었을 때 끈기가 있는 쌀로 한국, 일본 중국, 캘리포니아에서 재배되고 소비된다. 인디카는 쌀 모양이 길고 밥을 지었을 때 끈기가 없다. 주로 동남아시아, 인도 등에서 재배되고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손으로 식사하는 방식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인디카 쌀의 특성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
같은 쌀이라도 길이, 색, 벼 껍질을 벗긴 모양에 따라 단립형과 장립형, 맛에 따라 경질미, 연질미로 그리고 아밀로스의 함량에 따라 찹쌀과 멥쌀로 분류한다. 또 쌀을 벗겨내는 도정 정도에 따라 현미, 백미 등으로 나누고 국내 생산지에 따라서는 경기미, 이천쌀, 호남미 등으로 분류한다. 요즘에는 재배방식을 보태어 유기농쌀, 우렁이쌀, 황토쌀 등 새로운 작법을 내세워 브랜드화되고 있는 추세다.
쌀의 성분은 전분 70%, 단백질 10%, 미네랄 1.3% 및 각종 비타민류 등이 함유되어 있다. 특히 당질은 체외로부터 섭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필수영양소다. 이는 식물만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 곡물 재배의 역사는 곧 인류 생존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찌다
향기까지 먹다, 연밥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쓰여진 <규합총서>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보면 상하기 쉬운 여름 밥 보관법으로 연잎으로 싸두거나 날비름을 밥 위에 덮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연잎밥은 현재 사찰음식, 건강음식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영양학적으로도, 계절식으로도 별미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재료
찹쌀 2컵, 현미·흑미 30g씩, 연근 50g, 연자·대추·호두 4개씩, 밤 5개, 은행 8개, 잣 2큰술, 연잎 4장,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현미와 흑미는 따로 씻어서 2시간 정도 물에 불려 물기를 뺀다.
2 은행은 볶고, 연근은 편썬다. 대추는 굵게 채썰고 호두는 껍질을 벗기고, 잣도 씻어 준비한다.
3 찹쌀은 씻어 물에 불렸다가 물기를 빼고 ①의 쌀과 소금, 밤, 다진 연자를 냄비에 넣고 센 불에서 끓인다. 5분 정도 팔팔 끓이다 중불에서 3분가량 더 끓인다.
4 잘 익은 ③의 밥에 ②를 넣고 고루 섞는다.
5 소금물에 연잎을 씻어 줄기 부분을 자르고 3등분한 뒤 잎을 펼친다. 잎 위에 ④의 밥을 1공기 정도 놓고 잘 감싸서 김이 오르는 찜기에 넣고 20분 정도 더 쪄낸다.
- TIP
연잎은 부드러운 잎보다 억센 잎을 선택하는 게 찔 때 좋다. 다 먹은 연잎은 잘 씻어서 끓여 연잎차로 마시면 은은한 향기가 그만이다. 비만을 억제하고, 피부를 고와지게 하는 효과도 있다.
뜸들이다
여름날 먹어야 제맛, 보리밥
요즘은 흰 쌀밥의 영양상 결함 때문에 좋은 탄수화물의 공급원으로서 보리밥, 현미밥, 잡곡밥을 건강식으로 꼽는다. 보리밥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당뇨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식이섬유가 많아 소화가 잘 안 되어 방귀를 많이 뀌게 된다고 하여, 예부터 선조들은 보리밥을 먹을 때에 ‘방귀타령’을 부르기도 했다. 보리밥은 열무김치와 강된장을 넣어 양푼에서 쓱쓱 비벼 먹거나 매운 고추를 된장에 푹푹 찍어 함께 먹고, 호박잎에 쌈을 싸 한 입 크게 먹어야 맛있다.
재료
찰보리 2컵(350g), 쌀 1/2컵(90g), 물 3½컵 (700g)
만드는 법
1 찰보리는 깨끗이 씻어 물에 1시간 정도 불린 다음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2 쌀은 깨끗이 씻어 물에 30분 정도 불린 다음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3 냄비에 찰보리를 넣고 그 위에 멥쌀을 살포시 얹은 다음 물을 붓고 끓인다. 5분 정도 끓이다가 중불로 낮추어 2분 정도 더 끓이고, 마지막으로 약불로 낮추어 20분 정도 뜸을 들인다.
- TIP
보리밥은 흰밥보다 뜸을 충분히 들여야 부드러워진다. 주걱으로 고루 섞어 고슬고슬할 때 푼다.
삶다
몸에 좋은 건강식, 치자 구황작물밥
여러 가지 잡곡 및 구황작물에 들어가는 재료들로 만든 건강밥을 먹는 것도 무더운 여름을 이겨나가는 현명한 방법이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조, 기장, 멥쌀, 콩, 팥 등을 섞어서 지은 밥을 ‘뉴반’이라고 하였고 5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우리는 ‘5곡밥’이라 하여 특별한 날에 별미로 시식하는 풍습도 있다. 한여름에 나는 옥수수, 감자, 고구마, 산나물 등 부족한 쌀을 대신하거나 흉년에 먹었다는 구황작물을 넣어 밥을 지어 먹는 것도 일품이다. 치자로 고운 색과 향을 입혀 먹으면 더욱 특별한 식사가 된다.
재료
쌀 2컵(360g), 고구마 1⅔개(250g), 옥수수 1대, 방풍나물 50g 치자물(치자 2개, 물 2½컵(500g))
만드는 법
1 쌀은 깨끗이 씻어 물에 30분 정도 불린 다음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2 고구마는 껍질째 깨끗이 씻어, 두께 2~3㎝ 정도로 어슷하게 썰어 물에 헹군다.
3 옥수수는 찌지 않은 상태에서 알갱이를 하나씩 떼어놓는다.
4 치자는 씻어서 껍질을 벗겨 물에 넣고 30분~1시간 정도 우려 고운체에 걸러낸다.
5 냄비에 쌀, 치자물을 붓고 센 불에 올려 끓인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고구마, 옥수수알, 손질한 방풍나물을 넣고 주걱으로 저어준 뒤 4분 정도 끓이다가 중불로 낮추어 3분 정도 더 끓이고, 약불로 낮추어 10분가량 뜸을 들인다.
- TIP
처음부터 나물을 넣고 밥을 지으면 색과 향이 옅어지므로 밥을 짓는 도중이나 뜸 들일 때 넣는다.
끓이다
속도 맘도 진정되는, 누룽지
타지 않게 적당히 노릇하게 눌어붙어야 맛있는 누룽지. 전기밥솥의 출현으로 밥은 맛있어졌지만 고소한 누룽지 맛을 못 보게 되자 옵션으로 기능을 넣는 밥솥까지 생겼다. 기술까지 더해 가며 누룽지를 찾는 걸 보면 한국인의 유전자에는 이 뭉근하고, 따뜻한 음식을 찾는 DNA가 숨어 있는 듯하다. 밥을 짓는 동안 수분이 거의 없는 상태의 솥 밑바닥은 200℃ 이상으로 오르면서 쌀이 눌어붙는다. 이때 갈변 현상과 함께 카보닐 화합물이 생성되는데, 이 성분이 밥알에 스며들어 특유의 구수한 밥 향미를 이루게 된다. 여기에 물을 붓고 다시 끓이면 국물은 숭늉이 되고 건더기는 누룽지가 된다.
재료
밥(다 먹고 솥에 남은 밥), 물(솥의 1/4)
만드는 법
1 먼저 타지 않을 만큼의 센 불로 밥솥을 데워 수분을 제거한다.
2 ①에 물을 붓고 뚜껑을 닫은 다음 센 불에서 끓이다가 팔팔 끓어오르면 뚜껑을 열고 약불로 끓인다.
3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면서 끈기가 생기면 불을 끄고 그릇에 담아 낸다.
- TIP
누룽지는 끓여서 바로 먹어야 부드러운 질감과 고소한 향미를 맛볼 수 있다. 섬유소가 많아 변비에 좋고, 체내 콜레스테롤 배출을 돕는다. 밥 종류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누룽지로 끓여 별미로 즐겨보자.
- 진행 / 김일아 기자
사진 / 정민우
글과 요리·/ 스타일링 조은정
그릇 협찬 / 정소영의 식기장(02-541-6480)
요리 어시스턴트 / 조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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