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50대 아줌마로 빙의.. 별일이 다 있습니다

아기 달맞이 2014. 7. 19. 21:04

[오마이뉴스 곽동운 기자]



▲ 금학생태공원< 공주역사둘레길 > 금학생태공원 구간에서는 생태탐방을 할 수 있다.

ⓒ 곽동운

"팔자 좋구먼! 인생 참 재밌게 살어!"

전국을 돌며 역사트레킹 코스를 '개척'하고 다니니, 만나는 사람마다 저런 소리를 툭툭 내던진다. 팔자가 좋기는… 남의 속도 모르면서! 한편 온라인에서는 상당히 날카로운 비판들이 가해진다.

'현재도 도보 여행길이 넘쳐나고 그러는데, 뭐하러 또 만드나?'
'4대강 사업 때 자전거길 만들어 놓았는데 이용객들도 별로 없잖아. 또 그렇게 되면 어쩌려고?'

장거리가 아닌 단거리, 역사라는 테마로, 읍내와 가까이

맞는 말이다. 현재 도보 여행길은 포화 상태다. 600개가 넘는 도보 여행길이 있고, 그 거리만 해도 2만km에 달한다. 2만km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도 남을 엄청난 거리다.



▲ 공산성공산성 북쪽에 위치한 만하루와 연지. 오른쪽에 금강이 흐르고 있다. 뒤쪽으로는 금강대교가 보인다.

ⓒ 곽동운

최근 몇 년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도보 여행길은 몇몇 잘 나가는 길들을 제외하고는 역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자전거 도로와 함께 도매급으로 매도되는 실정이다. 2007년 제주 올레길 열풍 이후, 중앙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길을 개설했기에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맹점들이 부각됐다.

필자는 그런 점들을 타산지석 삼아 역사트레킹을 실시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원칙들이 세워지게 됐다.

1. 무작정 걷는 것보다 역사라는 테마를 가지고 트레킹을 해보자.
2. 육체적으로 힘들면 절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15km 이내 단거리 코스로 만들자.
3. 가급적 포장도로는 피하자.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자동차들과 경합하는 도보여행은 할 필요가 없다.
4. 역사, 풍광, 생태 세 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길을 개척해보자.
5. 시작점(IN)과 종료점(OUT), 둘 다 접근성을 높여보자. 가급적 종료점을 읍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하여 귀경길이 편하게 하자.

원칙은 좋다. 하지만 위의 원칙들이 다 부합되는 도보 여행길을 개척하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역사, 풍광, 생태 세 박자가 딱 맞아 떨어지는 길을 개설한다는 건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더군다나 읍내와 가까운 곳에 개설돼야 한다는 조항까지 맞추려면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 우금티2006년 우금티 터널 개통 이후, 우금티는 벌판이 됐다. 동학농민군들은 왼쪽 도로 아래부분에서 많이 희생당했다.

ⓒ 곽동운

공산성과 우금티를 트레킹 코스로 연결하자

공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 필자도 다른 여행객들처럼 공산성과 우금티를 탐방했다. 하지만 그때는 공주의 지형을 잘 몰라 그 두 곳을 각각 따로 방문했다. 그것도 자동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도보 여행가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도로 교통에 의존하여 탐방을 했던 것이다.

'여기 우금티에서 공산성까지 멀어야 3~4km인데 공산성까지 트레킹을 통해서 갈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없나? 지도상으로 보면 있을 것도 같은데… 공산성과 우금티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서 트레킹 코스로 만들면 그게 진짜 역사트레킹인데… '

공주를 방문할 때마다 이런 고민들이 밀려왔다. 그래서 공주토박이 분들을 붙잡고 조언을 구했다.

"뭐 하러 걸어가유? 차로 5분인디."
"공주대간이라고 그런 길이 있을 것도 같은디… 근디 그냥 잘 포장된 길 가지, 뭐하러 둘러둘러 가유."

대충 예상했던 반응들이었다. 각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도보 여행길을 개설했을 때 공주시에서 '공산성-우금티'를 직접 연결하는 트레킹 코스를 만들지 않은 걸 보면 무언가 큰 난관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 산딸기여름이라 그런지 산딸기들이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행동식이 부족해서 산딸기로 허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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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갑오년의 농민군들이 가고자 했던 공주성(공산성)과 농민군들의 아픔이 서린 우금티를 연결하는 영광(?)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올해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0주년이라 그런 도보 여행길의 개설은 더욱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작정 지도를 들고 공주의 구도심을 누볐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분들 중,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붙잡고 계속 같은 물음을 던졌다.

50대 아줌마로 빙의(?)하다

"우금티에서 공산성까지 숲 길 따라 가는 길이 있나요? 저쪽 아래 도로길은 매연 때문에 별로라서요."

그렇게 계속 두드리니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때부터는 계속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다. 갔던 길을 계속가고, 오르락내리락 하고, 갑자기 장대같은 비를 만나고, 뱀하고 인사하고 등등.

강원도 영월, 경기도 안양 등 이미 10개 정도의 길을 개설한 경험이 있지만 그때보다 이번 '공산성-우금티'를 잇는 개척길이 훨씬 더 힘들었다. 100km 이상의 거리를 계속 헤집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10km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100km 이상의 거리를 직접 조사하고 탐방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도보 여행길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 금학생태공원 가는 길생태공원은 공주시의 수원지 일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그 주변은 개발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원시림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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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개척은 좀 더 집중을 하고, 좀 더 잘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갑오농민전쟁 120주기를 맞아 나름대로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50대 아줌마로 빙의(?)까지 했을까. 도보여행길의 난이도를 통상 50대 여성에게 맞추는데 적절한 난이도를 유지하려고 하니, 필자가 50대 아줌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갑자기 10살 이상 더 먹게 된 것이다. 성별도 바뀌고.

그렇게 되니 아쉽게도 봉수대터가 코스에서 빠지게 됐다. 우금티 동쪽편 봉우리에 위치한 봉수대터는 동학군이 점령하려다 실패한, 역사적 상징성이 강한 곳이기에 코스에 넣고 싶었다. 또 그곳에 올라서면 공주시가지를 내려볼 수 있기에 동학군의 행군로를 설명하기도 수월하다.

하지만 그 곳을 진입하려면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하기에 누락시켰던 것이다. 빙의를 해서 그런지 가파른 길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억!' 소리가 나왔다. 그것보다 더 가파른 산들을 올랐을 때도 그냥 힘들이지 않고 올랐었는데, 50대 아줌마로 변신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경사도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 것이다.



▲ 중동 성당공주 구도심 국고개에 있는 중동 성당. 1937년에 세워진 중동성당은 가톨릭신자나 근대건축물에 관심있는 여행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한편 중동성당은 내포지역에 자리잡은 천주교 성지들과 연계되는 중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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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공주역사둘레길'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공산성과 우금티, 더불어 충청지역 동학군들이 몰살된 송장배미까지 연결하는 '공주역사둘레길'이란 도보 여행길이 생성됐다. 공주의 구도심에 산재한 역사유적들을 원형으로 둘러가기 때문에 공주역사둘레길이란 명칭을 붙인 것이다.

공주역사둘레길은 앞서서 필자가 언급한 5가지 원칙을 기반을 두어 개척됐다. 특히 역사, 풍광, 생태 세 박자 맞아 떨어지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역사만 있고 풍광이나 생태적인 면이 떨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도보 여행객들에게 외면을 받기 때문이다.

'공주역사둘레길'은 금학생태공원이란 곳을 통과하는데 그 곳 배후면은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림이 관찰될 정도였다. 그래서 고라니, 삵, 뱀 같은 야생동물들도 꽤 많이 만났다. 트레킹 시에 이런 점들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 송장배미충청도 농민군들이 피를 흘렸던 곳이다. 그 농민군들은 전봉준 부대와는 다른 부대였다고 한다. 이 곳은 현재 연못 형태로 되어 있다. 비석에 무슨 그을음 같은게 번졌는지 무척 지저분하다. 그래서 그런가? 송장배미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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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유적지들의 성격에 맞게 구획 설정도 해보았다. '금강교-공산성'은 백제구역, '중동성당-충남역사박물관-영명학교'는 근대구역, '금학생태공원-삼거리'는 생태구역, '우금티-송장배미'는 동학농민혁명구역 등으로 세분화 한 것이다. 각 구역에 따라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부족한 도보여행객들이나 동학농민운동에 유달리 관심 있는 분들은 생태구역과 동학농민혁명 구역만 묶어서 트레킹을 할 수도 있다.

공주역사둘레길은 아직 지도상으로만 존재하는 길이다. 표식작업 등, 앞으로 시급히 보완을 해야 할 것들이 넘쳐나는 트레킹 코스다. 하지만 일단 제 궤도에 오르면 공주 여행을 더 풍부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1박 2일 여행 일정을 짤 수 있다. 첫째 날은 공주역사둘레길을 걷고, 둘째 날은 공주 읍내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마곡사에 가는 것이다. 마곡사에 가서 김구 선생의 자취를 따라 산사트레킹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알찬 1박 2일, 공주 역사 기행이 될 것이다.



▲ 공주역사둘레길의 지도공주 구도심의 역사유적들을 저런 식으로 둘러본다. 네이버지도를 편집해서 만들었다.

ⓒ 곽동운

* 덧붙임: 6월 하순경에 답사와 조사를 실시했고,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후속 작업을 실시했습니다. 기사 본문에 언급되어 있듯이 현재 공주역사둘레길은 지도상으로만 존재하는 길입니다. 이 도보여행길이 정식으로 개통되기 위해서는 표식작업 등의 사후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올해는 우금티 전투 120주기입니다. 필자의 작은 바람은 우금티 추모제가 개최되기 전에 그러한 작업들이 완수되어,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주역사둘레길 트레킹을 해보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