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무한하다. 먹을 것을 주고, 집짓기와 생활도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목을 준다. 옷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인다. 외부 환경에 의해, 혹은 스스로 망친 몸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온갖 약을 만들 수 있게 한다. 마지막에는 자기 몸을 불사르며 에너지원인 땔감을 제공한다. 말하자면 의·식·주 전체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 중에서 특이한 것의 하나가 바로 음용수의 재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지금 지구상의 인간은 이상한 식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차(茶)를 마시는 행위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음식의 뒷맛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아니면 심심해서, 딱 꼬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인 이유에 의해서 인간은 차를 마신다. 오직 인간만이 차를 마신다.
- ▲ 좌)찻잎은 새로 돋아난 새 잎을 따서 음용한다. / 우)차나무의 꽃은 찔레꽃을 닮았으며 하얗고 청초하다.
‘의약의 신’ 신농, 인류에게 차를 알리다
인간에게 차의 원료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두 나무는 차나무와 커피나무다. 차나무는 잎이, 커피나무는 열매가 쓰인다. 차는 동양에서, 커피는 아프리카와 서양에서 많이 음용된다. 둘 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녔다. 차는 기원전 2700년경 신농(神農)이, 커피는 기원전 800년경 에티오피아 남서쪽 카파주에서 양을 치던 양치기가 그 쓰임새를 발견했다고 전한다. 두 나무 모두 다량의 카페인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이 두 나무는 그 효능이 알려진 후 급속히 재배지역이 확산되었다. 차와 커피를 마시는 문화도 서로 빠르게 교류되어 동·서양을 넘나들었다. 그 결과 동·서양 모두 일상생활에서 차와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제는 매일 마시므로 생필품이 되어버렸다. 또한 차와 커피는 경제적 가치도 막대하여 하나의 산업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였다.
이처럼 차나무와 커피나무는 먼 옛날 개발된 후로 인류의 입맛과 생활문화를 바꾼 아주 중요한 나무가 되었다.
차나무 잎을 달여 먹는 습관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차는 중국의 삼황오제 중 의약의 신인 신농(神農)이 처음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그가 처음으로 차를 마시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 윈난성 천가채 1호 차나무.
신농은 초목을 직접 입어 넣고 씹어봄으로써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약효가 있는지를 실험하였다. 자신이 직접 피실험자가 된 것이다. 어느 날 신농은 100가지 초목을 씹어 실험하다가 72가지 독에 중독되어 크고 푸른 나무 밑에 쓰러지고 말았다.
마침 센 바람이 불어 머리 위의 나뭇잎이 얼굴에 떨어졌다.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 씹어보니 맛은 쓰고 떫으며 향기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잎의 약효가 퍼져 해독을 하게 되었다. 이에 신농은 그 나무를 차나무라 이름 짓고 해독작용을 알리니 사람들이 널리 음용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신농이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큰 나무 아래에서 불을 지펴 물을 끓이고 있을 때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탕기 안으로 떨어졌다. 살펴보니 연한 황색으로 우러났다.
신농이 물을 떠서 마셔보니 쓰고 떫었으나 뒷맛이 달고, 해독과 정신을 맑게 하는 작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알리니 사람들이 애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후 기록에는 전국시대의 명의 편작(編鵲)에 의한 기원설, 선종의 창시자 달마(達磨)에 의한 기원설 등이 전해지나 이는 모두 유명인의 이름을 빌려 붙인 것이다.
우리가 즐겨 읽는 <삼국지> AD 200년경에도 차 이야기가 나온다. 돗자리를 짜서 먹고사는 유비에게 어머니는 죽기 전에 낙양의 명차를 한번 맛보고 싶다고 하였다. 효자인 유비는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곧 짐을 싸 들고 천리길을 떠났다. 낙양의 상인에게 비싼 돈을 치르고 차를 산 유비는 황건적을 만나 차는 물론이고 가보인 보검까지 빼앗기게 됐다. 이후 중국 대륙을 휩쓴 전쟁과 영웅호걸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여튼 사람들의 입맛에 맞았던지 차를 마시는 습속은 빠르게 확산되어 당나라 시대에는 차문화가 보편화되었다. 이 시대에 당나라의 시인 육우(陸羽)가 차의 기원과 생산지, 마시는 방법 등 차에 관한 종합적인 내용을 담은 <다경(茶經)>(765년경)을 집필하여 다도의 체계를 세웠다. 오늘날에도 육우의 <다경>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애독되고 있다.
- ▲ 경남 하동군 쌍계사 입구의 차 시배지.
중국 쓰촨·윈난성에서 기원한 차
가져다 붙이기를 좋아하는 중국인의 특성상 신농씨 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 차나무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차나무를 식물분류학적으로 나누면 크게 온대지방의 소엽종(중국종)과 열대지방의 대엽종(앗삼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두 종은 서로 형질이 달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앗삼종의 기원지는 미얀마의 이라와디강 원류지대로 추정하며, 중국종은 대개 쓰촨성(四川省)의 내륙지방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보이차로 유명한 윈난성(雲南省) 푸얼(普헓耳)이라고도 한다. 쓰촨성과 윈난성은 서로 접해 있다. 윈난성이 더 남쪽 지방이다. 차의 기원지에는 지금도 야생 차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일찍이 야생 차나무 잎의 효능을 알아내고 차를 개발해냈다. 윈난성의 푸얼에서 멀지 않은 구이저우성(貴州省) 동부의 전위안현(鎭沅縣)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가 있다. 공식명칭은 ‘천가채(千家寨) 1호 고차왕수(古茶王樹)’. 2001년 세계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이 고차왕수의 수령은 무려 2700년이다.
고구려 건국보다 650년이나 앞선다. 높이는 26m이며 폭도 2m가 넘는 커다란 교목이다. 이 지역 고차수들은 세상 모든 차나무의 어머니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차가 점점 더 알려지자 수요가 증가했으며 다른 지역으로의 판매를 위해 교역이 이루어졌다. 이 길이 바로 KBS의 다큐멘터리로 유명해진 차마고도(茶馬古道)다. 차마고도는 중국 윈난성·쓰촨성의 차와 티베트 지역 말의 교역이 이루어졌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높은 지역의 교역로다. 평균 해발고도가 4,000m로 가장 낮은 지역조차 백두산의 해발보다 높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문명로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실크로드보다 200년 앞선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역의 길로 중국 남부의 윈난성·쓰촨성에서부터 티베트를 거쳐 네팔·인도까지 이어진다. 이 길을 통해 차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전파됐다.
한편 차는 배를 타고 아랍과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영어에서 차(茶)를 뜻하는 단어 ‘Tea’의 어원은 중국 푸젠성(福建省) 샤먼(厦門) 지방 사투리에서 나왔다. 푸젠성 취안저우(泉州)는 7세기경부터 무역항구가 크게 발달해 외국인이 많이 살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생산되는 차를 마시고 귀국할 때 선물로 가져가곤 했다. 이때 차를 의미하는 이 지방 사투리 ‘테’ 또는 ‘떼’라는 말이 아랍과 유럽에 전파되어 서양의 ‘Tea’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9세기 이후 종자를 통해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이로써 한·중·일 세 나라에 차문화가 퍼지게 되었다.
- ▲ 높은 경제적 가치 때문에 차는 대량으로 재배된다. 보성의 차밭.
잘라내도 잎이 잘 돋고 약성의 보고인 차나무
차나무(Camellia sinensis)는 놀랍게도 동백나무과에 속한다. 속명에 대해서는 차나무속과 동백나무속의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최근에는 둘을 구분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 많아 차나무도 동백나무속으로 분류하고 있다.대개 높이는 4~8m다. 1년생 가지는 갈색이고 잔털이 있으며, 2년생 가지는 회갈색으로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게 나며 양끝이 뾰족한 긴 타원형이다.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잎은 조금 두껍고 윤기가 있다. 잎의 앞면은 녹색, 뒷면은 회록색을 띤다. 특히 차나무는 가지가 많고 잎이 밀생하여 잘라내도 다시 잘 돋아나는 특성이 있으므로 잎을 이용하기에 유리하다.
꽃은 양성으로 10~11월에 잎겨드랑이나 가지 끝부분에 흰색으로 핀다. 꽃받침조각은 5개로 갈라지며 둥근 모양이다. 꽃잎은 거꾸로 된 달걀 모양으로 6~8개이고 뒤로 젖혀진다. 열매는 익으면 과피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삭과로 11월에 다갈색으로 익으며 둥근 모양에 모가 났다. 차나무는 외뿌리 직근성으로 옮겨 심으면 쉽게 죽어버리는 특성 때문에 주로 씨앗으로 번식한다. 예전에는 시집가는 신부에게 개가하지 말라고 차 씨앗을 선물했다. 차나무는 반음지성 식물이기 때문에 그늘진 곳이나 햇빛이 적게 드는 곳에서도 잘 자란다.
우리가 달여서 마시는 차는 그 해에 새로 돋아난 잎을 따서 만든다. 3년이 지나지 않은 차나무는 어리므로 잎을 따지 않는다. 차는 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구분한다. 첫물차인 우전(雨前)은 곡우(4월 20일경) 5일 전에 딴다. 싹은 자줏빛이며 상품으로 친다. 두물차는 세작(細雀)으로 통상 4월 20일부터 4월 30일 사이에 채다한다. 찻잎의 엽면에 주름이 져 있으며 작은 참새의 혀와 비슷하다.
세물차인 중작(中雀)은 5월 1일부터 5월 10일경에 채다한다. 찻잎 끝이 말려 있다. 끝물차인 대작(大雀)은 5월 10일부터 6월 초순까지 딴다. 잎은 가는 댓잎처럼 빛나며 하품으로 친다. 따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비타민C와 떫은맛을 내는 폴리페놀 함량이 증가하여 떫고 개운치 않다. 섬유질이 증가하고 아미노산과 카페인이 감소하여 맛이 떨어진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채다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찻잎의 성분은 타닌산, 카페인, 아미노산 등이 두루 함유되어 있다. 이외에도 폴리페놀 등 온갖 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말하자면 온갖 약성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전문적인 연구가 많으므로 건너뛰기로 한다.
찻잎을 달인 물은 각성·강심·이뇨·소화를 촉진한다. 항산화, 항암,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혈압상승 억제, 항균, 항알레르기, 항궤양 등의 작용도 밝혀졌다. 피부 노화 방지, 멜라닌 색소 침착 방지, 기미·주근깨 형성 억제, 피로회복, 괴혈병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연구되었다. 한마디로 만병통치에 가까울 만큼 많은 성분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찻잎이다. 특히 찻잎에는 카페인 성분이 1~3% 가량이 함유돼 있어 신경을 흥분시키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이뇨작용·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 차를 마시는 습관이 형성된 것은 오랜 세월 그런 효과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각 국에서 생산되는 차의 종류는 재배방법, 채다 시기, 제다법, 발효방법, 첨가물 등에 따라 셀 수 없이 많다.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접하는 홍차와 재스민차도 그 원료가 찻잎이라는 사실이다. 재스민차는 녹차에 재스민 향을 첨가해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 쌍계사 골짜기
이제 우리나라로 넘어와 보면 우리나라에 차 종자가 처음 파종된 것은 신라 42대 흥덕왕 3년(828년) 때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당 문종으로부터 차 종자를 받아 귀국하여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다 한다(<삼국사기> 권10 흥덕왕조).김대렴이 차 씨앗을 처음 심은 시배지(始培地)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골짜기라는 설과 전남 구례군 화엄사 장죽전(長竹田)이라는 설이 지금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특히 이런 논란은 문화유적지를 개발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까지 가세하여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차나무가 등장한 것이 신생대 초기이고, 우리나라에 야생 차가 자라는 지역이 남부지역 5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하며, 자생 조건에 알맞은 기후와 풍토를 가지고 있어 자생 차나무가 있었으리라고 보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문헌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현재는 차나무 시배지가 하동군 쌍계사라는 설이 우세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