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가 들숨과 함께 햇빛을 삼키고, 날숨과 함께 수분을 뱉어내는 가운데 각종 발효 음식의 맛이 무르익는다. 옹기장 김일만은 이 숨 쉬는 그릇 옹기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흙, 그리고 불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고집 센 옹기장 김일만
옹기는 진흙만을 반죽해 구운 후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이 나지 않는 질그릇으로, 상고시대부터 제기, 식기, 솥 등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옹기장(甕器匠)은 많은 옹기 그릇 중에서도 독과 항아리 등을 만드는 장인이다.
“제대로 된 옹기란 들숨과 날숨이 있는, 말 그대로 숨을 쉬는 그릇이어야 합니다. 옹기가 들숨과 함께 햇빛을 삼키고, 날숨과 함께 수분을 뱉어내는 가운데 장맛이 무르익게 되지요. 간장, 고추장, 된장뿐만 아니라 식초, 술에 이르기까지 전통 음식은 옹기에 발효시키고 보관해야 그 참맛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마에 구웠을 때 흙의 반은 익고 반은 익지 않은 듯해야 좋은 옹기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음식의 특성에 맞는 맞춤 옹기를 만들기란 그리 쉽지 않다. 김일만 선생은 어릴 때부터 옹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김일만 선생의 아버지는 옹기를 건조하거나 뒷일을 돕는 건아꾼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자랐는데 장호원에 살면서 본격적으로 옹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5살 나이에 수비꾼(점토를 물에 풀어 이물질을 걸러내는 사람), 16살에 생질꾼(밖에 있는 흙에 물을 뿌린 후 작업장에 들이는 사람), 17살에는 건아꾼(옹기를 건조하거나 유약을 입히는 등의 사람)으로 일했다. 18살이 되어서야 경기도 여주에 와서 비로소 물레질을 본격적으로 배워서 대장(옹기를 만들거나 굽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대장의 일을 배우는 동안 옹기점 주인이 요구하는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해주며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렇듯 품삯도 받지 못하면서 물레질을 배우는 것은 그 당시 옹기점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다고 한다.
- 할아버지, 아들, 손자 3대가 함께 옹기를 빚는 모습이 정겹다.
- 1 깨끼질을 마치고 조각낸 점토는 쌓기 좋도록 바닥에 쳐서 직사각형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직사각형 형태의 점토를 질판장이라고 한다. 2 건조가 된 옹기에 잿물을 칠하는 넷째 아들 김용호 씨. 3 잿물을 칠하고는 무늬를 넣고 또 다시 말린다. 4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오부자옹기의 장작 가마는 경기민속자재 11호로 지정되었다.
“21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계시는 장호원으로 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어요. 25살 즈음 경기도 용인에 있는 옹기점에서 일을 했는데 이때부터 건아꾼이 아닌 대장으로 일하기 시작했지요. 37살이 되었을 때는 비로소 저만의 옹기점을 설립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가마를 새로 박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옹기의 품질은 결국 가마에서 구워져 나오는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 박은 통가마의 불을 잡지 못해 옹기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죠. 첫해 실패를 하며 가마를 손보아 다음 해부터는 소성 성공률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재가 날린다는 이유로 동네 주민들과 마찰을 빚어 1980년에 지금의 여주군 금사면 궁리로 옹기점을 옮겼지요.”
옹기는 몸이 힘든 만큼 그 품질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통 방식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점토를 채취하는 일에서부터 숙성시키고 반죽을 하고 옹기를 성형하기 위해 흙을 가래떡 모양으로 만들기까지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질 때 기공이 많아져 옹기는 숨을 훨씬 더 잘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스 불이 아닌 장작 가마에서 구워야 비로소 제대로 된 옹기를 완성할 수 있다.
투박하고 수수할수록 가치가 높은 옹기
우리나라의 옹기는 지역마다, 기후의 특색에 따라 그 모양이 각기 다르다. 옹기의 형태는 아가리와 바닥 크기의 상대적 비율과 배가 나온 정도에서 지역적 차이가 있다. 기온과 일조량의 차이에 따라 중부 지역의 옹기는 일조량과 기온이 높지 않아 자외선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아가리를 넓히고, 영·호남 지역은 기온이 조금 더 높아 아가리를 좁혀서 수분 증발을 억제하고 어깨를 넓혀서 복사열을 많이 받도록 한다.
- 1 점토를 바닥에 내리치며 원형으로 만든 뒤 방망이질을 해 옹기의 바닥을 만든다. 2 타림질, 수레질, 근개질을 반복해 옹기의 몸체를 완성하면 마지막으로 옹기 아가리 부분의 테두리인 전을 잡는다.
“예부터 중부지방의 항아리는 오이씨 모양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항아리의 모양이 거의 일자이면서도 배 부분이 오이씨처럼 나와야 하는데 그 모양이 참 오묘하지요. 완전히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평한 것도 아닌 것이 전통적인 옹기 모양이라 구현하기가 쉽지 않아요. 아직 저희는 그 모양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는 오랜 시간 옹기를 만들면서 그 선을 제대로 살려 옹기를 만드십니다.”
넷째 아들 김용호 씨의 설명이다. 또한 옹기의 무늬 역시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데 중부지방은 산이 많아 주로 난이 많고 바닷가가 인접해 있는 남부지방은 게나 갈매기 등의 문양이 많다. 이러한 문양은 미적 효과를 주는 동시에 기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간장독의 경우 간장이 새지 않도록 위쪽에만 문양을 주고 된장독은 과감하게 문양을 그려 넣는다고 한다.
옹기는 고운 흙으로 만든 청자나 백자와는 달리 작은 알갱이가 섞여 있는 질(점토)로 만드는데, 가마에서 소성될 때 질이 녹으면서 미세한 구멍이 형성된다. 이 미세한 기공으로 공기·미생물·효모 등이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온도·습도 등도 흡수 조절할 수 있어서 발효 식품을 썩지 않게 오랫동안 숙성 저장하는 데 가장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옹기는 단열에도 뛰어나 여름철의 직사광선이나 겨울철의 한랭한 바깥 온도를 조절해준다. 그리고 깨뜨린 옹기를 땅에 버려두고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옹기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옹기의 자연 환원적 특성이다.
- 전통 방식으로 장작 가마에서 구운 옹기에는 옹기와 바닥이 혹은 옹기와 옹기가 붙지 않게 차독을 뿌린다. 이 차독은 판매되기 전에 창떼칼로 떼어낸 뒤 판다.
“옹기를 고를 때는 겉모습이 매끈하면서 예쁜 것보다는 약간 들어간 부위도 있고 색도 곱지 않은 투박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옹기를 가스 불에 구우면 열이 고르게 전달되기 때문에 그만큼 표면도 매끈하고 모양도 예쁘게 나오지만 장작불 가마에 구우면 가마 앞쪽과 뒤쪽, 옆쪽에 전달되는 온도가 달라져 모양이 덜 예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장작불에 구운 옹기는 기공이 훨씬 많고 완성된 옹기의 구워진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에요. 그래서 발효 음식을 더욱 맛있게 보관해줍니다.”
옹기는 겉보다는 안쪽 면을 보고 골라야 하는데 잘 구워진 옹기는 안쪽 면에 광이 난다. 잘 구워졌다고 모든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점토가 완전하게 구워진 것은 소금·간장·고추장을 보관하면 좋고 중간쯤 구운 것은 된장, 그다음은 김치·소금을 보관하면 좋다. 물은 가장 덜 구워진 옹기에 보관한다. 덜 구워질수록 기공이 큰데 김치나 효소는 공기가 잘 통할수록 맛있게 숙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육안으로 용도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옹기를 구입할 땐 믿을 만한 옹기점에 직접 방문해 반드시 사용 용도를 말하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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