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어쥬 테숭. 껌발라숭(얼굴에 땀나요. 목말라요)?"
갈 길이 한참 먼데 벌써 지쳤다. 오전 10시, 마칼루 산골 왈룽 니샤르 집을 떠나 온 지 불과 네 시간밖에 안 됐다. 아직 마을이 가깝게 느껴지는 쿠와빠니에 도착했다. 앙 뗌바는 사내(열세 살 셋째 아들의 별명)를 시켜 저쪽 구석에 감춰 둔 아락(소주) 한 통을 꺼내왔다. 앞으로 사흘간 마실 술이다. 그거라도 없다면 어떻게 오를까.
↑ [월간산]짜께싸에서 잡아 온 히말라야 비단꿩을 불에 굽고 있다. 그러나 여름엔 장작에 좀처럼 불이 붙지 않는다. |
우리가 가는 곳은 왈룽 푸(왈룽마을의 여름 카르까 일대) 중에서 제일 높은 비르우띠라 불리는 곳이다. 양들이 잘 있는지 보고 소금도 먹이러 올라간다.
앙 뗌바,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르다
앙 사일라(누르부짜울의 셋째)를 만나 함께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오르게 된 건 마을에서 며칠 쉬고 난 뒤였다. 마침내 다시 만난 앙 뗌바는 마침 우리보다 하루 전에 카르까(움막)에서 사내와 함께 내려왔다. 그는 내게 에베레스트 자랑이 대단했다. 고산등반 경험이라곤 전혀 없던 그는 지난 봄 늦은 나이에 처음 참가한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잡일을 하는 엑스트라 셰르파였다.
그러다가 뒤늦게 베이스캠프로 합류한 에콰도르 등반가와 함께 정상에 오르기로 배정됐다. 무산소 등정을 시도하는 산티아고라는 청년은 시샤팡마(8,013m)를 등정하고 난 뒤에 헬리콥터로 날아왔다. 다운 원피스와 삼중화 등 장비를 다른 셰르파로부터 빌린 앙 뗌바는 산티아고가 비상시 사용할 산소세트를 들고 함께 올랐다. 둘은 정상까지 산소 없이 올랐다. 하지만 이내 몹시 힘들어진 산티아고는 결국 산소를 쓰면서 내려왔다. 산소를 내준 앙 뗌바는 첫 시도에 에베레스트를 정상까지, 그것도 무산소로 오른 것이다.
"텐디, 락파는 두세 번씩 에베레스트를 갔는데 정상을 한 번도 못 갔어요. 늙은이야 늙은이, 하하."당시 동료 셰르파가 찍어 준 정상 사진을 여러 장 인화해 집에 붙여놓고 오는 이들마다 보여 준다. 첫 등반에 무산소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건 아마도 히말라야 등반 역사상 유례 없는 기록일지도 모른다.
↑ [월간산]암봉들에 둘러싸인 비끼따르 전경.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안쪽 깊숙이 카르까가 보인다. |
"저는 앞으로 십 년은 더 산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셰르파 남성들 사이에선 좋은 체력은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다. 체력이 약하면 마을에서 '남자의 일'들을 하며 사는 것 자체가 힘들다. 비록 돈벌이지만 에베레스트를 올랐다는 건 따라서 그들에게 중요하다. 물론 체력만큼 정상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셰르파의 체력보다 그가 가이드하는 외국인 대원의 체력에 등정 여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두 아들 텐디와 락파가 정상에 못 올랐던 이유는 함께한 대원들이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왈룽 니샤르의 집은 왠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텐디의 모친은 당분간 집에 없다. 사실 그녀는 얼마 전 가족들이 모두 동충하초를 캐러 산으로 올라갔을 때 갑작스럽게 지병이 도져 위독한 지경이 됐다. 카트만두의 동생, 즉 세븐 서밋 대행사의 밍마 사장에게 연락해 급히 헬리콥터를 불렀다. 카트만두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다행인지 딱히 큰 병은 아니고 위염과 관절염이란다.
네팔의 산동네 주민들이 병원을 찾는 첫 번째 원인은 각종 외상이고, 바로 뒤를 잇는 게 위장관계 질환이다. 음식을 짜게 먹을 뿐만 아니라 불규칙한 식생활 탓인 것 같다. 특히 여성 발병률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아마 밥을 했다가도 손님이 오거나 남성들이 더 먹고 싶어 하면 여성들은 군말 없이 양보하곤 했던 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요리는 사내를 제외하곤 모두 할 줄 안다. 밥만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술도, 아락(소주)은 떨어지지 않게 텐디와 락파 며느리들이 와서 끓여 만들어 놓는다. 창(막걸리) 역시 이 며느리들이 제법 담글 줄 안다. 다만 창을 짜 대접하는 건 때로는 앙 뗌바나 텐디가 직접 해야 할 때도 있다. 며느리들이 언제나 집에 붙어 있는 건 아니니까. 앙 뗌바는 혹시 그럴 때면 짓궂은 장난을 들킨 양 머쓱하게 웃어 넘겨버린다.
↑ [월간산]험한 언덕을 넘어 비르우띠에서 내려오는 도중 잠시 쉬고 있는 부자 |
에베레스트에서 돌아온 앙 뗌바는 다시 사내와 함께 60마리 양을 돌보러 카르까(움막)를 왕복하기 시작했다. 여름 카르까(푸)는 겨울 카르까(롱)와는 다른 곳으로 오른다. 여름에는 양들이 너무 덥기 때문에 4,000~5,000m까지 올라야 한다. 눈이 녹고 몬순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 높은 땅에는 믿기지 않게 부드러운 풀들이 사방에 돋아난다. 대신 이곳까지 오르려면 이틀간 종일 걸어야 한다. 게다가 내내 비가 오는 탓에, 양들은 털이 막아 주지만 사람들은 온몸이 젖어 추위에 떨며 밤을 보내야한다. 겨울 카르까에 비해 더 고되다. 겨울엔 마을 뒷산을 몇 시간 오를 뿐인 데다가 날씨도 언제나 맑다.
게다가 여름엔 마을에서도 모든 게 불편해진다. 계속되는 비는 모든 걸 조금씩 망쳐놓는다. 빗속 진흙탕에서 거머리와 싸워가며 농사일로 바쁘다. 진창으로 변한 길,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잡초들, 썩어가는 나무, 매일같이 흠뻑 젖어버리는 옷. 그리고 거짓말같이 많은 거머리. 모두들 발과 다리가 피투성이다.
한편 나는 거머리에 조금은 적응됐다. 전처럼 소름이 돋지는 않는다. 하지만 용변을 볼 때 붙었는지 두 마리가 사타구니에 한참을 달라붙어 어린애 손가락만큼 뚱뚱해진 걸 떼어낼 때는 정말 끔찍했다. 피가 흘러내려 그날은 내내 찝찝했다.
고산등반보다 더 오르기 힘든 카르까
"풀라 두아이(푸에 갈래요)?"
↑ [월간산]창을 만들기 위해 옥수수를 맷돌로 갈고 있는 깐치와 며느리 사일리 |
오랜만에 만난 사내는 친구가 생긴 양 나를 잘도 따랐다. 이젠 여름 카르까에 나를 데려가고 싶어 안달이다. 마을에 남으면 뭘 하겠나, 겨우 며칠 쉬었다고 나도 좀이 쑤신다. 가만히 있질 못하고 내내 돌아다니는 셰르파 남자들이 얼마간 이해가 간다.
사흘 일정으로 새벽부터 일찌감치 올랐다. 그전처럼 먼 길 떠날 때 창을 짜 주는 모친이 없으니 부친은 아락으로 대신한다. 윗마을 누르부짜울을 들러, 장모님 댁(밍마의 모친)과 까르마 뗀지 집에서 각각 아락을 얻어 마시고 얼근해진 채 오른다. 첫 날은 비끼따르라는 곳까지 간다.
'이렇게 힘든데 도대체 그동안 왜 산에 다녔을까?'
'이젠 그만 좀, 따뜻하고 편한 곳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
이런 생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 [월간산]비끼따르 카르까에서 멀리뛰기 놀이를 즐기는 셰르파들. |
오르막은 끝이 없었다. 설악산 오색 코스를 세 배는 늘려 놓은 것 같다. 게다가 점점 숨이 가빠지는 고소라니. 오후가 되면서 급기야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너무 지쳐 걸음을 떼기 어렵다. 히말라야 고산을 오를 때도 아주 힘든 때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당시는 별 생각도 없었다. 그걸 하러 간 거니까. 하지만 지금은 처량하기만 하다. 이렇게 낯설고 외딴 곳에서 무슨 고생인가? 몸이 힘들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우울한 생각들은 뿌리치기가 어렵다.
사내는 앞으로 30분이면 비끼따르라고 했지만 두 시간이 걸려 겨우 도착했다. 괜히 따라와서 폐가 된 건 아닌가. 손님대접을 받으며 쌀이나 축내고, 대체 나는 이렇게 살아가던 대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무슨 도움을, 보답을 줄 수나 있나? 하지만 카르까에 도착해 설탕을 듬뿍 탄 뜨거운 차를 마시고 불을 쬐고 나니 밀려드는 편안함은 이내 그런 걱정들을 슬며시 지워버린다.
비끼따르는 '암봉의 평원'이란 뜻으로, 마치 원형경기장처럼 주변에 바위 봉우리가 둘러 있고 가운데 널따란 평원에 카르까가 하나 있다. 주변에는 소 20~30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개중엔 며칠 전 저 아래 짜께싸라는 곳에서 ''(늑대)이 없는 곳으로 몰아놓고 왔다던 앙 사일라의 소들도 있다. 카르까에는 예전 겨울 카르까에서 만났던 춤사레 까일라(넷째)와, 얼마 전 앙 사일라와 함께 내려왔던 히시 누르부의 둘째 형인 뗀지 누르부가 있다.
"바르삽(대장님), 오늘 여기 있는 게 어때요? 그러면 사내도 여기 함께 있으라고 할 테니까."
"아뇨, 아뇨. 이제는 괜찮아요. 함께 가요."
↑ [월간산]비끼따르 카르까에서 젖을 짜고 있는 누르부짜울의 마일라 누르부. |
새벽 5시,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누르부와 까일라는 벌써 나가 젖을 짜고 있다. 어제 너무 지쳐 걱정하게 했던 게 미안했지만 오늘은 괜찮겠지.
그러나 웬걸, 비끼따르부터 비르우띠까지 가는 길은 마을 사람들조차 다니지 않는 벼랑 사이 샛길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아래쪽 평원들을 이어가며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비르우띠는 '암봉 위'라는 뜻으로, 막다른 곳이어서 오직 그곳 카르까에 볼 일이 있는 사람들만 간다. 길이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가파른 사면을 기어오른다.
도중에 사내를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짜께싸에 보냈다. 근처에 설치된 덫을 보고 오라는 거다. 앙 뗌바 역시 벼랑 끝에 걸린 두 개의 덫을 찾아 검사한다. '다페', 즉 히말라야 비단꿩을 잡기 위한 덫이다. 하지만 덫엔 아무 것도 없었는데, 대신 사내가 한 마리 잡아들고 온다. 이번엔 암컷이다. 암컷은 짙은 누런색으로, 며칠 전 잡아먹은 화려한 수컷에 비하면 그다지 볼품은 없다.
이내 풀들도 거의 없는 꽤 높은 고개까지 올라왔다. 조금만 가면 비르우띠라 하고, 이곳은 비르우띠 라(고개)란다.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노란 우비를 걸쳐놨기에 뭐냐 물으니 이 못 오게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란다. 부친은 가져온 룽다(경전이 적힌 오색 깃발 띠)를 비르우띠 라에 펼쳐 걸으며 간이 푸자(제사)를 지낸다.
조금 내려가니 바위 푹빠(굴)에 화덕을 꾸며놓고 쉼터를 마련해 놨다. 카르까는 없단다. 대신 천연 카르까다. 고도가 꽤 높은데다가 비가 계속 내려 꽤 춥다.
↑ [월간산]짜께싸의 꿩 덫에 걸린 암꿩을 잡아 들고 오는 사내 |
"누가 왔다 갔네!"
장작의 양이 줄어 있는 걸 대번에 눈치 챘다. 아마도 동충하초를 캐러 온 타지 사람들이 머물다 간 것 같단다. 장작을 해오려면 저 아래 강 쪽으로 내려가 하루가 꼬박 걸린다.
라면으로 요기를 한 뒤 앙 뗌바와 사내는 아래쪽으로 단체로 내려가 있는 양들을 몰아온다. 소금을 먹이고 수를 세어본다. 꼭 예순 마리다. 앙 뗌바는 양떼들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겨울 갓 태어났던 새끼들이 이젠 꽤 큼직해져 어미들과 비슷하게 자라났다.
"얘가 지난번에 엄마 잃어버렸던 양이에요."
"쟤는 우두머리 사레(수컷). 요즘엔 사람 안 쳐요, 하하."
↑ [월간산]뿔이 멋지게 자란 숫양을 지켜보는 앙 뗌바. |
내 눈에는 털 색깔만 달랐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된다. 양들은 이곳에서 3주가량 더 머물다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짜께싸로 내려갈 거란다.
추위에 떨며 보낸 바위굴에서의 하루
오늘 저녁도 꿩국이다. 하지만 비린내가 심한 데다 고기에 털뿌리가 숭숭 박혀 그리 맛있다고는 못하겠다. 어쨌거나 배가 부를 때까지 부지런히 먹었다. 내일은 하루 만에 다시 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들고 온 비장의 선물, 한 홉 들이 조그만 양주를 꺼냈다. 네팔 산 양주인데 우리 돈 1,500원 정도밖에 안 되는 싼 술이다. 술에선 그야말로 공업용 알코올 냄새가 났다.
"가바(아저씨)가 술을 여기까지 들고 오다니…."
↑ [월간산]언덕을 넘어 내려가고 있는 앙 뗌바. |
앙 뗌바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연방 웃음을 짓는다. 그는 나를 직접 부를 땐 '바르삽'(대장님)이라 불렀지만, 그들 사이에 나를 일컬을 땐 '가바'(아저씨, 양반, 할아범 등등)라 불렀다. 뭐가 됐든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불러 주기만 바랄 뿐이다.
밤은 너무도 추웠다. 매트리스를 뚫고 돌바닥의 냉기가 그대로 올라왔다. 게다가 바위굴이라지만 한쪽이 훵하니 열려 있으니 가끔 비바람도 몰아친다. 남은 아락과 양주를 부친과 둘이 나눠서 마셨으나 술기운은 금세 사라진다. 옆에서 사내를 껴안고 자는 앙 뗌바도 밤새 끙끙거린다.
꿩 먹고 시치미 떼는 앙 뗌바
이튿날은 새벽 5시도 채 되기 전에 일어나 어제 남은 국밥으로 간단히 간식을 해먹고 하산을 서둘렀다. 남은 음식은 '펠라 또'(들쥐 밥)라며 돌 위에 올려놓는다.
가파른 길을 내려갈 때 부친 앙 뗌바는 이번엔 다른 덫에서 비단꿩을 두 마리나 잡아 왔다. 엄마꿩, 새끼꿩이란다. 사진기를 들이대니 부친은 한사코 찍지 말라고 한다. 게다가 수첩에도 적지 말라며, 혹시 '니꾼자'(공원 감시인)에게 발각되면 큰일이란다. 이 덫은 사실 춤사레 까일라가 설치해 놓은 건데, 비끼따르에서 만난 까일라에겐 시침을 뚝 뗀다.
↑ [월간산]비르우띠 라에 올라서서 새로 룽다를 걸고 작은 푸자를 지내는 부친 앙 뗌바. 가운데는 늑대를 쫓기 위해 비옷으로 만든 허수아비다. |
한 살 터울 까일라와 사내는 만나기만 하면 장난이다. 큼직한 돌 던지기 '도르뚝', 멀리뛰기 '총바' 등등의 놀이를 한다. 20대의 누르부도, 40대의 앙 뗌바도 함께 한다.
'애들 노는 데 왜 어른이 낀담'―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함께 돌을 던지고 놀았다. 내가 제일 멀리 던졌다며, 나중에 마을로 내려가서는 사내는 한참을 신기했던 듯 얘기를 하고 다닌다.
'얼른 마을로 내려가 쉬어야지' 하는 생각에 정오 즈음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심라'부터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시간을 채 못 달려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고, 두 시간 째부터는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나중엔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며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겨우 마을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저녁나절 도착한 누르부짜울의 할머니댁, 그러니까 밍마의 모친이자 앙 뗌바의 장모님 댁에서는 아락을 한 잔 받아마시자 도무지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치쥬(형), 저 오늘 다리가 너무 아파 니샤르 집 까지 못 가겠어요. 여기서 자고 갈게요."
셰르파들은 아파도 미소를 짓던데 나는 찡그린 표정을 감출 수 없다. 가만 보니 사내도 몰래 다리를 절뚝인다. 앙 뗌바는 힘든 기색이라곤 전혀 없는데, 아내도 없는 썰렁한 집에 가면 뭐 하겠나.
↑ [월간산]꿩 덫을 점검하는 앙 뗌바. 허술한 것 같지만 꽤 잘 잡힌다. |
"가바가 다리 아파서 여기 있겠대요."
내 핑계를 대면서 앙 뗌바도 함께 눌러 앉는다. 마침 깐치(막내딸)가 할머니 댁 밭의 잡초 뽑는 일을 하러 올라와 있었다. 부친 앙 뗌바는 낮에 잡은 두 마리 꿩을 자랑스레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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