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인호

이해인 수녀 "전화걸어 다짜고짜 '마님' 하며 내 건강 걱정해주더니

아기 달맞이 2013. 9. 27. 09:44

[동아일보]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 스님, 피천득 선생님, 구상 선생님, 박완서 선생님, 이태석 신부님, 장영희 교수, 김점선 화가.

나의 어머니, 그리고 가까웠던 지인들이 한 분씩 세상을 떠날 적마다 추모의 글을 참 많이도 쓰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러나 작가 최인호의 추모 글은 정말로 쓰고 싶질 않았어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1992년 발간한 동시집 '엄마와 분꽃'을 들고 있는 이해인 수녀. 최인호 작가는 지난해 발표한 이 시집의 낭송음반에 "아직 어린 날의 눈물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는 내게 들려주는 수녀의 동시는 영혼의 자장가다"라는 추천사를 썼다. 동아일보 DB

어젠 부산에서 본원 수녀 몇 명과 전주로 소풍 겸 순례를 가서 유서 깊은 전동성당에 들어가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나는 일행과 떨어져 전주교도소의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담당 신부님의 차 안에 있었습니다. 그때 '인호 형을 위해 특별 기도를 부탁한다'는 (출판사) 여백의 김 사장님 전화를 받았고, 저녁엔 영영 떠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젠 가슴이 먹먹하여 눈물도 나지 않더니 오늘은 새벽부터 마구 눈물이 쏟아집니다.

"아니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가족들은 다 어떻게 하라고?" "예수님의 생애를 꼭 소설로 쓴다더니 그 숙제는 어떻게 하고?" "서울주보를 최인호의 글 때문에 본다던 그 많은 독자들을 어떻게 하라고?" "우린 아직 보낼 준비도 안됐는데 그렇게 서둘러 가면 다인가? 서울깍쟁이 같으니라고!" 혼잣말을 되뇌며 원망을 해봅니다.

'언니, 어쩌면 좋아, 최인호 씨가 돌아가셨대. 내가 심장이 뛰고 눈물이 나오네. 추기경님이 종부성사(병자성사) 주실 때 눈을 뜨고 방긋 웃더래.' 내 여동생이 보낸 문자에서처럼 정말 웃으며 떠난 건가요?

2008년과 2009년 사이 우리는 서울성모병원에서 곧잘 마주쳤습니다. "어떻게 꾸준히 미사를 오느냐"고 물으면 "거 참, 수녀님도, 내가 지금 기댈 데가 저분밖에 더 있수?" 하며 성당 안의 감실을 가리켰지요. "내 병실에 꽃만 보내고 왜 문병은 안 왔느냐"고 물으면 "내가 좀 소심하니 겁이 나서 그랬수다"라고 했지요. "난 수녀님과 달리 음식을 잘 씹을 수가 없어 너무 괴롭다"며 같은 암환자라도 내가 부럽다고 했습니다.

"난 수녀님이 나랑 사귀다 실망해서 수녀원 간 거라고 뻥치고 다닐 거다. 으하하. 아, 재밌네!" 하기도 하고, "하느님을 믿다 보니 함부로 살 수 없어 꽤 부담이 되네" 하며 가끔은 투정도 부렸지요. 어느 날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장난기 가득한 음성으로 다짜고짜 "마님!" 하기에 "죄송하지만 누구세요?" 하니 "나야 나 최인호, 수녀님 상태는 좀 어떠시우?" 하고 근황을 물어왔습니다. 내가 오래전 선물한 묵주를 분실했다며 구해 달라기에 다시 보내 드리고 위로 편지도 주고받으면서 우린 서로를 진정으로 염려하고 기도해 주는 해방둥이 동무였고 정다운 문우였고 함께 암 투병 중인 동지였으며 완덕(完德)의 길을 지향하는 도반이었습니다.

유난히 하늘의 흰 구름이 아름답던 날. 한국 순교성인들의 피가 진하게 스며 있는 땅 전주에서 왠지 모를 눈물이 안으로 흘러 언젠가는 나도 떠나야 할 죽음 묵상을 많이 한 2013년 9월 25일. 다들 한결같이 한 소설가의 떠남을 슬퍼하네요. 병이 주는 고통을 받아 안고 잘 참아내느라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수많은 작품을 빚어 많은 이를 기쁘게 했던 끝없는 창작의 노력에도 감사했습니다.

이제 나보다 먼저 하늘길로 떠난 내 친구를 용서해 드려야겠지요? 용서 안하면 삐치실 거지요? 그러나 나는 빈소에도 장례식에도 가지 않고 수도원 골방에서 조용히 기도만 할 거니 서운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영정사진을 바라볼 용기가 나질 않거든요.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또다시 울고 싶지 않거든요.

만날 적마다 즐겁고 유쾌했던 우리의 대화가 더 깊은 침묵 속에, 성인들의 통공(通功) 속에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활짝 웃는 한 권의 소설로 하느님과 성인들을 기쁘게 해 드리세요. 가족과 친지들의 가슴속에서 '깊고 푸른 밤'의 '베드로 별'이 되어 주세요. '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치라'(루카 5장 4절)고 내 작업실 방명록에 적어준 성서 구절을 읽어봅니다.

'이해인 수녀와 나는 동갑내기이자 씨동무이자 피를 나눈 육친의 오누이다. 이란성 쌍둥이다. 수녀의 엄마는 내 오마니고 동심의 꽃밭에서 뛰노는 아이는 나다. 아직도 어린 날의 눈물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는 내게 들려주는 수녀의 동시는 영혼의 자장가이다.'

지난해 만든 동시 음반 '엄마와 분꽃'에 좋은 친구로서 얹어 준 추천의 글귀를 다시 읽으며 하얀 손수건에 떨어지는 눈물을 나의 기도로 봉헌합니다. 최인호 선생님, 베드로 형제님, 나의 벗님, 당신이 그리던 지복의 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사랑합니다.

'주 날개 밑 쉬는 내 영혼 영원히 살게 되리라' 성가를 부르며 향을 피워 올릴게요.

2013년 9월 26일 이해인 수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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