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은 역시 옹기항아리에 담가야 한다니까, 고추장이 참 잘 익었네요, 한 번 맛봐요?"
지난 여름 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아내가 앞 베란다에서 고추장을 맛보며 하던 말이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맛본 고추장은 정말 맛이 좋았다. 남향인 아파트 앞 베란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지난 봄에 담가놓은 고추장 항아리와 함께 간장과 된장 항아리도 나란히 놓여 있었다.
몇 년 전에 플라스틱 통에 장을 담갔다가 실패한 이후 아내는 해마다 장을 담글 때는 꼭 옹기항아리를 사용하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사용해온 옹기그릇은 우리 전통음식인 발효식품을 만들고 보관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가진 좋은 생활도구다.
외부와 내부 사이로 공기가 통하는 숨 쉬는 그릇인 옹기항아리는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은 물론이고, 김치를 담가 보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저장용기로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생활도구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질그릇은 제작할 때 그릇 표면에 잿물을 바르지 않고 진흙만으로 구워낸 그릇으로 표면에 윤기가 없다.
오지그릇은 역시 진흙으로 빚어 말린 뒤 표면에 유약(오짓물)을 입혀 구워낸 그릇으로 표면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질그릇과 다른 점이다.
질그릇은 견고성과 방수성이 약한 편이지만 오지그릇은 방수가 잘 되고 견고성도 질그릇보다 높다.
그래서 오지그릇인 옹기항아리는 김치는 물론 각종 장을 담가 보관하는데 아주 유용한 용기로 사용된다.
우리 조상들이 옹기그릇을 만들어 사용한 역사는 매우 깊다.
역사서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와기전'이라는 직제가 있어 오지그릇을 굽는 전문장인을 두었다고 전한다.
'경국대전'에도 조선에서는 중앙과 지방 곳곳에 옹기장을 두어 관리했다고 한다.
오랜 옛날부터 농경사회를 이루어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흙을 빚어 유용한 생활용기로 사용할 수 있는 옹기제조에 남다른 지혜와 전통을 이어왔다.
돌을 이용한 석재나 나무를 이용한 목재 용기보다 운반의 편리성이나 견고성은 약하지만, 용도가 다양한 옹기그릇은 농경사회에서는 그 효용성이 훨씬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에도 옹기그릇의 대명사로 통하는 오지그릇은 옛날부터 질그릇보다 그 용도가 훨씬 다양했다.
간장․된장․김치 항아리, 물동이, 밥사발, 국과 물대접 등 주로 저장용기와 주방용구 등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살림그릇으로 이용된 오지그릇의 종류도 많았다.
옹기그릇들의 다양한 모습과 용도를 살펴보면, 먼저 '독'은 운두가 높고 중배가 부르며 손잡이가 달린 형태이다.
물을 담아 놓는 물독과 쌀독, 젓갈독이 대표적이다. '중두리'는 독보다 조금 작고 배가 부른 형태다. 아주 특이한 이름의 '바탱이'는 중두리보다 배가 부르고 키가 작다.
'소래기'는 굽 없는 접시 모양의 넓은 그릇으로 독의 뚜껑으로도 쓰인다. '자배기'는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쩍 벌어져 있다.
'버치'는 자배기보다 조금 깊고 크며 김치를 담글 때나 빨래할 때 사용했다. '두멍'은 물을 길어 붓고 쓰는 큰 동이로 사용되었다. '동이'는 몸이 둥글고 아가리가 넓으며 양옆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물동이는 물을 길어올 때 아낙네들이 머리에 이고 다니기에 편리하게 사용되었다.
'푼주'는 아래는 뾰족하고 위는 쩍 바라졌다. 주방용품으로 사용되었다. '밥소라'는 위가 좀 벌쭉하고 밑에 높직한 굽이 달려 있으며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밥과 떡국, 국수 따위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귀때동이'는 귀가 달린 그릇으로 거름을 논밭에 옮겨 뿌리거나 나르는데 사용되었다. '동방구리'는 동이보다 배가 부른 그릇으로 역시 물이나 술, 장 등을 담가두거나 옮길 때 사용되었다. '단지'는 자그마한 항아리로 배가 부르고 목이 짧다.
작은 양의 고추장이나 된장 간장, 또는 술 항아리로 사용되었다. '소줏고리'는 동이의 밑쪽을 마주 붙이고 꼭지를 달아 소주를 내리게 만든 그릇이다. '귀때'는 간장이나·기름, 술등을 병에 옮겨 부을 때 사용했다.
오지그릇은 이외에도 필통이나 연적, 벼루, 문진 등 문방구는 물론, 등잔이나 등잔대, 촛대, 재떨이, 담배통, 화분과 화로, 요강 등의 실내용구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부엌용품으로 깨와 소금, 고춧가루를 조금씩 담아 놓고 사용하던 양념단지, 곡식이나 마늘, 생강 등 양념을 갈아 쓸 수 있는 확과 확독, 술병이나 물병이 있고, 굴뚝도 오지그릇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아주 특별한 용기로 술이나 물, 똥이나 오줌 등을 운반할 때 사용하던 '장군'도 있었다.
사용용도에 따라 술장군, 똥장군, 오줌장군, 물장군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질그릇으로는 콩나물을 기르거나 떡을 찔 때 사용하는 시루를 들 수 있다.
이렇게 널리 이용되었던 옹기그릇은 현대에 들어 생활양식이 변하고 플라스틱과 비철금속, 유리 등 식기재료의 발달로 그 쓰임새가 극히 제한되고 있지만, 발효식품의 제조와 저장용기로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각광을 받고 있다.
지금도 크고 작은 옹기항아리들과 독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장독대는 멋스럽고 아름다운 옹기문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옹기그릇은 우리 조상들의 멋과 아름다움, 지혜가 깃들어 있는 생활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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