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밤 프랑스 낭트서 시낭송회
(낭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주변에서는 내가 다작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시를 더 써야 합니다. 시를 쓰는 것이 내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써야 할 시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서 죽을 수도 없어요"(웃음)
28일 밤(현지시각) 프랑스 제2의 문화도시 낭트에서 시낭송회를 열고 현지 독자들과 만난 고은(80) 시인은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답게 시 예찬론을 펼쳤다.
이날 밤 낭트 시내의 복합문화공간 코스모폴리탄에서 프랑스 독자와 교포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낭송회를 연 그는 "나는 문자가 참 좋다. 문자를 보면 지독하게 행복하고 몸이 끓어오르는 것 같다. 어느 순간 단어 하나도 시가 돼버린다"고 말했다.
세계 각지에서 낭송회를 연 그에게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독자들에게 시의 감동을 전하는 노하우를 물었다.
그는 "시를 낭송할 때에는 늘 현장에서 떠오르는 대로 한다. 내가 미리 만들어놓은 액자에 청중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벌거숭이 상태로 현장에 가서 그들의 열린 마음과 만난다"고 했다.
"언어 이전에 소리나 눈빛, 얼굴의 미묘한 표정이 모두 다 언어입니다. 그런 내 언어에 번역을 더해주면 시를 듣는 이들의 심장이 그 모든 걸 아우르면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뜨겁게 만드는 것이지요."
여든 고령에도 그는 최근 한국에서보다 유럽 등지의 외국에서 더 왕성하게 활동하며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3월부터 이탈리아 카포스카리 대학 초청으로 베네치아에 머물르는 그는 로마대학, 나폴리대학과 더불어 동양학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이 대학의 '명예 펠로우(Fellow)'로 임명돼 한국문화를 강연했다.
5월 초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세계 주요 시인이 모인 세계 시인대회에 아시아 시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아 참여하기도 했고 다음달 1일에는 이탈리아 3대 극장 중 하나로 꼽히는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시낭송회도 앞두고 있다.
6월 선시집 '뭐냐'의 이탈리아 출간에 맞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로마, 밀라노, 나폴리 등지에서 이탈리아 독자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이렇게 숨돌릴 틈 없이 바쁜 행보를 이어가는 그에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의 원천을 묻자 "타고났다"는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우리 아버지는 달이 뜨면 맨발로 마당에 나가 춤을 추는, 흥을 돋우는 분이었는데 아버지의 그런 면을 물려받았어요. 우리 조상은 땅의 지신에게 술을 부어 춤추게 한다고 했는데 내 조국의 흙이 나에게 주는 흥이 내 발바닥에서부터 온몸으로 올라와 지금도 이렇게 철없이 흥겹네요. 나는 아이입니다."
젊은 시인들은 시집을 내놔도 제대로 팔리지 않아 '시는 죽었다'고까지 푸념하지만 그래도 그는 시인이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시를 노래하고 시인을 황홀하게 여기는 시절이 아니라 시가 죽어간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오늘, 시의 죽음을 방어하기 위한 마지막 등불처럼 남아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받은 시인의 생애입니까. 이럴 때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는 "인간이 있는 한, 지구가 없어지지 않는 한 본성으로서의 시는 없어질 수 없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울어야 하고 아파야 하며 기쁨의 절정에 이르면 미쳐 날뛰어야 하고 뭔가 읊어야 한다. 그런 게 바로 시"라며 "시의 죽음을 걱정하지 말자"고 했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후배 시인들에 대한 당부를 부탁하자 "선배로서 그들에게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들 자신이 최초의 시인이기를 바란다. 그들이 시의 역사에 짓눌리지 않게 자유를 주고 그들을 해방시키고 싶다"고 바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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