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골목여행 ②문래동 골목길

아기 달맞이 2013. 5. 27. 07:11

'예술공단.'

이름도 생경한 이곳을 어느 잡지를 통해 알게 된 후 하루라도 빨리 손양과 함께 그 골목을 걸어보고 싶었다. '예술'과 '공단'이 라는 두 단어의 어울리지 않는 조화가 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보통 우리가 갖는 못된 편견 중 하나가 공단이라는 곳은 칙칙하고 어둡고 몸으로 하는 단순한 노동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굴뚝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와 검붉은 녹가루 대신 예술이 스멀스멀 피어났다니…….

낮에는 쇳소리가 넘쳐나는 노동의 공간이고, 밤이 되면 예술을 즐기는 예술 공장의 세상으로 바뀌는 곳. 과거 홍대 주변에서 활동하던 예술인들이 월세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나둘씩 문래동 철재상가 2, 3층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는 수많은 작업실에 많은 예술가들이 회화, 조각, 디자인, 무용, 마임, 연극, 미술비평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활동을 하는 곳으로 정착했는데 이곳에도 변화가 곧 밀려들 것이라고 한다.

재개발 이야기가 나돌면서 개발이익과 지속가능한 예술공간으로의 유지 사이에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문래예술공단'에 정착한 가난한 예술인들은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토요일 늦은 오후인데도 쇠를 다듬는 독특한 소리가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마 밤이 되면 다시 예술의 소리로 가득하겠지? 이렇듯 문래동 예술공단의 골목은 두 얼굴의 삶이 공존하고 있는 듯했다.

두터운 철문을 경계로 안쪽에는 철을 녹이는 노동과 삶의 현장이, 그리고 문 밖으로는 그러한 삶을 또 다른 시각으로 승화하려는 예술의 현장이 있었다. 그리고 경계가 되는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분리선이지만 차단이 아닌 소통의 문이다.

처음 예술인들이 이곳에 왔을 때는 공업소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곤 했다고 한다. 2층 사무실 한쪽을 뜯어내고 페인트칠하고, 그리고 밤에는 이상한 퍼포먼스다 해서 웅성웅성 대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철공소 문을 보니, 늦은 저녁 서로에게 소주 한잔 권하며 고단했던 하루의 삶에 대해 서로를 위안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철과 사람과 예술이 공존하는 곳, 그곳은 바로 '문래동 골목'이다. 어린 손양도, 이 세상도 모두 서로의 세계에서 함께 공존하며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출처 : 열살전에 떠나는 엄마 딸 마음여행
저자 : 박선아 지음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