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서 자수 經典 전시하는 이명수 할머니]
금강경·아미타경 등 4권 전시, 한 권 완성하는 데 2년씩 걸려… 잠자는 시간 빼고 자수에 매진
"남들 못하는 공양 하고 싶었지… 죽거든 장례비도 보시할 거야"
"늙은이 공부 삼아 한 일 뭐 볼 거 있다고…. 욕심 버리고, 부처님 법대로 살자, 그저 그것뿐이야."
16일 아침 서울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 건물 1층 '나무 갤러리'. 전시장 벽에 펼쳐놓은 불경들이 가득 걸렸다. 모두 수천수만 번 손바느질을 해 자수(刺繡)로 한땀 한땀 완성한 작품들이다. 종일 매달려도 한 권을 완성하는 데 2년이 넘게 걸리는 작업.이명수(85) 할머니는 한글·한문 금강경과 아미타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등 4권을 갤러리에 전시 중이다. 봉축 주간 조계종 총무원 건물 갤러리에서 이름난 화가도 아닌 할머니의 전시를 택한 것이다.
↑ [조선일보]16일 서울 조계종 총무원 건물 1층 나무갤러리에 전시된 자수 불경 앞에서, 이명수 할머니가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의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전기병 기자
할머니가 "대단한 일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칠 때,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이 그 손을 꼭 잡았다. "올 초봄에 대웅전 불단(佛壇)에 조용히 경전을 올리는 모습을 봤어요. 직접 수를 놓은 경전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찡'하고 울리는데, 그 마음을 부처님오신날 맞이하는 불자들과 나누고 싶었지요. 꼭 전시를 하자고 제가 조른 거예요." 전시 제목은 자수성가(自修成佳), '스스로 닦아 아름다움을 이루다'.
할머니는 신식 교육을 받고 20대에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 '인텔리 신여성'이었다. 결혼하고 교편을 내려놓은 서른 즈음부터 자수 경전을 짓기 시작했다. "오른손은 밥도 하고 뒷간 갈 때도 쓰니까, 부처님 말씀 수놓는 데는 청정한 왼손을 쓰고 싶었어. 그래서 왼손 바느질 연습부터 시작했었지."
48세 때 남편과 사별하며 처음 지은 자수 경전 몇 권을 같이 태웠다. 1남 3녀를 모두 결혼시킨 뒤, 할머니의 경전 자수는 자기만의 수행(修行)이 됐다. 잠자는 시간 빼곤 종일 경전 자수에만 매달렸다. 손마디마다 바늘에 찔려 깊은 굳은살이 박였다. 그 흔한 등산 한 번, 여행 한 번 가지 않았다. 눈을 너무 혹사한 탓에 10년 전엔 갑자기 반 실명(失明)이 됐다가 1년 반 만에 회복된 적도 있다. "절에 갈 땐 늘 빈 마음으로 가지. 한 번도 돈 달라 복 달라 빌어 본 적은 없어. 그저 아이들 착하고 건강하기만 바랐는데 다 이뤄졌으니 남이 못하는 공양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싶었던 것 같아."
할머니는 얼마 전 고관절 수술을 해 오래 앉지 못하게 되면서 이제 경전 자수도 내려놓았다. "아이들에게 '내가 죽으면 장례비는 절에 다 보시하고 가장 싼 관에 실어 태우라'고 다짐을 받아뒀어. 절에 보시하면 밥으로 불법(佛法)으로 많은 이에게 쓰이잖아. 내 몸은 태워서 산에 뿌려주면 좋겠어. 개미나 벌레 같은 미물들에겐 늙은이 뼛가루라도 쓸모가 있을 테니까." 주름살 곱게 팬 할머니 얼굴이 불보살의 상호(相好)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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