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엔 별것들이 죄다 나와 있는 시장구경만큼 재미난 일도 없었다. 지금은 백화점이나 마트에 나가면 재래시장보다 훨씬 더 많은 세련된 모양의 별것들이 화려한 등 아래 멋지게 진열되어 있어서 구경 나온 사람 눈을 어서 사라 현혹할지 몰라도, 그래도 이런저런 구경하 는 재미가 어디 시장에 비할까. 재미라면 일가견이 있는 어린 손양도 백화점 구경보다는 시장구경가자는 말을 더 반가워할 정도니까.
'경안시장'은 경기도 광주 지역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이곳 시장은 조선조 때부터 오일장이 섰는데, 조선시대에는 경안역에 속했다고 한다. 옛 기록 『중정남한지』를 살펴보면 3일과 8일에 장이 섰다는데, 계산해보면 경안시장의 역사는 적어도 300년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우시장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시장에서는 물건구경뿐 아니라 사람구경도 참으로 재미지다. 물건 을 파는 이, 물건을 사는 이 모두가 시장통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우 리'가 된다. 허름한 좌판의 할머니가 내 할머니 모습 같아 마음 한 구석 이 짠하면서도, 한편 일 푼이나마 당신의 손으로 직접 벌이하시는 그 분들의 강인한 생활력 앞에서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나태한 내 모습을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경기도 광주의 오일장인 경안 재래시장에서 손양과 함께 그런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엄마, 저 할아버지는 무엇 하시는데요?"
"빵꾸가 나서 빵구 때우는거여!"
대답은 할아버지가 해주셨다. 할아버지의 능수능란한 솜씨로 푹 꺼진 자전거 바퀴는 금세 탄력 있는 바퀴로 탈바꿈했다. 멀리멀리 지구 끝까지 잘도 달릴 것 같은 자전거로 변신하는 과정을 손양과 유심히 지켜보자니 그 자전거를 타고 달나라 여행이라도 떠나야 할 것 같았다.
해가 넘어가자 오일장도 슬슬 파장 분위기였다. 펴놓았던 자리와 미처 팔지 못한 물건들을 다시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오일장 좌판의 할머니를 해거름에 다시 뵈었다. 할머니의 굽은 허리에 가슴이 시렸다. 아직 다 팔지 못한 할머니의 야채들이 과연 내일까지 신선한 상태를 유지할까 못내 걱정이 되었다.
"엄마, 그러니까 내가 아까 할머니 야채 다 사 드리자고 했잖아요."
"그러게, 구경 다 한 다음에 사려고 했는데, 네 말대로 할 걸 그랬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마음들이 있다. 겸손한 마음, 희생하는 마음, 절약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그러나 시장에 가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그런 마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손양도 어른이 된 어느 봄 날, 시장에서 만났던 이런 마음들을 떠올 리며 혼자 배시시 웃게 되지 않을까. 바로 이런 맛에 시장으로 나서는 것 아니겠는가?
출처 : 열살전에 떠나는 엄마 딸 마음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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