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esc]커버스토리/요리
경북의 마약김밥
청도 할매김밥
단무지 등 기본 속재료 쏙 뺀
칼칼한 맛 별미
여수 보양김밥
한우를 햄처럼 잘라 넣어
든든한 한 끼
제주 다가미 건강김밥
생선 모양 살린 꽁치김밥
올레꾼들 늘어나며
전국구 별미로 등극
한 줄에 500원 하는 김밥을 맛보려고 몇만원을 지불하고 고속열차를 탄다고? 무릇 조선시대 음식기행서인 <도문대작>(1611년)을 쓴 허균의 행적에 경의를 표하는 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여행길이다. 길을 나서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도와 안내자다. 매년 전국 레스토랑 가이드북을 출간하는 '다이어리알(R)'의 이윤화 대표가 안내자로 나섰다. 그가 전국의 맛깔스런 김밥집을 추천한다.
"(너희) 집에 먹을 거 많을 건데 뭐할라꼬! (김밥을 먹으러 왔냐!)" 칠순이 넘은 할머니는 주름진 손을 휘저어가며 찾아온 손님을 타박한다. "할매, 새끼들이 (김밥)얘기하는데, 못 이겨요." 경북 청도의 '할매김밥'은 몇 초 단위로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옆집 아저씨부터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온 여행객들까지 문전성시다. '마약김밥'은 서울 광장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 개에 500원. 네줄 묶음부터 판다.
경상북도 청도 하면 소싸움, 개그맨 전유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요즘은 한가지가 더 추가됐다. '할매김밥'이다. 할매김밥은 둘둘 만 모양 그대로 나온다. 통째로 뜯어 먹는 김밥이다. 단무지, 소시지, 달걀 같은 건 볼 수 없다. 그저 흰밥에 할매가 무말랭이 등을 매콤하게 양념한 속이 들어간다. 아삭하다. "(속 만드는 방법은) 묻지 마세요. 어머니가 다 만드신 거예요." '할매'와 마주 앉아 김밥을 말고 있는 며느리의 말이다. "요즘 느끼한 게 많잖아요. 그래서 (우리 것을) 좋아하나 봐요."
'할매'는 20여년 전부터 김밥을 팔았다. 전국 할매들을 생업전선에 뛰어들게 하는 이유는 자녀양육이다. 할매도 1남3녀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청도역 앞 좌판이 일터였다. 할매김밥을 유명하게 만든 이들은 등산객들이다. 청도 인근의 화악산, 상운산, 철마산,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운문산 등을 찾은 등산객들이 입소문을 냈다. 10여년 전부터는 작은 가게를 얻어 김밥을 판다. 큼지막한 간판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다. 주소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너무 많이 와도 힘들어, 둘이 다 못 만든다니깐." 청도역에서 길을 건너 코사마트와 새마을금고만 찾으면 된다. 그 사잇길로 들어서면 눈에 잘 띄진 않지만 할매김밥을 발견한다.
할매김밥과 청도에서 쌍벽을 이루는 '초롱분식'도 들러볼 만하다. 벽에는 주인이 전유성, 개그맨 김신영 등과 찍은 사진이 눈에 띈다. 예순일곱의 정호수씨가 며느리와 9년째 운영한다. 오징어김밥, 무말랭이김밥, 매운멸치김밥 등. 가격은 1300~3000원.
청도에서 기차로 약 30분 거리, 대구시에도 이름이 알려진 김밥집들이 있다. 대구 신암1동의 '또또김밥'은 단 두 종류, 즉석김밥과 양념김밥이 있다. 양념김밥은 고춧가루가 들어가 맵다. 사위 이세홍(33)씨가 장모님과 운영한다. 경북대 앞에서 시작해 프랜차이즈 김밥집으로 성공한 '바뷔치'는 매콤한 양념이 들어간 매참김밥이 인기다.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는 "'마약김밥'이라고 부르는 포항시 죽도시장의 대화식당 김밥과 부산 고봉김밥도 가볼 만하다"고 추천한다.
김밥여행은 바다를 건너 이어진다. 흑돼지, 옥돔, 귤, 각종 생선 등 먹을거리가 넘치는 섬인 제주도에서 날개 달린 듯 팔리는 김밥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올레꾼들 덕이다. 해마다 올레길 걷기에 나서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김밥의 인기도 치솟았다.
"저희 집은 제주에 도착해 사가고, 비행기 타러 가는 길에 또 사가는 곳이에요." 공항에서 택시로 10분 거리에 있는 김밥집 '다가미'의 주인 한비파(53)씨의 인사말이다. "인스턴트음식에 길들여진 분들은 우리 김밥이 맛이 없다고 해요." 그의 김밥에는 인공조미료도 햄도 단무지도 들어가지 않는다. 7년 전부터 김밥집을 운영했으나 약 3년간 몸이 아파 문을 닫았었다. "먹는 거에서 병이 온다는 걸 알았죠. 음식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음식으로 사업을 하는 데 무한책임을 느꼈지요." 그는 건강레시피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지금 다가미의 김밥들을 만들었다. 차림표에 적힌 '다가미'를 빼고는 모든 김밥들이 크다. 양손이 다 동원된다. '쌈'자가 붙은 김밥은 여러 가지 재료를 아담하게 폭 싼 상추쌈이 재료다.
'삼겹김치쌈김밥'에 젓가락을 푹 넣어 파헤치자 보들보들한 삼겹살이 나타난다. 김치까지 더해서 고소한 맛과 매운맛 모두 잡았다. 이 둘을 상추가 감싼다. '장조림버섯쌈김밥'도 마찬가지. 쭉쭉 찢은 장조림이 버섯을 만났다. '스테이크롤김밥'은 간 고기를 양념해서 마치 떡갈비처럼 만든 게 재료다. 된장, 마늘, 고추가 들어가는 '화우쌈김밥'은 "가장 한국적인 김밥"이라고 한씨가 자랑한다. 가격은 2000~4500원. '다가미'(多加味)란 문패의 뜻은 '알찬 느낌의 김밥'이란 생각을 담아 지은 거라고 한다. 일요일은 휴무. 토요일은 3시까지만 한다. 손님이 몰려와도 예외는 없다. "휴식이 필요하죠. 나만의 휴식시간을 갖자는 생각이에요."
제주도 북쪽에 다가미가 있다면 남쪽에는 '오는정김밥'이 있다. 제주시 서귀포시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인근에 있는 '오는정김밥'은 부지런을 떨어야 먹을 수 있다. 한시간 전 예약은 필수다. 오다가다 들러서는 못 사고 나오기 십상이다. 바삭하게 튀긴 유부가 매력. 김밥이 마치 과자 같은 맛을 선사한다. 30여년 역사를 자랑한다. 허름한 상가 1층에 자리잡은 이 집 벽에는 다녀간 유명인들의 사인이 즐비하다. 5월 초 이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척에 있는 꽁치김밥을 빼놓고 여행을 마칠 수는 없다. 시장의 '우정회센타'에는 꽁치김밥이 있다. 말 그대로다. 꽁치가 단무지나 햄, 달걀을 대신해 속 재료로 나섰다. 주인 강지원(40)씨는 어머니 윤순자(67)씨와 7년 전 일식집을 열었다. 식탁이 8개였던 작은 집이었다. "단골들에게만 꽁치김밥 말아서 줬죠." 그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예 회상에 반찬으로 나온다. 꽁치김밥만은 3000원. 일본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등 요리 실력을 닦은 그의 솜씨다.
꽁치김밥은 볼수록 요상하다. 머리와 꼬리가 앞뒤로 삐죽 나와 있다. 김밥의 단면을 살피자 몸통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다. "몸통이 일그러지지 않고 뼈와 내장만 발라내는 거, 알려줄 수 없는 저만의 기술이죠." 강씨가 웃는다. 밥에는 따로 소금이나 설탕 등 다른 양념을 넣지 않고 참기름만 넣는단다. 꽁치에 소금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 약 100마리의 꽁치가 밥에 달라붙어 팔린다.
이 다이어리알 대표가 추천하는 전라도 지방의 김밥도 다양한 맛을 자랑한다. 전남 순천시 연향동에 있는 '송촌꼬마김밥' 본점의 김밥은 작고 앙증맞다. 솔솔 뿌린 깨가 귀엽다. 전남 여수시 관문동의 '해피푸드'에는 재미있는 김밥이 있다. 한우김밥이다. 대부분의 김밥집들이 한우를 갈아서 볶아 섞어 넣는데, 이곳은 마치 햄처럼 한우를 길게 잘라 구워 넣었다. 시금치, 당근, 얇은 달걀, 어묵 등 속 재료가 푸짐하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사,
'그곳에 가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진강 보이는 전망 좋은 절집 (0) | 2013.05.14 |
---|---|
시장여행① 경안 재래시장 (0) | 2013.05.06 |
최고 권력자도 쉬어간 그곳 (0) | 2013.04.28 |
“매화 종류가 26가지는 넘어부러” (0) | 2013.04.25 |
소원 빌며 바다 위 산책 … 낙지·소라·전복 거저 줍는 재미도 (0) | 2013.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