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본 연극 영화

늘근도둑들의 질펀한 인생에 숨은 뼈있는 웃음

아기 달맞이 2013. 1. 13. 07:57

- 2012 '이것이 차이다' 마지막 작품 < 늘근도둑이야기 > ,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1989년 초연 돼 24주년을 맞는 연극 < 늘근도둑 이야기 > 가 다시 돌아왔다. 지난 23년 동안 답답하고 한심한 사회에 포복절도할 일침을 가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 코믹연극으로 떠오른 작품이다.

지난 시즌과 달리 두 명의 도둑역과 수사관 역 배우가 원 캐스트로 꾸려졌다. '더 늙은 도둑'과 '덜 늙은 도둑'이 주고받는 대사가 극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연극이니만큼 연기 앙상블 측면에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소식이다.

이번에는 연극 < 햄릿6 > , < 그게 아닌데 > , < 뻘 > , < 목란 언니 > 등으로 강한 존재감을 남기며 대한민국연극대상, 동아연극상, 하얀손수건상 등을 수상한 배우 윤상화가 '더 늙은 도둑' 역으로, 그리고 연극 'M.버터플라이', < 백야 > , 드라마 < 대풍수 > 등에서 진지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연기로 눈길을 사로잡는 배우 한동규가 '덜 늙은 도둑' 역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수사관 역 외 다역으론 연극 < 룸 넘버 13 > , 영화 < 26년 > , < 2층의 악당 > , 드라마 < 골든타임 > , < 무신 >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는 배우 이현걸이 출연한다.

< 늘근도둑 이야기 > 는 대통령 취임 특사로 풀려난 두 늙은 도둑이 인생의 마지막 한탕을 위해 '그분'의 미술관에 잠입하게 되면서 생기는 오해와 착각을 포복절도 희극으로 풀어낸 작품.

날카로운 시사풍자가 함께하는 연극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두 도둑이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잘 나갔던 청춘을 떠올리며 도란도란 과거 이야기도 나누면서 극이 진행된다. '도둑놈 대훈장 메달'도 목에 걸에 주는 상황도 목격할 수 있다. 그 사이 사이 그냥 흘려 보내기엔 의미심장한 '개소리'와 함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풍자가 곁들여진다. 공연될 때마다 그 시대 현안을 들을 수 있었던 작품인 만큼 2013년도 버전에선 끝까지 '안철수'란 대사 등을 만날 수 있다.

두 늙은 도둑의 매력이 보이는 연극이다. < 늘근도둑 이야기 > 를 집필한 이상우 예술감독은 "이 대본은 배우에게 많은 것을 창작하도록 요구하면서, 배우에게 열려있다." 며 "배우가 보이는, 배우의 매력이 보이는 배우의 연극이다"고 전했다. 실제로 늙은 도둑 역 배우 윤상화와 한동규는 때론 만담꾼처럼, 때론 능청스런 연륜을 지닌 인생 선배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극의 긴장감과 함께 활기를 제공하는 수사관 역 배우 이현걸의 다양한 변신과 카리스마도 돋보였다.

극단 차이무 대표 민복기가 2011년 공연에 이어, 연출을 맡은 이번 작품은 시사풍자와 더불어 '두 늙은 도둑'의 인간적인 모습에도 집중했다. 광주의 '황금동'을 인생의 황금기로 비유한 늙은 도둑의 '일장춘몽' 이야기는 인생의 막바지에 놓인 노인들의 모습과 겹쳐지며 싸한 웃음을 선사했다. 도둑들의 인생엔 그렇게 뼈 있는 웃음이 숨겨져 있었다. 그게 바로 < 늘근도둑 이야기 > 의 장수비결이다. 3월 3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