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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여행하는 방법은 허다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올랐던 이른 새벽의 석굴암은 이제는 아스라한 수학여행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테고, 벚꽃 흩날리던 봄날 그이와 보문호수를 거닐었다면 당신에게 경주는 어느 푸른 봄날로 새겨져 있다. 당신이 남산에 올라 길목마다 불쑥 나타나는 부처님께 꼬박꼬박 배를 올렸으면, 제법 경주를 안다고 으스대도 괜찮다. 황룡사지는 어떠한가. 이제는 사라져버린 저 먼 옛날의 것이 그리우면 황룡사지에 가서 지는 해를 바라보시라 권한다.
이런 방법도 있다. 지난 8월 23일부터 9월 21일까지 하나은행 임직원 850여 명이 경주로 1박2일 연수를 갔다 왔다. 기업 연수면 보통 경치 좋은 리조트 빌려 놓고 온종일 세미나나 하는 게 고작인데, 경주로 내려온 하나은행 직원들은 1박2일 동안 시간 쪼개가며 부지런히 경주를 뒤지고 다녔다. 그들이 경주에서 찾아낸 건, 뜻밖에도 리더십이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사)신라문화원 진병길 원장의 설명이다.
“경주는 세계적인 도시였습니다. 세계적인 도시 경주에는 글로벌 리더가 있었습니다. 선덕여왕, 원효대사, 김유신 장군 등 신라의 위인은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리더였습니다. 그들의 인생과 철학을 직접 배울 수 있는 경주야말로 기업 연수에 가장 적합한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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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세 개나 거느린 세계적인 역사도시다.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석굴암과 2000년 지정된 경주 역사유적지구(남산·월성·대릉원·황룡사지·산성지구)가 1500년 전 신라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라면, 2010년 지정된 양동마을은 조선 후기 유교 공동체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천 년의 시차를 두고 전혀 다른 정치·종교적 배경을 지닌 세계문화유산을 동시에 거느린 도시는 경주 말고는 없다. 그만큼 경주는 가볼 데가 많고, 여행하는 방법도 많다.
깊어가는 가을, 정치의 계절도 무르익는다. 계절에 맞는 새로운 시각의 경주 여행을 제안한다. 다른 눈을 갖다댈 때마다 경주는 더 깊어지고 커진다.
사진=신동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