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강원도 현남면 죽도암

아기 달맞이 2012. 11. 6. 23:19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하조대에서 주문진으로 향하다 바닷가 암자 휴휴암에서 바라본 죽도. 짙푸른 바다 너머로 섬 하나가 외로이 떠 있다.


강원도 양양은 외설악의 한 자락을 품고 있는 산간지역이기도 하지만 동해안 어느 곳보다 빼어난 바닷가 절경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양양의 최북단엔 동해안 최고의 일출 명소인 하조대가 있고 남으로는 동해안의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남애항이 자리한다. 그야말로 군내 곳곳이 절경의 바다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바닷가를 따라 펼쳐진 7번 국도를 따라 양양 해안을 걷기로 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하조대에서 내려 7번 국도를 따라 주문진까지 가는 18㎞ 남짓한 여정이다. 그리 길지 않은 여정에 양양 8경 중 3경(하조대, 죽도정, 남애항)이 포함돼 있으니 지루할 틈이 없다.

○바닷가 절벽에 붙어 있는 죽도암

휴휴암 발가락 바위.

하조대를 뒤로 한 채 7번 국도를 따라 38선휴게소를 지나 남으로 5㎞쯤 가니 ‘동산리’라는 작은 포구가 나온다. 동산리 포구의 왼편으로 불쑥 솟은 동산 하나가 바닷가에 돌출돼 있다. 바다에 떠 있는 동산은 섬인 듯 아닌 듯 모호하지만 분명한 건 무척 아름답다는 것. 이곳이 바로 예전엔 섬이었지만 차츰 모래가 쌓이면서 그 모래가 바닷물을 밀어내고 육지가 된 죽도다.

죽도의 해발고도는 56m, 둘레는 1㎞ 남짓이지만 섬의 정상에는 무협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정자가 숨은 듯 서 있다.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정자는 아름드리 해송과 대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다. 죽도 왼편에 설치된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그야말로 그림 같은 죽도정자가 숲속에 숨어 있다가 아름다운 자태를 부끄러운 듯 드러낸다. 정자와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동해안의 절경은 숨막힐 듯 아름답다.

절벽 아래에는 파도가 심한 날이면 법당 안까지 바닷물이 튀어 들어온다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암자 하나가 위태하게 숨어 있다. 죽도암이다. 정자에서 내려와 길을 따라 왼편으로 돌면 죽도암으로 연결된다. 규모는 작지만 신비감마저 느끼게 해주는 죽도암은 바닷가 절벽에 붙은 채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건물이라곤 작은 법당 하나와 요사채가 전부다.

마침 무슨 재를 올리는지 적잖은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스님의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진다. 산중의 여느 절에서 듣는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엔 익숙하지만 바닷가 암자에서 듣는 염불·목탁 소리는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처음엔 낯설다. 하지만 사람이 만드는 소리와 자연의 소리가 이루는 절묘한 조화를 바닷가 암자 아니면 어디서 들을 수 있으랴.

죽도암을 지나면 철구조물로 만든 산책로가 죽도의 아랫부분과 바다의 경계 지점을 따라 죽 이어져 한 바퀴 돌아 나갈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코스를 따라 걷는 것이 죽도 여행의 백미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갖가지 기암괴석과 손에 닿을 듯 펼쳐져 있는 동해의 파도를 벗삼아 걷노라니 코스가 짧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고 미련이 남는다.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지 남애항

동해안 3대 미항인 남애항.

죽도정과 죽도암을 뒤로 하고 다시 7번국도를 따라 2㎞ 남짓 걷다 보니 바닷가 쪽으로 ‘쉴 휴(休)’자가 두 개나 씌어 있는 휴휴암(休休庵)을 만나게 된다. 휴휴암은 죽도암에 비하면 규모가 상당히 커 암자라기보다 독립된 사찰에 가깝다. 10여년 전 이곳에 암자를 짓고 기도를 드리던 중 바다 쪽에 누워 있는 관세음보살을 발견하게 됐다는 특별한 이야기를 지닌 너럭바위(연화대바위)가 휴휴암의 대표 명소다.

암자를 세운 지 10여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너럭바위와 와불바위, 거북이처럼 생긴 거북바위, 발가락 모양이 분명한 발가락바위 등의 기암괴석들로 인해 주말이면 불교신자와 여행자들이 타고 온 버스만 100여대에 이르는 명소가 됐다.

각양각색의 이 바위들은 오랫동안 바다에 잠겨 있다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세상 밖으로 그 모습들을 드러낸 것이라 한다. 휴휴암은 암자 자체보다는 탄성을 자아내는 주변의 기암괴석이 볼거리다.

다시 7번국도를 따라 2㎞를 남하하면 동해안 3대 미항 중 하나인 남애항에 도착한다. 남애항은 1980년대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 무대였던 곳. 동해안의 어업 전진기지로 싱싱한 해산물과 활기찬 어부들의 모습에서 일상에 지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남애항에서 2~3㎞ 남쪽에 있는 주문진항 역시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볼거리와 먹거리, 느낄거리를 다 갖춘 여행지라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 여행 팁 - 하조대~주문진, 1박2일 트레킹 적합

승용차를 이용해도 되지만 트레킹 여행을 원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하조대행 고속버스를 타고 약 3시간 만에 하조대에 내려 하조대를 둘러본 뒤 도보나 시내버스로 양양군 인구면 동산리로 이동하면 바로 해안가에 죽도가 있다. 죽도에서 휴휴암까지는 도보나 시내버스로, 휴휴암에서 남애항까지는 해안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하는 게 좋다.

하조대에서 주문진까지는 20㎞로 1박2일의 트레킹 여행에 적합한 코스다. 코스 대부분이 해안길이고, 도로를 따라 걷는 코스는 나무데크로 도보전용길을 조성해놓아 편리하다. 주문진에서 여행을 마무리하고 귀경해도 되지만 좀 더 걷기를 원한다면 향호저수지의 나무데크길을 따라 이어지는 강릉 바우길 13코스를 여행하는 것도 썩 괜찮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