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에 담긴 종가 비법…장아찌 맛 품격이 다르네
김현숙씨는 장아찌를 담글 때 천연발효식초를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장아찌의 짠 맛은 줄고 개운한 맛이 난다.
제철에 나는 먹거리를 장(醬)이나 식초, 소금에 절여 두고두고 먹는 장아찌. 이는 어머니에게서 다시 어머니에게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전통음식이다. 장아찌는 시간이 흐르면서 발효와 숙성을 거치며 맛의 깊이를 더한다. 발효음식 전문가이자 김포배천 조씨 종가 종부 김현숙(58)씨는 "점점 곰삭아 가면서 맛과 향이 깊어지는 장아찌는 사람의 삶과도 닮은 면이 있다"고 말한다.
김포에 위치한 김씨의 집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고택이다. 이곳 앞뜰과 뒤뜰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백여 개의 항아리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간장·된장·고추장·식초·각종 효소는 물론 저마다 다른 재료로 담근 장아찌들이 담겨 있는 항아리들이다. 한 해 한 해, 김씨와 함께 나이를 먹는 장독들은 종부 김현숙씨의 오랜 벗이다.
김씨가 이처럼 하나 둘, 장독을 채우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던 남편이 건강을 잃고 회사를 그만둔 무렵부터다. 당시 천연발효식초로 양념한 음식을 맛본 김씨는, 그 매력에 빠졌다. 씹을수록 풍미가 느껴지고 배불리 먹어도 속이 편안했다. 그는 남편의 건강을 위해 당장 발효음식 만들기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식초에 도전했다. 발효가 잘 될 때도 있었지만 썩거나 쉰내를 풍겨 버려야하는 때도 많았다. 이렇게 한 차례 실패하면 새로운 식초를 완성시키기까지 다시 몇 년,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김씨는 "발효 음식 만들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오래 숙성시키면 시킬수록 맛은 더 깊어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종가에 시집와 시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웠던 요리들이 발효음식이라는 것도 그제서야 깨달았다. 예를 들어 배천 조씨 종가의 내림 음식이기도 한 '두부장아찌'같은 것들이다. 두부장아찌는 두부를 으깨 삼베자락에 넣고 한 달 정도 된장에 박아두어 만든다. 베 자락에 된장이 살짝 스며 들어 야릇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나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두부장아찌는 밥에 비벼먹기도 하고 강된장처럼 자박하게 끓여 먹기도 한다.
김씨는 장아찌를 절일 때 적어도 3년 넘게 숙성시킨 천연발효식초와 효소를 기본으로 사용한다. 식초에 절인 장아찌는 살균력이 강해 소금의 농도를 낮출 수 있다. 장아찌를 만들 때 소금을 넣는 것은 부패를 막기 위해선 데 식초가 이 작용을 대신하기 때문에 소금의 농도를 낮출 수 있다. 덕분에 짜지 않다. 짠맛 때문에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또 식초는 식욕을 증진시켜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줄 뿐 아니라 개운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설탕 대신 효소를 쓰는 것도 김씨의 비법이다. 직접 담은 효소는 단맛을 내고 짠맛을 잡는 역할을 한다.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씨간장과 10년 묵은 천일염도 깊은 맛을 내는 비결이다. 장아찌를 담그는 식재료는 자연에서 난 제철의 것을 고집한다.
장아찌를 담글 때는 한 가지 양념만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무릇장아찌를 담글 때는 무릇을 간장에 담갔다 건져내고 이를 하루 정도 말린다. 건저낸 무릇은 다시 고추장과, 산에서 나는 약초로 만든 효소에 버무려 6개월간 둔다. 다음에는 다시 고추장과 도라지효소 혹은 더덕효소에 버무려 재워둔다. 4년 넘게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 발효와 숙성을 거쳐 맛의 깊이가 더해진다.
그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장아찌의 맛을 다양하게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고추장을 사용한 장아찌가 지겨울 때는 식재료를 건져내 말린 후 다른 양념으로 버무려 재우면 된다. 이때 건져낸 식재료는 씻지 않는다. 맛이 싱거워지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가을철에는 제철을 맞은 가지·새우 등으로 장아찌를 담그기도 한다.
정성과 자연의 시간을 품은 장아찌는 한정식집 '고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선보여지고 있다. 김씨는 살고 있는 종가 일부를 고쳐 고가를 열고 운영하고 있다. "조상의 땅에 식당은 말도 안 된다"는 문중의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그만의 음식점을 내겠다는 신념을 꺾진 못했다. 고가 옆 새로 지은 건물에서는 발효음식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쿠킹클래스도 열고 있다.
그의 발효음식은 지난해 일본에 진출했다. 일본 도쿄의 이세탄백화점에 '고가' 이름 그대로 한식당을 냈다. 일본 손님들도 천연발효 양념을 사용한 김씨의 음식 맛에 빠졌다.
지금 그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종가의 음식을 고스란히 이어갈 수 있게 요리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바로 그 꿈이다.
김현숙씨는 "우리 음식의 기본양념인 장류와 식초, 청류는 모두 발효 양념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깊이 있는 맛을 가진다"며 "그 깊은맛이 신선한 식재료와 어우러질 때 음식은 병을 고치는 약이 된다"고 말한다. 장아찌의 맛도 발효 양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소금·식초·간장·된장·고추장 중 어떤 것을, 어느 정도 사용하고 얼마나 박아두느냐에 따라 맛과 향, 깊이가 다르다.
간장 장아찌를 절이는 가장 대표적인 장류다. 간장으로 장아찌를 담글 때는 식초·설탕·생강·마늘·마른 고추 등을 넣고 끓여낸 절임간장을 사용한다. 이 간장을 끓이고 식혀 붓는 과정을 반복한다. 간장에 담가 맛을 낸 뒤 된장이나 고추장에 박아 삭혀 다른 장아찌도 만들 수 있다. 장아찌는 기후에 따라 간을 조절하는데 기온이 높을수록 간장의 양을 늘린다.
된장·고추장 고추장이나 된장에 박아서 삭힐 때는 물기가 없을 정도로 꾸덕꾸덕하게 말려야 맛이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과일청과 고를 이용하면 독특한 고추장을 만들 수 있다. 고추장은 매콤한 맛을 내면서 동시에 잡내를 잡아 명태와 굴비 같은 생선으로 장아찌를 담글때 이용한다. 된장은 식초나 청을 함께 넣으면 짠 맛을 줄일 수 있다.
식초·소금 식초는 간장·고추장·된장만큼 저장성이 뛰어나 제철채소와 과일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또한 상큼하고 개운한 맛을 내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가지·양파·오이·통마늘로 장아찌를 담글 때 식초물에 담가 삭힌다. 소금은 식재료의 내부에 침투해 각종 호기성 미생물의 생육을 막고 젖산균의 생육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장아찌를 담글 때는 굵은 소금을 주로 쓰는데 손에 쥐었다가 놓았을 때 손에 묻지 않는 것이 좋다.
'즐거운 요리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찬바람 불 때, 따끈한 국물 요리 (0) | 2012.11.05 |
---|---|
눈도 입도 즐거운 채소 저녁밥상, 두부 월남쌈 (0) | 2012.11.02 |
입이 즐거워지는 채소 '고구마'로 만든 요리 (0) | 2012.10.30 |
[여성동아] 1DISH 저칼로리 식사법 (0) | 2012.10.23 |
가을의 진객, '버섯 요리 레시피' (0) | 2012.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