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다행이라면서 사내가 울기는 새벽부터…….
엄마가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안 서방의 평소 사람됨을 아는지라 그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오죽하면 그러시겠수. 이제 집에 왔으니 염려 놓으세요.
장쇠를 깨워 의원을 불러오게 하고는, 신통의 상처 부위를 더운 물로 씻어주고 새 무명을 잘게 찢어서 감아주는데, 그가 실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속삭여 말했다.
많이 아파요? 의원을 불렀으니 곧 올 거예요.
물, 물 좀 주구려!
엄마를 돌아보니 내가 일어서기 전에 먼저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 뒷전에 대고 물었다.
따뜻한 꿀물 타올까?
기진한 신통이 다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엄마가 타온 꿀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그의 입에 넣어주니 몇 모금 받아먹고는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사내들이 이렇듯 우는 걸 보니까 뭔가 엄청난 일을 겪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원이 와서 그의 허벅지 상처를 살피고 진맥을 한다, 침을 놓는다, 고약을 붙인다 하고는 일렀다.
허벅다리에 총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탄환은 관통되었소. 속으로 독창이 번지지만 않으면 새 살이 나오고 아물겠지만, 곪을까 염려되니 내가 약을 지어 보내리다.
나는 가끔씩 앓는 소리를 하며 잠든 신통의 옆에 쪼그리고 졸다 깨다가를 반복하며 날 새기를 기다렸다. 그날 점심 무렵에야 나는 안 서방에게서 그들이 겪은 난리의 얘기를 들었다.
제가 처음부터 천지도에 입도한 사람이 아니라서, 삼남 지방은 물론이오, 위로는 강원도 경기도와 황해도에 이르기까지 수십만의 민병이 들고 일어났다는 것을 말로만 들었지 그 경위며 세세한 것은 알 수가 없었지요. 그렇지만 지난 봄에 호남에서 일어난 천지도의 민병이 전주 감영을 점령하고 도내 모든 군현의 향소를 맡아 관원들과 더불어 백성을 다스렸다는 소문은 여기 묵어가는 손님들이 다 말하지 않던가요? 큰마님께서는 저더러 전주에 가서 형편을 직접 보고 오라고까지 하셨고요. 네? 제가 노비가 아니니 마님이란 말은 쓰지 말라고요? 아닙니다, 제가 비록 양출(良出)이라 하나 작은마님의 구완으로 온 식구가 목숨을 건졌으니 그냥 주인아주머니로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 서방은 제가 따라 나서니까 입도하겠느냐 그래서 저는 아직은 도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하지만 탐학한 양반과 관리를 혼내주고, 나라를 바로잡는 일은 좋은 일이라고만 말했죠. 이 서방이 말하기를 천지도의 난리를 진압한다며 청군과 일본군이 들어와서 저희끼리 싸우다가, 일본군이 청군을 제압한 뒤에 경복궁으로 쳐들어가 임금을 협박하여 조정을 저희 사람들로 모두 바꾸었다고 그럽디다. 그래서 이번에 거병한 것은 왜적을 몰아내려는 것이 첫째요, 일본군과 관군이 함부로 도인들을 학살하는 것에 맞서 싸우려는 것이 그 둘째라고 합디다. 네, 그 사람 보통 때에는 그냥 저희하구 우스갯소리나 하구 그러는데, 듣자 허니 동서고금이며 요새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판세를 두루루 꿰고 있더군요.
총대장은 김봉집이라구 저어기 정읍인가 고부인가에서 훈장질하던 사람이라는데 먼발치로만 봤습니다. 각 지방에서 올라온 행수(行首)들이 있고 그 아래 각기 이삼백 명을 거느린 대두(隊頭)들이 있었고요, 저희는 그 아래 병졸들이었습니다. 이 서방은 다른 행수들과도 친한 동무들인 모양입디다. 저와 같이 있다가도 몇 사람 데리고 길을 떠났다가 한 사날 지내고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복색도 제각각 병장기도 천차만별이었지요. 패랭이에 덧저고리나 쾌자전복 걸친 놈에, 털벙거지 쓰고 사령배 복색을 한 놈, 맨상투에다 두건 쓴 놈에 각양각색이었죠. 들고 있는 병장기도 환도에 괭이, 쇠스랑, 장창, 죽창, 그리고 활이나 화승총에다 행수들은 천보총도 가지고 있습디다. 저에게도 장창을 가지려느냐, 하기에 아무거나 주는 대루 받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