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황석영 연재소설]

한국일보 [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화

아기 달맞이 2012. 8. 22. 08:55

어선은 돌아들고, 백구는 분비, 갈마구, 해오리, 목파리, 원앙새, 강산 두루미, 수많은 떼 고니, 소천자 기관허든 만수문전의 풍년새, 양양창파 점점 사랑하다 원앙새, 칠월칠석 은하수 다리 놓던 오작이, 노수 진경새, 따옥따옥 요리조리 날아들제, 또한 경개를 바래봐. 치여다보니 만학천봉이요 내리 굽어보니 백사지로다. 허리 구부러진 늙은 장송, 광풍을 못 이저 우줄우줄 춤을 출 제, 원산은 암암, 근산은 중중, 기암은 촉촉, 뫼산이 울어. 천리 시내는 청산으로 들고, 이 골 물이 쭈루루, 저 골 물이 살살, 여기 열두 골 물이 한테로 합수쳤다. 천방자 지방자 월턱져 구벼 방울이 버끔, 저 건너 병풍석에다 마주 꽝꽝 마주 쌔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어디메로 가잔 말, 아마도 네로구나, 요런 경치가 또 있나, 아마도 네로구나, 요런 경치가 또 있나.









 

다음은 초라니 박돌이가 흥을 못 이겨 얼른 뛰어나가 동무에게 물었다.

신통아, 뭘 하라니?

북채를 쥔 이서방이 말했다.

우선 목풀이 허고.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는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봉양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난가.

쑥대머리를 구성지게 부르고는 기생이 갖다 준 술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이서방을 내려다보며 오만상을 찌그려 보였다.

이거 이러다가는 아예 파흥이 되고 말겠구나. 점잖은 자리에선 못하는 대목이나 여기 되다만 양반짜리는 없는 듯하니 한바탕 놀아보세.

얼쑤!
열다섯에 얻은 서방 첫날밤 잠자리에 급상한에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 당창병에 튀고, 열일곱에 얻은 서방 용천병에 펴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 벼락 맞아 식고, 열아홉에 얻은 서방 천하에 대적으로 포청에 떨어지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 비상 먹고 돌아가니, 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 치기 신물 난다. 이삼 년씩 걸러 가며 상부를 할지라도 소문이 흉악할 터인데 한 해에 하나씩 전례로 처치하되, 이것은 남이 아는 기둥서방, 그남은 간부, 애부, 거드모리, 새호루기, 입 한 번 맞춘 놈, 젖 한 번 쥔 놈, 눈흘레 한 놈, 손 만져본 놈, 심지어 치맛귀에 상처 자락 얼른 한 놈까지 대고 결단을 내는데, 한 달에 뭇을 넘겨, 일 년에 동 반 한 동 일곱 뭇, 윤삭 든 해면 두 동 뭇수 대고 설그질 제, 어떻게 쓸었던지, 삼십 리 안팎에 상투 올린 사나이는 고사하고, 열다섯 넘은 총각도 없어, 계집이 밭을 갈고, 처녀가 집을 이니, 황평 양도 공론하되, 이년을 두었다간, 우리 두 도내에 좆 단 놈 다시 없고, 여인국이 될 터이니, 쫓을 밖에 수가 없다.

옥문관과 양물 치레 타령이 이어졌고 한참 동안의 흥이 잦아진 뒤에 내가 가야금 병창으로 새타령과 박타령을 불렀다. 내가 마치 이신통이 이야기 책 쓰듯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것은, 언제 생각해봐도 그를 만나던 첫날의 그 술자리가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얼마 후에 전주 관아의 비장이 찾아와서 선보러 올 이의 내방 날짜를 알려주었고, 나는 여느 때처럼 그저 약조 손님이라도 받아둔 것처럼 심드렁하게 지냈다. 엄마는 날짜를 받고서 새 옷을 지어 온다, 방물을 구입한다, 분주했지만 어쩐지 속이 시큰둥했다. 바로 그날이 와서 점심 먹고는 가마솥에 더운 물 끓여 머리 감고 목욕재계하고, 머리에는 동백유 바르고, 향수 뿌리고, 얼굴에 미안수 바르고, 밀유 바르고, 백분 바른 후에 눈썹 가늘게 그리고, 입술에 연지를 도톰 찍어 발랐다. 엄마는 경대 앞에 나를 앉혀놓고 화장을 시켜주다가 눈물이 글썽해졌다.

나도 너 같은 시절이 있었건만…… 헌데 우리 딸 아까워서 어쩐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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