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4화

아기 달맞이 2012. 8. 22. 08:54

퇴청 시각인 초경 무렵에 이방이 왔고 엄마는 예정대로 진안주를 들일 준비를 했다. 우리 집에서 중노미 살고 있는 코찔찔이 장쇠가 악사와 기녀를 부르러 나갔다. 진안주로 방금 부쳐낸 육전, 간천엽전, 생선전, 버섯전, 연근전 등의 전유어 등속과 떡갈비에 너비아니가 따랐고, 새로 거르고 알맞게 데운 약주 두 주전자가 들어갔다. 나와 엄마가 주안을 손님방으로 날랐는데 오며가며 듣자 하니 그들은 수인사를 끝내고 돌아본 음택 산세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이방의 선산에서 그 동네 토반과 산송이 일어나 이장을 하려는 눈치였다. 패랭이는 이서방이고 고을 이방과는 전부터 아는 사이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서방이 도계 넘어 충청도 사는 서 지사를 모셔왔던 모양이고 소리꾼 박돌은 이서방의 길동무인데 한 다리 낀 처지였다. 나도 엄마 시중드노라고 점잖은 술자리에는 가끔씩 참례하던 터수라 미리 좌중 손님들의 분위기며 어떠한 자리임을 눈치 채고 있어야 한다는 걸 색주가의 예법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니 술값은 마땅히 이방이 치를 모양이었다. 악사와 기생이 도착했고 그들은 좌중에 인사 올린 뒤에 웃방에 자리 잡고 먼저 연희를 시작했다. 이런 때에는 나와 엄마도 당연히 들어가 앉게 마련이었는데, 젓대와 해금이 앉은 맞은편에 엄마는 장고를 나는 가야금을 무릎에 얹고 자리를 잡았다. 먼저 잡가로 목풀이 겸하여 장단 맞춰보기를 한다.









 

간밤에 꿈 좋더니만 님에게서 편지가 왔소

편지는 왔다마는 님은 어이 못 오시나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양춘가절 호시절에 꽃핀 너를 찾아 반기리라

이번에는 남도 계면조로 육자배기가 나간다. 장고를 선두로 해금이 간드러지게 젓대가 구슬프게 나가면서 높은 노랑목이 먼저 치고 올라간다.

창해 월명 두우성의 월색도 유정헌디

나의 갈 길은 천리만리 구름이 가건마는

나는 어이 손발이 있다 해도 님 계신 곳 못 가는고

수심장단 성으로 애간장 썩는 눈물이로구나

사람이 살면은 몇 백 년이나 사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 남녀노소가 있느냐

살아 전 시절에 각기 멋대로 놀거나

연이어 성화에 못 이겨 우리 엄마 구례댁 월선이 왕년의 솜씨를 뽐내어 고고천변을 부르니 이서방이 술상을 떠나와 북을 잡았다. 깊은 바닷속 용궁 살던 자라 별주부가 지상세계로 올라와 산천경개를 둘러보는 장면으로 단가로 따로 떼어 부르는 대목이다.

수정문 밖 썩 나서, 고고천변 일륜홍 부상에 둥실 높이 떠, 양곡의 짙은 안개 월봉으로 돌고 돌아, 어장촌 개 짖고, 회안봉 구름이 떴다. 노화는 눈 되고 부평은 물에 둥실, 어룡은 잠자고, 잘새 펄펄 날아든다. 동정여천의 파시추, 금성추파가 여기라. 앞발로 벽파를 찍어 당겨 뒷발로 창랑을 탕탕. 요리조리 조리요리 앙금 둥실 높이 떠, 사면을 바라보니 지광은 칠백리요 파광은 천일색인데, 천외 무산 십이봉은 구름 밖에 가 멀고, 해외 소상의 일천리 눈앞에 경이로다. 오초는 어이하여 동남으로 벌였고, 건곤은 어이하야 일야에 둥실 떠, 남훈전 달 밝은듸 오현금도 끊어지고, 낙포로 둥둥 가는 저 배, 저 각달무가 보소, 추일광의 원혼이요. 모래 속에 가 장신하야 천봉만학을 바래봐. 만경대 구름 속 학선이 울어 있고, 칠보산 비로봉은 허공에 솟아, 계산파무울차아, 산은 층층 높고 경수무풍야자파, 물은 풍풍 짚고, 만산은 우루루루루, 국화는 점점, 낙화는 동동, 장송은 낙락, 늘어진 잡목, 펑퍼진 떡갈, 다래 몽둥, 칡넌출, 머루, 다래, 으름넌출, 능수버들, 벗남기, 오미자, 치자, 감자, 대초, 갖은 과목, 얼크러지고 뒤틀어져서 구부 칭칭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