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빙점>을 쓴 일본인 여류 소설가 고(故) 미우라 아야코의 남편 미우라 미쓰요 씨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 홋카이도 북부의 중심 도시 아사히카와(旭川)에서 아야코와 함께 지냈던 그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생전의 아야코가 밤늦게 앉아 소설을 쓰던 다다미방에서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에게 “사랑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미쓰요 씨는 “사랑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타인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의지.”라고 답했습니다. 울림이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많은 분들이 “사랑.”이라고 답했습니다. 저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에 소개된 17인의 멘토들도 한결같이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생생한 동사였습니다.
소설가 서영은 선생은 사랑을 동사로 표현하면 '치러 내다' 혹은 '감당하다'가 된다고 했습니다. 육신은 물론 마음까지 잡혀 주는 것,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마음의 칼자루를 끝까지 내주는 것이 바로 '치러 내는' 사랑을 하는 사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기가 다치게 됐을 때, 피하지 말고 그대로 당해 주는 것이 치러 내고, 감당하며, 피 흘리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고은 시인은 “사랑이라는 말은 무진장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한마디씩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이 흐르다 막다른 벼랑에 미쳐 도저히 흐르지 못할 때에 아래로 쏟아져 버리듯, 사랑은 참다못해 폭발하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도 간 한완상 전 부총리는 사랑이야말로 모든 희망의 기초며,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멘토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랑은 결코 함부로 남발될 언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치러 내는, 감당하는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글 ㆍ 이태형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저자, 《국민일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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