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야 냉이야 - 장석남(1965~ )
바지게라는 걸 알아?
거름도 내고 고구마도 나르는,
아이도 태우지…… 진달래꽃도 꽂고
싸리나무로 엮은
나라는 걸 알아?
양심도 져다버리고 죽음도 실은[載],
가면 속의 나
늙은 어머니가 성글게 엮어놓은
침묵의 명을 따라 이제
풀리는
새 가죽 구두 신은 구름을 알아?
물집 잡힌 그림자 쓰리디 쓰린,
냉이야 냉이야
장한 냉이야
지금 이 시인 냉이하고 말하고 있는 건가요? 바지게를 아느냐고, 나를 아느냐고, 그리고 가죽 구두 신은 구름을 아느냐고? 냉이는 바지게쯤은 알 것도 같네요. 냉이나 바지게나 같은 과니까, 그런데 양심 져다버리고 죽음 싣고 다니는 나는? 글쎄요. 냉이가 뭘 알겠어요, 그냥 예쁘기만 한 풀인데, 말이나 알아들을까? 전 생각 없이 예쁘기만 한 것들 무시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런데 냉이, 장한 풀이기는 하지요. 보도 블록 틈에서 솟아날 때 보면 그 기상 기특하지요. 아, 취소해요. 생각 없이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냉이는 냉이는 장한 풀이지요. 새 가죽 구두 신었던 구름이 물집 잡힌 발 내려다 보며 쓰리다 쓰리다 엄살할 때도 냉이는 냉이는 장하지요. <최정례·시인>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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