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개막한 ‘다시 찾은 조선왕실 의궤와 도서’ 특별전에서 규장각 서가를 재현한 코너다.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1908, 9년 규장각에서 대출한 뒤 반납하지 않고 반출한 도서 938책을 전부 쌓아놨다. 전시실 뒤켠의 서가는 규장각에서 실제로 사용하던 것이다. [최승식 기자]
조선은 기록으로 유지된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가 대표적이다. 조선은 국가 운영의 기본이 되는 다양한 기록물을 제작해 중앙과 지방 사고(史庫)에 나누어 보관하고 관리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이러한 체계가 무너졌다.
통감부는 한일강제병합 이전인 1908년 규장각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도서 10만여 점을 규장각에 모아 ‘제실도서(帝室圖書)’라는 이름으로 통합했다. 식민지 시기에는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이들 도서를 강제로 인수하고 중요 도서들을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반출했다. 그렇게 반출돼 일본의 궁내청에 보관돼 있다 100여 년 만에 돌아온 조선왕실도서가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은 ‘다시 찾은 조선왕실 의궤와 도서’ 특별전을 27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연다.
돌아온 도서는 의궤(儀軌) 81종 167책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대출해간 규장각 도서 66종 938책, 조선총독부가 궁내성에 기증한 3종 100책 등으로 나뉜다. 전시에선 이토 히로부미 대출 도서 전체를 보여준다. 규장각 서가를 재현해 반출되기 전 책이 진열되었을 원래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와 관련된 의례를 기록한 『대례의궤』에 실린 어보 실물(왼쪽)과 그림.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엮은 의궤는 대부분 지방 사고에 나눠 보관하는 용도로 만든 분상본(分上本)이다. 대부분 왕이 보도록 고급스럽게 만든 어람용(御覽用) 의궤였던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를 관람한 이들이라면 눈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왕실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고궁박물관 특성을 최대한 살린 덕에 전시는 생생하다. 의궤에 기록된 내용과 유물 실물을 비교했다. 주로 고종·순종 당시의 의궤들이 대부분인 특성을 살려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 각종 국가 의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즉위식, 황태자 책봉 등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대례의궤』가 대표적이다.
황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용 조각 어보(御寶)가 그려진 의궤와 실물이 함께 전시됐다. 제국 이전에는 거북 모양 어보가 사용됐다. 정종수 관장은 “부끄럽게도 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의궤가 한 점도 없었다. 이번 환수를 계기로 왕실 유물과 의궤가 짝을 이룰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최승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