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고향길 - 신경림

아기 달맞이 2011. 9. 2.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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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길 / 신경림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윗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 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 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 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닮기만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 되어 떠나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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