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공예

삼베

아기 달맞이 2011. 7. 8. 17:15
 
우리 조상들은 삼복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삼베가 없었 더라면 아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빳빳한 삼베 올 사이로 바람 솔솔 들어오고 몸에 들러붙지 않는 가슬가슬한 촉감의 삼베는 오늘날까지도 여름철 옷감의 대명사다. 또 다른 여름철 옷감으로 모시가 있다. 흔히 삼베와 모시를 같은 직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공하기에 따라 선선한 날씨에도 입을 수 있는 모시와 달리 삼베는 여름철에 입어야 하는 여름만을 위한 직물이다. 날이 선선해지고 공기 중에 습기가 없어지면 올이 부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 말을 다시 뒤집어보면 삼베는 그 어떤 옷감보다도 더위와 습기에 강한 옷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삼과의 일년초 식물인 대마(大麻)로 만드는 삼베는 면사(綿絲)에 비해 10배나 질겨 여름철 직물을 짜는 것 외에도 로프나 그물, 여름철 모기장이나 타이어를 만드는 데도 널리 이용된다. 삼의 껍질을 벗기고 나오는 인피섬유로 제작한 것이 삼베인데 특이한 것은 삼베가 가지는 특성이다. 수분을 빨리 흡수하고 배출할 뿐만 아니라 자외선 차단 및 곰팡이를 억제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삼베 특유의 항균성과 항독성은 여름철 발생하기 쉬운 위생 문제도 상당 부분 감소시켜주었다.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여름철 일반 행주는 쉰내가 나기 쉬운 데 삼베 행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삼베의 뛰어난 항균성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우리 조상들은 이 같은 삼베의 특성을 잘 알아 생선 말릴 때나 장 항아리를 덮을 때는 삼베포를 이용하는 등 생활 속에 다양하게 활용했다.

삼베는 고조선 시대로 그 출발점을 짐작할 수 있고 <삼국지>에는 “부여인들이 백포(白布)의 포를 입었다” “예(濊)에는 마포(麻布)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위서> 문헌에는 고구려인의 의복이 포(布), 백(帛), 피(皮)로 명기되어 있는 것을 보아 삼국 시대에 활발하게 제직된 것 같다. 나라에서는 가정과 나라의 살림에 보탬이 된다고 하여 길쌈을 장려했다. <삼국사기>에는 가배(嘉排)라 불리는 신라의 베짜기 경쟁 풍습을 자세히 엿볼 수 있는데, 가배는 훗날 민속 대명절인 한가위로 자리잡게 된다.
올이 곱고 섬세하기로 유명해 흑마포와 황마포는 중국에 보내 는 고급 공물품 중 하나였다. 지역별로는 함경도의 북포(北布), 강원도의 강포(江布), 경상도의 영포(嶺布)로 나뉘어지며 특히 안동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안동포(安東布)라 하여 오늘날까지도 그 품질을 최고로 친다. 때로는 홑이불이나 베갯잇으로, 때로는 고의적삼으로, 때로는 화폐로, 때로는 수의와 상복으로 사용되던 삼베는 여름철 우리네 일상생활과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요긴하게 사랑받은 옷감이다. 섬세한 모시에 비해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자주 빨아도 쉽게 낡지 않아 서민들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던 옷감이기도 하다. 그 알뜰한 실용성은 옛 여성들이 길쌈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베를 짤 수밖에 없던 이유였으리라. 삼베로 옷을 지어 입으면 성글고 빳빳해 몸에 잘 붙지 않아 그 시원함은 다른 것에 비할 수 없으며 여름철 고의나 적삼, 바지저고리를 해 입기에 알맞다. 요즘은 염색기술이 발달해 색색의 삼베를 찾아볼 수 있지만 삼베 특유의 거칠고 자연스러운 멋을 즐기기에는 누런 빛깔의 황마포가 제격이 아닌가 싶다.

여름철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사람이라면 가슬가슬한 삼베 이불은 어떨까. 항균성과 항독성이 뛰어나 아토피 등 각종 피부질환에도 문제없다. 올여름은 자연이 주는 선물, 삼베의 시원함과 그 알뜰한 실용미를 누려봄이 어떠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