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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사진=김태성기자 |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그렇게 묻는 것은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을 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사람들은 동백꽃을 보러 선운사에 간다. 동백꽃 지고 없는 날에도 그 뽀짝 앞에 사철 고운 꽃 피고 있는 줄 모르고 간다. 고창 선운사 앞 상가 2층, 우리나라 유일의 자수박물관이 거기 있다.
수도롱태가 장난감이던 어린 시절 입이 떡 벌어진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구나 싶다. 손으로 수를 놓아 만든 넉 자 장롱이라니! 그 앞에 선 박봉희(54) 고창자수박물관 관장이 이‘무모한 도전’의 주인공이다. 그의 어머니 최인순 여사(2000년 72세로 작고)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바늘귀를 꿴 사람이었다. 수십 년을 한결같이 해온 일이니 보지 않고도 바늘이 꿰지더라는 자수의 달인이었다. “어머니가 수놓고 있으면 수틀 밑에 들어가서 노는 게 우리 자매들의 어린 시절이었어요. 수틀을 텔레비전 보듯 거꾸로 쳐다보는 것이 우리들의 놀이였지요.” 수틀에 팽팽하게 당겨진 천을 탁탁 오가는 바늘소리. 정적보다 더 고요한 그 소리 속에서 어느새 꽃이 피고 나비 훨훨 날고 새가 내려앉고 산이 불끈 일어서고 맑은 물줄기가 흘렀다. 잉어가 뛰어오르고 거북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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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보아도 신기했다. 늘상 갖고 노는 장난감이 수도롱태였고, 제일 갖고 싶은 것이 제 몫의 수틀이었던 아이. 어머니가 외할머니 강지산 여사의 ‘무릎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그의 스승은 어머니였다. “나비 잠자리 사마귀 여치 그런 것을 잡아오면 어머니가 활짝 웃으셨어요.” 어머니가 그러는 것처럼, 그의 자매들도 유리병 안에 키우는 벌레들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 여린 몸통에, 날개에 온갖 오묘한 색의 조화가 있었다. 화단에도 방안에도 늘 꽃이 그득했다. 자다가도 깨어서 그걸 바라보는 어머니를 어느새 그 자신도 닮고 있었다. 그이가 수놓는 화충도 속의 꽃이며 벌레들이 자연도감처럼 정교하고 생생한 이유다. 도대체 밑그림도 없이, 붓과 물감이 아니라 바늘과 실로 어떻게 저런 명암이 나타날 수 있는지 그림 그리는 이들을 경탄케 한 그의 자수. 가령, 아주 작은 꽃잎 하나에도 일곱 가지 색을 넣는 것은 단지 기교가 아니었다. 수놓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몰두와 애정이 비법이라면 비법이었다. 어머니 무릎학교에서 배운 삶의 자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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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매 각각 초충도·신선도 등에 탁월 수놓는 일이 행복해서 딸들을 모두 ‘수쟁이’로 만들고 싶었던 어머니의 바람대로 네 자매는 저마다 개성을 가진 자수 장인들이 되었다. 동물, 그 중에서도 특히 호랑이에 능한 성희(48)씨의 작품 속에선 머리카락처럼 섬세한 호랑이의 터럭이 꿈틀꿈틀 살아있는 듯하다. 미애(46)씨는 초충도, 성애(45)씨는 화려한 족두리 같은 혼례용품에 뛰어나며 올케인 이복현(49)씨는 신선도가 탁월하다. “가늘디 가는 세세사를 다시 반쪽으로 쪼개서 새의 깃털을 수놓을 때 깃털이 하늘하늘 날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나한텐 그런 것이 기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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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를 놓아 만든 이층장. 부귀영화와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모란이며 십장생으로 수놓았다. |
ⓒ 전라도닷컴 사진=김태성 기자 |
그것말고 다른 재미를 모르고 살았다. 눈뜨고 나면, 밥 먹고 나면 수틀 앞에 앉았다. 갖춰 입고 모양내는 시간도 아까웠다. 시장에서 산 돈 만 원짜리 바지에 티셔츠면 그만이었다. 남실남실 꽃밭을 만들고 서늘하게 푸른 소나무 그늘을 드리우고…. “수틀만 잡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요.” 수놓는 게 수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다. 흐리고 성긴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감정의 기복이 심할 때는 바위나 나무등걸이나 잡풀이나 땅을 수놓고, 마음결이 차분해져야 꽃을 놓고 새를 놓는다.
사람들은 흔히 어떻게 이렇게 힘든 작업을 해내느냐고 묻는다. 그의 답은 한 가지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일이어서.” 자수에 빠져들어 있는 그 순간 ‘세상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내나 끈기로 한 게 아니라 수틀 속의 재미를 택한 것뿐. 이곳 선운사 앞에 자리를 잡은 것은 11년 전. 그 세월 미친 듯이 일한 결과는 작품 1000여 점으로 남았다. ‘사람의 손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고창자수박물관 방명록에 한 중3 남학생이 적어둔 방문 소감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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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개에 수놓은 구봉도(九鳳圖) |
ⓒ 전라도닷컴 사진=김태성 기자
| 베갯모 횃대보 책상보… 자주박물관엔 박봉희 관장과 그와 가족들의 작품말고도 틈틈이 사 모은 민수(民繡)들이 장롱 속에, 반닫이 속에, 서랍장 속에 그득그득 쟁여져 있다. 배갯모 횃대보 책상보…. 자수의 변천사를 재현해 보려는 뜻이었다. 부르는 대로 값을 쳐준다는 소문이 나서 전국에서 옛날수를 가지고들 왔다. 돈이 되는 일인 줄 알았는지 너도나도 사들이는 바람에 값이 턱없이 튀기 전까지는 무조건 사들였다. 횃대보만 해도 100여 장이다. “그게 어디 하나라도 다 틀려요.” 자기 표현이 강한 민수는 도안사가 있는 궁중수와는 다르다. 임금을 위해서 수만 놓던 침선장들은 100여 가지가 넘는 기법으로 수를 놓았지만, 도안사를 따로 두고 있었으니 개인의 개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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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와 장수를 꿈꾸는 마음이야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기원. 모란이나 십장생을 수놓는 것은 그런 한결같은 기원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민수에는 수를 놓는 처자들의 저마다 다른 마음결이 드러나 있었다. “이런 수를 두고 우린 가정시간에 프랑스자수만 배웠다니까요.” 반닫이 속에 차곡차곡 개어 놓은 횃대보를 펼쳐 보는 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정갈한 옥양목 얇은 천에 안 보이는 올을 세서 놓는 십자수는 올이 굵은 옥스퍼드지에 놓는 요즘의 십자수와는 다르다. “옛날 아가씨들이야 시집가려면 수놓은 베갯모는 꼭 장만했지요.” 인근 순창은 베갯모장이 열리는 장이었다. 베갯모 준비하고 이불 사려면 순창장 간다 말할 정도로 자수로 유명한 순창. 고창자수의 명성도 그에 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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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니 100년이 한꺼번에 보입니다 “옛날 수 모으는 아저씨들이 전국을 다녀봐도 고창만큼 제대로 된 작품이 없다고 말해요.” 고창자수는 누가 봐도 확연한 특징이 있다. 솜이나 메밀이나 지푸라기를 넣어 만든 베개가 찌그러지지 않도록 여섯 모로 나누어 야물딱지게 박은 골침은 그저 동그랗거나 네모난 여느 베개와 확연히 다르다. 반닫이 위에 쌓아 올린 베개들은 보면 볼수록 재미나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베갯모마다 수놓은 구봉도(九鳳圖)가 같은 게 하나도 없다. 새끼 일곱 마리를 거느린 한 쌍의 봉황은 어떤 놈들은 오동통하고 어떤 놈은 홀쭉하다. 어떤 놈은 점잔을 빼느라 좀 떨어져 있고 어떤 놈은 다정하게 부리를 맞대고 뽀뽀중이다. 그걸 수놓은 장난스런 처자와 그 동무들이 필시 키득키득 웃었을 정경이 보이는 듯하다.맞대고 뽀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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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인 군학도(群鶴圖)부터 아주 작은 골무까지 빼곡하게 자리한 자수작품들. “멋있고 우아하게 전시하지 못했어요. 공간은 작은데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서…” <여기 오니 100년이 한꺼번에 보입니다.> 방명록 속에 남긴 누군가의 소감이다. 그의 꿈은 여성생활사 박물관을 만드는 것. 이 땅의 여성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를 집대성해 보여주고 싶단다.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그렇게 뒤돌아보는 사람이 있다. 한 땀 한 땀의 삶에 ‘뜻과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수놓아 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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