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공예

“냅둬요, 바느질이나 할란게” (남인희/전라도닷컴)

아기 달맞이 2011. 7. 7. 01:28

냅둬요, 바느질이나 할란게”
무안 몽강리 서용민
남인희 기자  

▲ 섬섬옥수가 고운 손인 줄 알았더니 노상 부지런히 지어내고 아끼지 않고 나누는 손이 젤로 잡고 싶은 손이더라고, 그래서 거칠거칠한 몽강리 할매들 손잡고 걸어가는 ‘냅둬요 아줌마’서용민씨. 촌 할매들 속에 끼여 앉아 영산강 물길처럼 굽이굽이 흘러온 그 분들의 사는 이야기에 귀를 열어두고 손으로는 바느질을 하는 시간들이 행복하다.

ⓒ 김태성 기자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칠년이라.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鳳尾)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미(首尾)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가 무궁하다. 이 생에 백년동거하렸더니,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자끈동’ 두 동강 난 바늘의 죽음에 바친 조침문(弔針文)을 기억한다. 떨어진 단추 다는 것도 게으를 지경이어서, 바늘 들 일이라곤 좀체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탄하는 그 옛날 유씨 부인의 슬픔과 자책과 회한은 어리둥절할 정도다.


그는 그 심정 알 것 같다 한다. 바늘에 실을 꿰는 일이 일상인 사람. 서용민(60)씨.

 

▲ 바느질을 한다. 번거로운 준비와 절차 없이도 어디서나 고요하게 제 안으로 잦아들 수 있는 일.
ⓒ 김태성 기자

 


“어느 때는 내 살껍질을 떠도 몰라요”


무안 몽탄 몽강리. 꿈여울(夢灘)에 꿈꾸는 강(夢江). 그를 찾아갔을 때 그가 맨 먼저 보여 준 것이 그 강이었다. ‘둘이서 나란히 걷기에는 너무 좁도록’ 혼자 걷기 위해 낸 작은 샛길 끝에 영산강 물도리동이 보이는 그의 자리가 있었다.


“이렇게 서서 보면 강이 가장 아름답게 보여요.”
 
그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줄기에 혹해 있는 사람. 누구한테 보이려고 만지지도 꾸미지도 않아 겉치레 없는 그에게도 ‘강남에서 빠닥빠닥 살던 시절’이 있었다.
 
더러 전화가 온다 “대학 동창회 명부 중에 면 단위에 사는 애는 너밖에 없다”고, “너는 왜 거기 그렇게 처박혀 있느냐”고. “니가 10년 전에 그 촌구석으로 들어가려고 팔아버린 아파트가 10억이 올랐다”고.
 

▲ ‘이마 부딪히지 마시라’고 작업장 문지방에 매달아 놓은 물고기,
망아지. 찰흙으로 빚거나, 헝겊을 꿰매 만든 것들이다.
ⓒ 김태성 기자

 


그러면 그는 동문서답을 하곤 한다.


“매화꽃이 폈어. 오늘 필까 내일 필까 하고 있었는데 딱 오늘 폈는데 니가 전화를 했네.”


꽃 한 송이 피는 그 순간을 만나는 기쁨이 ‘루이비통 가방’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에 비할쏘냐. 몸에 두르고 걸치는 명품들, 기름진 음식, 하룻밤 새 얼마 얼마가 오르는 아파트 그런 생활이 아득히 멀다.
 
어느 날 분주하고 황망한 걸음들 돌아보니 헛되고 헛되었다. ‘화장실 한 개 집에서 화장실 두 개 집으로 옮기는 것’을 생의 목적인 양 짓눌려 살아가는 도시에서 그는 뒤돌아 나왔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던가. 그때 그 역시 오십이었다.
 
아이들 대학 보내고 큰숨 돌리고 나니 자신의 삶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터 같은 서울에서 냉혹한 사업가로 살아남기를 거부했던 남편도 뜻이 같았다. 그즈음 그가 빠져들었던 게 도예였던지라, 우연히 답사 와서 본 이 마을에 매혹됐다.
 

▲ 입게 될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며 오직 홈질
하나로 한 땀 한 땀 고르게 기워낸 배냇저고리.
바느질이라기보다는 간절한 기도문 같다.

ⓒ 김태성 기자

 

 

오랜 세월 그릇을 구워 온 마을이었다. 영산강 하류에 차곡차곡 쌓인 황토가 좋고, 뱃길이 닿아 운송이 용이했던 몽강리엔 삼국시대부터 그릇 굽는 이들이 살았더라 했다.
 
그는 거기서 다 쓰러져 가는 옛 옹기장이들의 작업장과 마주쳤다. 백 년도 넘었을 것 같은 흙벽이 세월의 무게를 버텨내며 견디고 있었고 흙 대신 벽에 박아 둔 오래된 소줏고리들이 어떤 근사한 장식보다 빛나는 공간. 수많은 옹기쟁이들이 밟고 밟았을 발길로 바닥은 단단하게 다져져 있었다. 그 작업장 옆에 황토로 지은 전통 가마를 걸었다.
 
허나, 이제 그릇을 빚지 않은 지 오래다.

  
“내가 봐도 영 아닌데, 안 그래도 그릇 많은 세상에 굳이 더 보탤 필요 있나 싶어져서…. 안 굽고 내버려 두면 흙인데, 애써 가마에 들여보내 쓰레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 ”
 
그렇게 하나 둘씩 욕망을 내려놓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 중에 새삼 손에 들게 된 것이 바늘이었다. 번거로운 준비와 절차 없이도 어디서나 고요하게 제 안으로 잦아들 수 있는 작업이었다.
 
“바느질을 하다 보면 한 시 두 시가 넘고, 어느 때는 내 살 껍질을 떠도 몰라요.”

 
내가 바늘 같고, 바늘이 세상 같기도 한 몰아(沒我)의 시간들.

 
“이렇게 단순하게 살아도 되는 것을. 젊었을 때는 욕망이 많았어요. 이 나이가 되니까 편해지네요. 이제 소멸하는 일밖에 없다는 것. 그것을 안다는 것. 그게 그렇게 편해요.”

얼마나 빠져들었는지 굳은살이 배긴 손가락은 골무가 필요없을 지경. 그러니 그의 바느질 솜씨도 누군가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는 될 터. 

“많이 만들고 팔아서 돈을 만들어 볼까, 내 이름 걸고 전시회 같은 걸 해 볼까 그런 생각도 없어요. 물욕도 명예욕도 버리니 이렇게 자유로워요.”


누군가 알아주라고 하는 것 아니고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바느질. 만드는 중에 그 기쁨을 온전히 누렸으니 다 된 것은 누구라도 욕심내면 주어 버린다.

 

 

▲ 이 작업장과 마주치고 몽강리에 살기로 작정했다 한다. 백 년도 넘었을 것 같은 흙벽이 세월의 무게를 버텨내며 견디고 있는 옛 옹기장이들의 작업장.

ⓒ 김태성 기자

 


▲ 흙 대신 벽에 박아 둔 오래된 소줏고리들이 어떤 근사한 장식보다 빛나는 작업장 내부. 수많은 옹기쟁이들이 밟고 밟았을 발길로 바닥은 단단하게 다져져 있다.

ⓒ 김태성 기자

 

 


한 땀 한 땀 복을 짓듯


그 중 간직하고 있는 것 있다. 누비질을 한 배냇저고리와 타래바지. “누비는 애들이 전쟁터 나가면 백 집에 다니면서 떠달라고 해서 입혔다고 해요. 백 명의 엄마가 떠준 그 옷을 입으면 화살이 날아와도 안 맞는다고.”
  

ⓒ 김태성 기자

그 백 사람의 바느질을 받으려고 백 집의 사립문을 밀고 들어갔을 어미의 마음이 족히 화살을 막는 힘이 되었을 것이라 한다. 혹은 아이들의 무병장수를 빌면서, 혹은 전쟁터로 나가는 제 식구의 안위를 기원하면서 오직 정성으로 만들어낸 누비는 그저 바느질이라기보다는 간절한 기도문이었을 것이다.
 
한 올이라도 틀어지면 안 되고 자로 잰 듯 일정한 간격으로 땀을 떠야 하는 그 힘든 손누비를 기꺼이 추켜든 그.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이지만, 내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해가는 그 맛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에요.”
 
새삼스레 반짇고리 보듬고 살아가는 그를 보고 바느질이 골병 드는 일이라고 걱정을 하는 이도 있다. '마음 둔 곳에 몸 두고' 살아가는 일이라서 그런지 다행히 골병 들지 않고 산다.
 
자투리 천을 일일이 이어 붙이는 까탈스런 조각보 작업을 그는 즐긴다. 어떤 조각보는 조각을 부러 세지도 않았는데 무심한 채로 이어 붙여 놓고 보니 108조각이었다. '내 안에 108 번뇌가 있었나 보다' 싶었다.
 
“밥알 한 톨 버리는 것도 무서워하던 옛날 어머니들이 천 쪼가리 하나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두었다가 이런 조각보 한 장을 만들어냈을 것이에요.”


워낙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까닭에 자신이 쌓은 업장을 소멸하고 복(福)을 짓는 행위로 생각했다는 조각보. 돈을 들고 가면 못살 것이 없는 것 같은 세상에서 몸공 아니면 이루지 못할 그런 일에 몸을 쓴다.

 

▲ 손수 빚어 구운 옹기 우체통. 들꽃이 편지처럼 들어 있는 때도
있다.
ⓒ 김태성 기자


▲ 자투리 천을 일일이 이어 붙여 만든 조각보. 워낙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까닭에 자신이 쌓은업장을 소멸하고 복(福)을 짓는 행위로 생각했다는 조각보다. 돈을 들고 가면 못살 것이 없는 것 같은 세상에서 서용민씨는 몸공 아니면 이루지 못할 그런 일에 몸을 쓴다.

ⓒ 김태성 기자

 


거칠거칠 몽강리 할매들 손 잡고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시골에 틀어박힌 그에게 사람들은 자꾸만 왜 그러고 사느냐고 한다. 그릇 만든다더니, 가마 이름은 무엇이냐고 성가시게 물어댄다. 그러면 그는 대답한다. “냅둬요.” 세상이 어떻게 핑핑 돌아가는 줄 아느냐 책망하면, “냅둬요. 나는 바느질이나 헐란게.”
  

ⓒ 김태성 기자

몽강리 황토방에 뜨근뜨근 장작불 때 놓고 촌 할매들 속에 끼여 앉아 영산강 물길처럼 굽이굽이 흘러온 그 분들의 사는 이야기에 귀를 열어두고 손으로는 바느질을 한다. 대부분 혼자 살아가는 분들이다.


 “보일러에 지름 타는 소리가 돈 타는 소리처럼 무섭다”는 할매들이 이 좁은 방에 모여 훈짐을 나눈다.
 
옹기동네에서 옹기 하며 평생 살아온 이들. 플라스틱 나오기 전에는 애기 업고 옹기 이고 섬으로 어디로 옹기 팔러 다니던 그 이들이다. 신산한 삶 속을 지나오면서 무기처럼 약처럼 지니게 됐을 찰지고 위장한 욕들이 어떻게나 건지 처음에는 해석을 해 주어야 알아들을 정도였다.
 
서울서 온 저 멀끔한 여편네가 필시 별장을 짓고 살라나 보다 곁눈으로 보던 어르신들. 이제 그를 이무럽게 부려먹는다. ‘개밥 하나 사다 줘’ ‘사탕가리 좀 사다 줘’ ‘콩지름 좀 사다 줘’… 몽강리 할매들의 택배 아줌마가 된 그이.
 
 

ⓒ 김태성 기자

한 가지를 버리니 열 가지를 얻었다. 섬섬옥수가 고운 손인 줄 알았더니 노상 부지런히 지어내고  아끼지 않고 나누는 손이 젤로 잡고 싶은 손이더라고, 그래서 거칠거칠한 몽강리 할매들 손잡고 걸어가는 ‘냅둬요 아줌마’.

  
고맙다는 말 대신 대문간 옹기 우체통에 삐비꽃을 찔러 넣어 두고 짐짓 모른 척하는 이가 그 할매들 중에 있을 터이다. 이런 순정한 기쁨을 누리려고 그 먼 길 돌아 예까지 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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