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염색

도리깨질 '타악탁', 호두껍질로 물들이기

아기 달맞이 2011. 5. 27. 20:27

보라도, 분홍도 아닌 은은한 분위기의 호두껍질염색, 옛날엔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이는 것에도 사용했다.
 
줄무늬 실크스카프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한낮은 아직 땀방울 송글거리는 더위가 맴돌지만 매미 소리 요란하던 엊그제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가을의 전령인 귀뚜라미가 밤을 노래하고 뜨락의 감나무 그늘 아래엔 소슬한 바람이 살갑게 실렁인다.

마을회관 앞 평상에서 뜨거운 볕을 피하던 할머님들의 구부정한 허리는 어느 새 들녘으로 향하고, 나락을 돌보는 바쁜 손길, 밭으로 향하는 경운기의 탈탈거리는 소리가 부쩍 잦아졌다. 주인 따라 마실 나온 이웃집 염소도 길가의 풀로 점심 끼니를 때우는, 가을로 접어드는 어느 하루 우리 동네 풍경이다.


연하고 짙게 물든 면들을 이용해 만든 양면 다포들.
뒷면엔 얇은 소창에 물들인 것으로 덧대었다.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오랜만에 호두껍질로 물을 들일 참이었다. 몇 해 전, 천안의 선배가 보내온 귀한 호두껍질로 실크스카프를 물들였는데 인디안핑크빛의 은은한 빛깔이 참 고왔고, 그때 실크스카프 한 장에 어른거린 묘한 어우러짐이 내내 잊히지 않아 호두 열매 구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태풍이 나무들 뿌리를 세차게 뒤흔들고 지나간 작년 여름, 화개의 혜림농원에서 건너오라는 연락이 있었다.

“호두껍질로도 염색을 한다면서요? 비바람에 세 그루 모두 흔들렸는데 주워갈라요...?”

득달같이 내달려 가 보니, 수십 년 된 은사시나무며 알알이 열매를 빼곡하게 맺어가던 밤나무들, 수만 평 차밭의 차나무들... 이미 뿌리째 뒤흔들려 큰 곤욕을 치른 뒤였다.


면 스카프들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견과류를 즐겨먹는 나로선 땅콩, 잣, 호두를 입에 달고 산다. 시골에 오면서는 비싼 잣과 호두는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끼니는 걸러도 땅콩 담는 그릇을 비운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딱딱한 호두의 뾰족한 이마 한가운데를 장도리로 톡 쳐서 한 방에 반으로 쪼개져 드러나는, 그 안에 기름지고 고소한 호두 빼먹는 재미란. 괴산에서 물들일 때도 ‘호두피, 호두피’, 말만 했지 정작 가까이서 실제 호두를 싸고 있는 짙푸른 열매를 보긴 그때가 처음이었다.


누더기 스카프에 물들이고 모자도 만들었다.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손에 검은 물이 드니 조심하라는 안주인의 말에 면장갑을 끼고 손질을 하곤 마대 자루에 한아름 담아들고 건너왔다. 장도리가 닿으며 흠집이 났으니 자루에도 서서히 검푸른 물이 들어가고 있어서 얼른 쏟아내 삶았다. 실크스카프 몇 장을 주무르고, 정련을 해둔 손무명에 물을 들이니 실크스카프에 물을 들였을 때와는 또 다른, 보라나 분홍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묘한 색조를 띈다. 모자랑 다포, 소품에 몇 장 응용해 보니 잔잔하고 은은한 분위기는 역시 기대를 훨씬 웃돌았다.


천안에서 보내온 것으로 물들인 호두껍질염색의 첫경험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윗녘에선 좀체 구하기 어려워 호두과자로 유명한 천안표로 경험한 것을 늘 자랑삼았는데, 이곳 하동에 오니 호두 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아 내심 흐뭇한 중. 체에 받쳐 염료를 추출하고 스카프들을 담가 주무르던 때에 이웃의 아주머니 두 분이 마침 건너와 신기한 듯 바라봤었다.

“호두만 빼내 팔고 나머진 모두 버렸는데 이런 물이 들다니 참 곱네...”


일반 면(꽃무늬)과 호두껍질염색의 손무명으로 만든 챙모자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이웃 아주머님께서 버리지 않고 잘 말려 모아주신 호두껍질이 한 자루 그득 남아 있어 염색을 하려 했는데 작업장이 불편하다 보니 관리조차 뒷전이었나 보다. 비를 피하느라 귀퉁이에 세워둔 자루가 비바람 때문인지 들고양이들이 건드리고 넘나든 건지 수챗구멍에 거꾸로 처박혀 자루째 죄다 못쓰게 되었다.

이번에 호두껍질로 물들이겠노라 마음먹은 건, 얼마 전 검은 빛을 내는 염료로써의 호두껍질에 대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마음만 부풀고 기대는 곤두박질친 꼴이 되어버렸으니 올가을, 호두껍질 모아주신다는 아주머님의 약속을 또 기다릴 밖에.

산골에 내리는 밤이슬 속으로 이명처럼 울리는 도리깨질 소리 ‘타악탁~’, 울렁증이 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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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두에 대하여

식물성 식품인 호두는, 단백질(27%), 지방(64%)을 포함, 100g당 692㎉의 엄청난 열량을 내지만 당질 함량(5%)은 비교적 낮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호두를 즐겨 먹으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져 동맥경화, 고혈압 예방에 도움이 된다.
동의보감엔 ‘경맥(經脈)을 통하게 하며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수염과 머리를 검게 하고 살찌게 하며 몸을 튼튼하게 한다.’고 기록되었으며, 한방에선 변비, 기침, 구리독의 해독 등에 쓰인다.
호두껍질에는 요오드 같은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이 묻으면 갈색으로 쉽게 물들며 검은 암갈색을 띄기도 한다. 피부 조직 세포에 염색되는 것이기 때문에 비누로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으며 3~4일 지나면 자연스럽게 지워지기도 한다.



* 호두껍질로 염색하는 방법

호두나무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호두 열매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호두나무. 견과류를 좋아해 즐겨먹는 호두. 나무나 열매를 실제 본 건 작년 여름이 처음이었다.
딱딱한 호두를 둘러싼 외피로 물들인다.

딱딱한 호두를 둘러싼 열매를 이용해 물을 들인다. 옛날에는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이는 데 이용하기도.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잘 익은, 검푸른 빛의 외피는 망치 등을 이용해 떼어낸다.

한꺼번에 많은 옷감을 담그면 얼룩이 생기고 곱게 물들기도 어렵다.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실크와 면 들을 접히는 부분 없이 고루 잘 펴서 염료에 담그고 30여 분 주무른다.
-> 물에 헹군다.
-> 백반을 끓여 80°C 정도로 식힌 물에 담가 30여 분 고루 주무른다.
-> 물에 헹군다.
-> 위의 과정을 반복하여 원하는 빛깔에서 멈춘다.


호두껍질 염색물.
견과 면, 원단의 재질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상과 분위기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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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시간 차이를 두어 물들인 실크스카프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호두껍질로 물들인 염색물들.
견과 면, 원단의 재질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상과 분위기를 드러낸다. 호두껍질염색은 견뢰도가 좋은 편이지만 면에 물들일 때는 정련이 제대로 되어야 발색이 잘된다.(물들임1. ‘정련 이야기’ 참고)

손무명으로 물들인 홑겹 다포.
www.naturei.net 2006-09-11 [ 한지숙 ]

손무명으로 만든 홑겹 다포(茶布). 줄기는 ‘꼬집기기법’으로, 꽃봉오리는 아플리케로 만들었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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