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글

법정스님이 남긴 울림 깊은 글

아기 달맞이 2011. 5. 5. 02:13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유언에 따라 스님의 <무소유>를 비롯한 20여 권의 저서는 절판을 놓고 말들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완벽한 ‘무소유’,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상태, 無로 돌아가신 스님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를 원하셨지만, 우리의 영혼을 깨우던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글, 그리고 그 향기와 울림은 우리 곁에 맴돌고 있습니다. 생전 법정 스님이 대중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고, 깨우던 글들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생전의 말씀을 지면에 올리는 것조차 ‘번잡하다’ 하실 일이지만….
 
 
 
 

‘솨솩 쇄쇗 쇠솩 쇄쇗…. ’ 풀이 선 옷깃이 스치는 듯한 이 소리. 이 오밤중에 추위를 피해 남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날갯짓 소리가, 마치 어떤 혼령이 허공을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려오는 것 같아 나는 퍼뜩 맑은 정신이 든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내 영혼의 무게 같은 것을 헤아리게 된다. 그리고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기러기 떼를 뒤따라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귓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당신은 오늘 무엇을 보고, 무슨 소리를 듣고, 무엇을 먹었는가. 그리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현재의 당신이다. 그리고 당신이 쌓은 업이다. 이와 같이 순간순간 당신 자신이 당신을 만들어간다. 명심하라.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생각을 통해 자신이 살 집을 지어갑니다. 몇 평짜리 아파트만 생각하지 말고, 영혼이 살 집을 지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늙는 것이 서럽지가 않습니다.(조계총립 서울 분원 법련사 법회에서. <리빙센스> 1991. 5)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중에서)

1959년 티베트에서 중국의 침략을 피해 80이 넘은 노스님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왔었다. 그때 기자들이 놀라서 노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토록 험준한 히말라야를 아무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까?” 그 노스님의 대답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지요.”
자신의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단다. 그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이와 같다. 순간순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면서 산다. 문제는 어디를 향해 내딛느냐다. 당신은 지금 어느 곳을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는가.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여행은 떠날 때의 그 설렘부터 시작된다.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들를 곳을 헤아린다. 대개의 경우 목적지만을 염두에 두고 그곳만을 향해 허겁지겁 일로 매진하느라고 그곳에 이르는 과정을 소홀히 여기는 수가 많다. 그러나 좋은 여행은 목적지보다 그 과정과 도중에서 보다 귀한 것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오두막 편지> 중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영혼의 모음(母音)> 중에서)

 

사람의 생각이 어두우면 밝은 대낮에도 무서워지고 생각이 매인 데 없으면 캄캄한 밤중이라도 무서울 게 없다. 그러니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마음의 장난일 경우가 지배적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 (<텅빈 충만> 중에서)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듯이, 잎이 져버린 뒤 나무들은 비로소 침묵의 세계에 잠긴다. 발치에 흐트러져 있는 허상(虛像)의 옷을 내려다보면서. (<산방한담> 중에서)

모든 것은 한때다. 그 어디에도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이 몸은 生·老·病·死하고 어떤 대상이나 여건은 한때 이루어졌다가 이내 무너지고 흩어져 空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그 한때를 놓치지 말라. 주어진 기회를 잃으면 후회가 쌓인다. 그리고 그 한때에 속지도 말고 지혜롭게 대처하라. 무엇에 빠져들지 말라. 빠져들면 넘어진다. 그것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중에서)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삶에서 가장 신비한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뿐인 인연이기 때문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중에서)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순간순간 우리가 인간의 도리를 다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이웃과 함께 나눠가졌을 때, 그것이 쌓이고 쌓였을 때 지혜의 문이 열립니다. (조계총립 서울 분원 법련사 법회에서. <리빙센스> 1991. 5)

남이란 누구인가? 그는 무연한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나 자신이 아니겠는가. 그는 생명의 한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닌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그는 몸소 보여주었다. (<무소유> 중에서)

우리는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이다. 살아 있을 때 이웃과 따뜻한 가슴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자리를 잃지 않고 사람 된 도리를 지켜갈 수 있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친구 사이의 만남에는… 서로 영혼의 메아리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상호간의 그 무게를 축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은 친구일 것이다. (<오두막 편지> 중에서)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살지 마십시오. 이 계절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일기입니다. 생애 단 한 번뿐인 계절입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중에서)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마음이 모든 것의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한 마음을 쓸 때 자석에 쇳가루가 묻어오듯이 이 우주에 있는 선한 것들이 따라옵니다. (조계총립 서울 분원 법련사 법회에서. <리빙센스> 1991. 5)

목표 지점보다는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그 과정이 곧 우리들의 일상이자 순간순간의 삶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삶은 미래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입니다. 매 순간의 쌓임이 세월을 이루고 한 생애를 이룹니다. 무엇이든 당장 이루려고 서두르지 마십시오. 삶이 제대로 성숙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안으로 여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중에서)

사랑의 실천이란 자기와 타인이 서로 대립하고 있을 경우, 자기를 부정하고 타인에게 합일(合一)하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닫힌 나’로부터 ‘열린 나’로의 비약일 수 있다. 삶은 대결이 아니라 포용이기 때문이다. (<산방한담> 중에서)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들과 정을 나누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등 살아 있는 생물들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맑고 향기롭게> 2002년 2월 소식지 중에서)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중)

산다는 것은 관계입니다. 삶 자체가 복잡 미묘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때에 따라서는 많은 갈등을 일으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입장을 일단 바꿔놓습니다. 내 입장만 생각하려니까 무리가 옵니다. 남편이라면 아내의 입장에서, 자식은 부모의 입방에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타인이라 생각하지 말고, 내가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은 나의 다른 모습이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왜 자기를 미워합니까? (조계총립 서울 분원 법련사 법회에서. <리빙센스> 1991. 5)

믿음은 가슴으로 믿는 겁니다. 머리로 믿는 게 아닙니다. 머리는 따지는 겁니다. 믿음을 갖되 가슴으로 가져야 합니다. 머리는 지극히 관념적이기 때문에 절실하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늘 순수한 가슴에서 자라납니다. (조계총립 서울 분원 법련사 법회에서. <리빙센스> 1991. 5)

너의 하루하루가 너를 형성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 가정을, 지붕 밑의 온도를 형성할 것이다.
또한 그 온도는 이웃으로 번져 한 사회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너의 있음은 절대적인 것이다. 없어도 그만인 그런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영혼의 모음(母音)> 중에서)

남을 해치는 말을 들으면 부모를 헐뜯는 말과 같이 여기라. 오늘은 남의 허물을 말하지만 내일은 머리를 돌려 내 허물을 말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다 허망한 것인데, 비방과 칭찬에 어찌 걱정하고 기뻐할 것인가. (<텅빈 충만> 중에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무소유> 중에서)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그리고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많은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내게 잃어버릴 물건이 있다는 것이, 남들이 보고 탐낼 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적잖이 부끄러웠다. 물건이란 본래부터 내가 가졌던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기 마련이라 생각하니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남의 것을 훔친 그 과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빚이라도 갚고 난 듯 홀가분한 기분이다. (<무소유> 중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 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일기일회一期一會> 중에서)

인간다운 삶을 이루려면 될 수 있는 한 물건을 적게 사용하고 간소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것이 본질적인 삶입니다. 없어도 되는 것은 갖지 마십시오. 남 주기에는 아깝고 놓아두기에는 짐스러운 물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버리기는 아깝고 지니기에는 짐이 되는 것들은 내 것이 아닙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중에서)

아름다움에는 여백의 미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합니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포만 상태는 곧 죽음입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중에서)

세상을 하직할 때 무엇이 남겠나. 집, 재산, 자동차, 명예, 다 헛것이다. 한때 걸쳤던 옷에 지나지 않는다. 이웃과의 나눔, 알게 모르게 쌓은 음덕, 이것만이 내 생애의 잔고로 남는다. (2006년 부처님 오신 날 법회에서)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산방한담> 중에서)

새가 깃들지 않는 숲을 생각해보라. 그건 이미 살아 있는 숲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생기와 그 화음을 대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삶 또한 크게 병든 것이나 다름이 없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중에서)

지금 인류의 환경문제도 그렇습니다. 마구 소비하고 낭비하니까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지구가 감당을 못해요.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지구가 재채기를 한다고 봐도 좋아요. 사람이 나쁜 물질을 내보내기 위해 재채기를 하듯이 말입니다. 인간들이 자꾸 귀찮게 하니까 털어내기 위해 몸살을 앓는 것이지요. 지금 20세기 후반에 인류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길상사 창립 후 첫 법회에서. <우먼센스> 1997. 12)

현대 문명의 해독제는 자연밖에 없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기댈 데가 자연이다. 자연은 인간 존재와 격리된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크게 보면 우주 자체가 커다란 생명체이며, 자연은 생명체의 본질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자연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커다란 우주 생명체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을 함부로 망가뜨릴 수 없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차지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우리는 가난해진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실제로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안으로 넉넉해질 수 있다. 우리가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우리 인생이 비참해진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이 있다. 그리고 그 그릇에 차면 넘친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진정한 부자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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