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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수요일 오전 서울 성북구 길상사, 지난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의 초재가 봉행됐다. 초재는 49재 가운데 입적 이후 첫 번째 7일에 올리는 재이다. 초재가 진행된 극락전에는 법정스님의 영정과 비구 법정이라고 단촐하게 적힌 지방 아래 제사상이 차려졌다.
법정스님
법정스님 속명 박재철. 그는 1932년 해남에서 출생 대학 재학 중이던 1954년 고승 효봉 스님의 수제자로 불교에 귀의했다. 1975년 송광사에 머물면서 불심을 닦았고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산문집과 번역서들을 발표하며 법정의 정신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무소유
무소유의 정신이 탄생한 곳은 바로 송광사 뒷산에 지은 작은 암자 불일암이다. 그는 이곳에서 손수 밥을 지어먹고, 빨래를 하고, 텃밭을 가꾸면서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해왔다. 불일암에서 홀로 살던 중 명성이 높아져 불자들의 방문이 이어지자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암자를 떠났다. 이번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버리고 간 오두막이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가난은 부보다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34년 전, 책으로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런 그가 한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갔다.
다비식이 있던 날 만5천여 명의 추모객이 모였다.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 말라,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달라,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흔한 삼나무관도, 수의도 없었다. 스님이 입는 법복인 가사로 몸을 감싼 게 전부, 형형색색 만장도 꽃상여도 없었다. 법정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은 스님의 삶처럼 가벼웠다.
맑고 향기롭게
법정스님은 무소유 원칙에 따라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겠다며 당신 이름으로 간행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더 이상 스님의 가르침을 책으로나마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중들의 아쉬움은 컸다. 책을 통해 법정스님을 만나긴 어려워졌지만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삶의 행적 곳곳에 묻어있다.
대표적인 것이 1994년 3월 발족한 맑고 향기롭게라는 시민모임이다. 맑고 향기롭게를 화두로 세부덕목은 마음과 세상, 자연으로 정했다. 결식아동과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밑반찬, 양로원이나 지적장애인 요양원에서 놀아드리고 텃밭 가꾸고 이부자리 세탁하는 일, 입양아를 위한 후원 등 남들 눈이 돌아가지 않는 곳에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써서 하는 단체다.
이제 법정스님의 육신은 한줌의 재가 되어 흩어졌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스님의 말씀은 몇 겹을 싸도 배어 나오는 향처럼 세상에 그윽하게 퍼질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