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한국자생식물원
500여 희귀종 한자리… “유전자원 대물림”
깽깽이풀 인공증식해 일반에 보급 계획도
식물원은 대개 들머리에 화사한 꽃을 심어 입장객을 맞는다. 그러나 지난 18일 찾은 강원도 평창 한국자생식물원은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온실이 나왔다.
온실 들머리에 동글동글한 잎사귀가 탐스런 식물이 가득 자라고 있다. “산나물인가?” ‘희귀멸종위기식물 증식 온실’이란 팻말을 보고도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야산에선 이제 보기 힘들어진 깽깽이풀이 온실에 가득했다. 청초한 보랏빛 꽃으로 봄을 알리던 이 식물은 뿌리를 약재로 남획한데다 늘어난 야생화 동호인의 손을 타면서 멸종위기종이 됐다. 그러나 이곳에선 무려 5만 개체가 자라고 있다. 식물원 쪽은 “둘 곳이 없어 더는 증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중 휴면’이 80% 이상 발아 비결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깽깽이풀은 국립환경과학원이 2005년 전국의 분포지를 조사한 결과 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생육지 훼손이 심각한데다 빼어난 관상가치가 불법채취를 불러 “개체군 유지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창렬 한국자생식물원 원장은 “식물원에 깽깽이풀 군락지를 만들어 탐방객에게 보여주고 인공증식 증명서를 발급받아 일반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깽깽이풀은 인공증식을 통해 불법채취 욕구를 떨어뜨릴 첫 야생화가 된다. 강원도 홍천 등 자생지 3곳에서 채종허가를 받아 구한 씨앗은 80% 이상의 발아율을 보였다. 씨앗이 싹트려면 ‘이중 휴면’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 비결이었다. 이 식물원 김영철 희귀멸종위기식물 연구실장은 “여름 두 달 동안은 자생지의 여름 온도를 유지하고 겨울엔 다시 저온휴면을 시켜야 이듬해 봄에 싹을 틔운다”고 설명했다.
깽깽이풀이란 이름은 씨앗에 달린 기름기가 풍부한 부속물에 이끌린 개미가 씨앗을 가져가다가 떨어뜨린 씨앗이 싹튼 모습이 깽깽이 뜀을 한 것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 실장은 “자생지에서 관찰해 보면 씨앗의 90% 이상을 다람쥐와 쥐가 가져가는데, 이들이 숨겨놓은 씨앗의 일부가 싹튼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추가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자생지 찾아 훼손하거나 허탕칠 일 없어”
한편 이 식물원에는 500여 종의 희귀 자생식물을 갖추고 있어 야생화 동호인은 물론 연구자들의 발길도 잦다. 야생화 촬영을 위해 방문한 강태명(54)씨는 “희귀 고산식물을 공부하기에 좋다”며 “너도나도 자생지를 찾아 훼손하기보다는 허탕치는 일 없는 식물원을 방문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같은 자생종이라도 분포지별로 조금씩 형태가 다른 종을 갖춘 점도 두드러진다. 제주도의 고산 수목인 백리향은 센 바람에 적응해 키가 동전 절반 높이에 그친 반면 백두대간 자병산에서 온 백리향의 키는 이보다 곱절 이상 컸다. 반대로 강풍이 부는 강릉 바닷가의 두메부추는 작은 키였지만 백두대간 원산은 다른 식물과 경쟁하느라 키가 훨씬 컸다.
전국 산의 곰취도 이곳에 모여있다. 이 고산식물은 자생지에서 채취압력이 높기로 유명하다. 다양한 형질의 보전은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김영철 실장은 “생육지에 따라 형질이 달라지는 것은 종 분화의 출발점”이라며 “무슨 용도인지는 몰라도 후손이 활용할 유전자원을 남겨주는 것은 현 세대의 의무”라고 말했다.
평창/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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