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관련한 역사와 문화까지 느낄 수 있는 양평 세미원
칠팔월 한여름은 연꽃 철이다. 물밑 진흙바닥을 헤치고 꽃대를 세워, 무더위 속에 커다란 꽃송이를 피워올린다. 연꽃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강변으로 간다. 경기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6번 국도 신양평대교가 다릿발을 내리고 지나가는 팔당호변 습지에 세미원이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 옆에 조성한, 물과 꽃을 주제로 한 정원이다. 희고 붉고, 크고 작은 연꽃류 감상은 물론, 연꽃과 관련된 역사·문화, 연꽃을 이용한 음식까지 두루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중앙선 전철(양수역)이 개통돼 교통도 편리해졌다.
8월초 현재, 백련·홍련은 절정기를 지나 시들어가는 추세지만, 중순까지 일부 연꽃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연꽃이 아니더라도 열매맺은 연밥들과 부들, 개구리밥, 부처꽃·물옥잠·물억새 등 다양한 수생식물이 장관을 이룬다. 6만평의 터에 연과 수생식물이 심어진 18개의 못, 산책로, 쉼터, 특산물전시장 등을 갖췄다. 대부분의 시설과 조형물이 우리 민족의 역사·문화를 상징하는 것들이어서 거니는 동안 역사공부까지 곁들이게 된다. 지난 7월말 개관한 연꽃박물관의 전시물도 볼거리다.
입장료는 쌀·감자 등 지역 농산물로 돌려받아
세미원(�n멸�)은, <장자>의 ‘관수세심 관화미심’(觀�uw� 觀花美心·물을 보면서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라)에서 따온 말. 말 그대로 마음을 씻고 가꿀 만한 장소로 손색이 없다. 잡초로 덮이고 홍수 땐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던 곳을, 2004년부터 경기도가 조금씩 친환경 체험학습장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건 입장료로 낸 3000원을, 지역주민이 재배한 친환경 작물로 고스란히 되돌려받는다는 점이다. 세미원을 둘러본 뒤 입장권을 농산물판매장에 제시하면 3000원어치의 쌀·야채 등으로 교환해준다.
세미원 상무이사 이훈석씨는 “한강변을 친환경 체험교육장으로 만들면서, 그 혜택은 지역주민에게 돌리자는 게 세미원 조성 취지”라며 “여름철이면 평일 약 2000명, 주말엔 4000명 안팎이 찾으므로 매일 커다란 시장이 열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방치됐던 습지에 조성된 널찍한 정원엔 연인도 가족도, 스님도 계모임 아주머니들도 찾아와 거닐고 쉰다. 꽃 보고 물 보며 마음을 씻고 가꾸다가, 농산물 한보따리씩 들고 돌아간다.
태극무늬가 그려진 세미원 정문 이름은 불이문(不二門)이다. <유마경>의 ‘불이법문’(진리는 하나다)에서 따온 말로, 여기에선 ‘자연과 인간은 하나’란 뜻을 담았다. 문을 들고 날 때, 팔괘를 새긴 담에 전시한 태극기·기와편·자물통 등 일제강점기 유물과, 단군신화를 묘사한 벽화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문을 들어서면 울창한 숲 사이로 돌다리가 깔린 시냇물이 흐른다. 조성해놓은 숲과 물길인데도, 천연림 못지않게 울창하고 운치있어 거닐 만하다.
물길 건너편에는 광개토대왕비를 닮은 돌이 세워져 있다. 뒤쪽에 한반도 모양의 아담한 연못을 조성하고, 만주 땅이 되는 지점에 우리 민족의 기상을 담은 이 돌을 세웠다. 백두산 지점엔 바윗돌을 이용해 천지 모형을 만들고 물이 고였다가 흐르도록 했다. 이씨는 “백두산 주변에서 가져온 돌로 천지 모형을 만들고, 주변엔 천지 주변에서 자라는 고산식물들을 심었다”고 말했다. 못엔 백의민족의 뜻을 담은 흰 수련을 심었고, 주변엔 무궁화를 심었다. 체험학습을 온 학생들이 한반도 모형을 보며 ‘나는 이렇게 국토를 가꿔나가겠다’는 내용의 논술문을 작성하는 곳이라고 한다.
기도하는 여인 모습의 바위를 중심으로 전시된 수많은 항아리 분수들이 눈길을 끈다. 새벽마다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을 위해 비는 어머니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크고작은 항아리 365개를 이용했다. 분수대 옆에는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발표한 담화문 ‘삼천리 강산을 금상첨화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확대해 세워놓았다. 국내 첫 환경 관련 담화문이다.
‘삼세계효지가’(삼대를 이은 효자의 집) 현판을 단 정자 안엔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둘러앉아, 앞에 펼쳐진 ‘페리 기념 연못’의 백련을 감상하고 있다. 이씨가 말했다. “이 연못 연꽃이 다른 연꽃들과 좀 달라 보이지요? 세계적인 연 연구가인 미국의 페리 슬로컴이 자신이 개발한 연 21종과 수련 47종을 보내와 심어놓은 곳입니다.”
옆엔 ‘검은 잉어 연못’도 있다. 조선 중종 때 청주의 한 효자가 한겨울에 호수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 잉어를 잡아 아버지에게 드린 이야기를 담아 만든 연못이다. 첫얼음이 어는 11월말 이곳에선 중고생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얼음 깨고 잉어 잡기 체험’(선착순 200명)을 진행한다.
3대 가족은 '효행거'무료…내년엔 배다리 설치도
‘가족과 효’는 일관되게 세심원 조성물의 밑바탕을 이루는 요소다. 노부모·자녀와 함께 온 이들이 타고 세심원을 둘러볼 수 있게 한 전기차 ‘효행거’가 있다. 골프 카트를 개조한 것으로, 3대 이상이 함께 온 가족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4대를 갖췄다. 박물관 건물 4층은 식당인데, 단체로 온 학생들이 도시락을 먹는 장소다. 이곳은 매주 월요일(휴관일), 양로원 어르신들이나 장애인들을 초청해 무료로 연잎밥을 대접하는 장소로 쓰인다.
또 ‘페리 기념 연못’ 정자 옆엔 김정희 선생이 71살 때 쓴 ‘대팽두부과갱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가장 좋은 음식은 두부·오이·생강·나물 같은 것들이요, 가장 귀한 모임은 부부와 자녀·손자가 함께하는 것이다) 글을 확대해 세워놓았다. 호화로운 음식도, 떠들석한 모임도, 가족끼리 도란도란 모여앉아 먹는 밥상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연못 곳곳엔 선인들의 지혜를 더듬어볼 수 있는 다양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청계천 수위를 재던 수표, 조선시대 청화백자용문항아리, 청룡 용두당간 등을 본뜬 커다란 분수들과, 경주 포석정을 본떠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울 수 있게 한 유상곡수 등이다. 6번 국도가 지나는 신양수대교 밑 그늘은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쉼터다. 그늘을 따라 여러개의 탁자와 의자를 마련해놓았다.
다리 밑 한쪽엔 커다란 거울이 설치돼 있다. 불가에서 말하는 ‘업경대’(자신의 사후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를 본떠, ‘심경대’라 이름붙인 거울이다. 물과 꽃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을 아름답게 씻고 가꿨나, 마음을 비춰보라는 거울이다.
내년엔 세심원과 두물머리 쪽을 잇는 250m 길이의 배다리가 놓일 예정이다. 이훈석 상무는 “정조가 수원 화성에 행차할 때, 한강 노량진에 여러 척의 배를 잇대어 만들었던 다리”라고 설명했다.
지금 두물머리로 가려면 세심원을 나와, 양수리로 다리 건너가 좌회전해 10분쯤 걸어야 한다. 이곳에도 연꽃 가득한 연못들이 있고, 세심원에 속한 실내 전시공간 석창원도 있다. 석창원은 선인들이 가꾸고 즐기던 전통정원 모습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재현해놓은 조선시대 궁중온실인 창순루와 세종 때 전순의가 설계한 온실, 고려시대 이규보가 설계한 바퀴 달린 정자(사륜정) 등이 기다린다. 400년 넘게 두물머리를 지키고 선 거대한 느티나무 그늘 밑에 서면 주변이 모두 그림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그늘에 앉아 이 그림을 화폭에 옮기는 이들이 많다.
세심원 들머리 연꽃박물관에선 연과 관련된 각종 기록과 연을 이용한 장식품, 연 관련 전통음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 개관 기념으로 ‘한국인의 식생활 속에 담긴 연꽃문화’ 전시회가 15일까지 열린다.
양평/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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