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고즈넉한 고택 체험 - 대안 공간 충정각

아기 달맞이 2010. 7. 30. 23:31

도시의 아주 오래된 성장 법칙은 끊임없이 생산을 거듭한다는 것. 현대의 '건축'은 기존의 건물을 흔적도 없이 허물고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작업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속에 담겨 있던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들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생산 법칙을 조금 비껴 나가 레노베이션, 리모델링이라는 지속 가능한 건축을 선택한 공간에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처럼 한 꺼풀 덧대어 새겨진다.

서울 시내에 이런 고택이 아직 남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보존된 양옥집과 건물의 나이만큼 오래된 고목을 품은 정원을 가진 충정각. 게다가 주변도 시끄럽지 않아 한옥의 고즈넉함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다.
충정각은 독일 건축가가 지었다고도 하고 벨기에 영사관저였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서울 시내에 얼마 남지 않은 고택으로서 지켜져야 할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게다가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1백여 발의 탄피가 발굴되었다니, 이곳이 진정 역사적인 공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까지 일반 사택으로 이용되다가 2007년에서야 충정각이라는 이름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겸 갤러리가 되었다. 언제 어떻게 건축되었는지 정확한 내력은 알 길이 없지만 이곳 전 주인들의 이력을 추적해보니, 일제강점기(대략 1910년 무렵)에 완공되어 대략 1백 년쯤의 세월을 지나온 건물이라 한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공간

외관에서 보이듯 붉은 벽돌로 지은 양옥집은 웅장하고 화려한 유럽 건축양식을 반영한 듯하다. 현재 충정각 운영자인 문동수 대표도 이 같은 고택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그저 이곳을 지키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레스토랑 운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외부는 거의 손대지 않고 최소한의 내부 수리와 리모델링만으로 완성하여, 지금도 실내 곳곳에서 옛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충정각은 참 운이 좋았다. 건축가, 대학교수, 큐레이터, 예술작가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먼저 알아보고 이곳의 가치를 높이고자 노력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정각은 기획전시를 여는 대안 공간이 되어 공간의 나눔을 실천했고, 그 덕분에 오늘까지 재개발을 피해올 수 있었다. 경제적인 효율성을 따졌더라면 이미 허물어지고 없어져버렸을 곳이다. 그런 이유로 여전히 재개발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집'처럼 편안한 공간

발을 들이는 순간 '아, 따뜻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가정집이었던 곳이라 복도를 따라 방이 있었던 것처럼, 작게 나눠진 공간이 아늑함을 더했다. 특히나 어린 시절 누구나 꿈꾸었을 2층 다락방. 대략 8~9개 테이블이 놓였을 정도로 다락방치곤 작지 않은 공간이지만, 하늘을 비추는 작은 창이 난 서양식 다락방의 구조 그대로를 간직했다. 평일 오후의 나른함을 소설책 한 권과 보내기 딱 좋은 보물 같은 장소다.
가장 큰 휴식처인 '집.' 오랫동안 가정집으로 사용되며 이러한 역할에 충실했던 고택은 한 가족만이 아니라 다수를 위한 휴식 공간이 되었다. 개발을 피해갈 수 있다면 앞으로 1백 년, 2백 년의 역사를 쌓는 전통 있는 레스토랑이 되고 싶다는 충정각. 후손에게 물려주고픈 아름다운 유산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위치 서대문구 충정로3가 360-22 영업 시간 평일 오전 11시~오후 11시(전시 관람은 오전 11시~오후 6시), 공휴일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일요일 휴무 문의 02·31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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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괜한 감수성을 자극하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시 한 편을 써내려갈 것만 같은…. 이 충만한 감성의 자극은 충정각이 주는 놀라운 마법이다. 2 1층에는 무료 전시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기획 오지연 | 포토그래퍼 박유빈, 백경호 | 레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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