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같았던 그이와의 사랑도 지난한 결혼준비 앞에선 조금씩 색이 옅어지기 마련. 이럴 땐 서로에게 짜증만 내지 말고 함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복잡한 모든 일을 뒤로 하고, 오직 서로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고요한 신천지로 말이다. 넷북, PMP, MP3 플레이어 등은 집에 두고 떠나라. 핸드폰은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과감히 전원을 꺼두도록. 컴퓨터 모니터 대신 수줍게 패인 그의 볼우물에, 음악차트의 신곡 대신 조용한 박자로 오가는 그의 숨소리에 신경을 집중해보자. 지금 내 옆에 존재하는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오직 너와 나, 둘만의 세계-살둔마을, 포항 오어사
사진<좌>오지여행가들에게 유명한 강원도 홍천 살둔마을 전경
사진<우>원효대사와 혜공대사가 물고기 시합을 벌였다는 포항 오어사
맘만 먹으면 둘만의 세계가 아닌 곳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좀 더 쉽게 서로에게 집중하기 위해서는 번잡하지 않은 고요한 장소가 필요하다. 책과 함께 차를 즐기며 정적이 주는 기쁨을 누려보자. 도란도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게 될 것이다.
강원도 홍천의 살둔마을은 조선시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던 사람들이 정착하며 생긴 마을로, 산골자락 깊숙이 숨어있는 곳. 한국전쟁이 일어난 줄도 몰랐다는 주민들의 일화가 전해질 만큼 세상과 동떨어진 이 마을엔 ‘바람을 베고 잔다’는 침풍루(枕風樓)로 유명한 살둔산장이 있다. 집 앞에 내린천이 흘러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한적한 ‘템플스테이’를 꿈꿨던 사람들에겐 포항의 오어사가 제격이다. 불국사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삼국유사에 등장할 만큼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절을 둘러싼 운제산 자락과 오어지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절경을 이룬다. 비가 오는 날엔 은은하게 안개가 서려 더욱 운치 있는 곳.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길 따라 그려보는 행복한 미래-검멀레 해변, 드므개 마을
사진<좌>검은 모래와 깍아지른 절벽이 아름답게 조화된 우도 검멀레 해변
사진<우>계단식 논을 가득 채운 유채꽃이 인상적인 남해 드므개(두모) 마을
둘이서 나란히 호젓한 길을 걸으며 미래를 설계해 보는 것도 좋다.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길 뒤로 마음 속 앙금을 하나씩 내려놓자. 지금 생기는 트러블이 서로를 사랑해서 발생한 것이며,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임을 당신은 알고 있다.
우도에 자리 잡은 검멀레 해변은 특유의 검은 모래로 유명한 곳. 응회암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돼 만들어진 이 검은 모래는 관절염과 피부병 치료에 탁월해 맨발로 거닐기 좋다. 해변 끝에는 비밀의 장소처럼 동안경굴이 있어 더욱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매년 10월에는 이곳에서 작은 음악회도 열린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 꼭 만조시간을 확인할 것.
향긋한 꽃 냄새를 맡으며 거닐고 싶다면 남해의 드므개 마을을 추천한다. ‘드므’는 물을 채우는 큰 항아리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마을에 큰 항아리처럼 생긴 바닷가가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계단식 논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도 상쾌해진다. 지금은 유채꽃이 다 져가지만, 가을엔 메밀꽃 구경으로 또 다른 풍류를 즐길 수 있다.
결혼 10년차 부부에게 물어본 결과, 결혼 전 트러블은 가족관계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대답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이 때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의견. 그럼에도 굳이 이런 조용한 장소들을 고른 건 좀 더 서로에게 집중하길 바라는 기자의 욕심에서다. 왜 하나보다 둘이 더 좋았었는지, 그 초심을 잃지 않길 바라며 행복한 여행 떠나시길.
데일리웨프 이현화 기자<mooming@we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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