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 .야생화

조심조심 혼자 보고픈 봄꽃들의 ‘지각잔치’

아기 달맞이 2010. 5. 25. 00:20

 

강원 태백 두문동재 ∼ 분주령

 

▲ 태백의 분주령 일대는 지금 야생화들로 화려한 꽃밭을 이루고 있다. 왼쪽 큰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귀부인의 품격이 느껴지는 얼레지, 노란 빛이 선명한 노랑제비꽃, 그려넣은 듯 무늬가 멋스러운 노랑무늬붓꽃, 맑은 하늘색의 현호색, 귀하디 귀한 대성쓴풀, 활짝 잎을 연 꿩의 바람꽃, 정갈한 풍모의 홀아비바람꽃, 군락을 이뤄 꽃을 피운 한계령풀, 꽃술이 무늬처럼 보이는 개별꽃.
‘시간의 태엽’을 천천히 거꾸로 감는 여정. 이즈음 강원 태백으로 떠나는 여행이 딱 그렇습니다.

유난히 들쑥날쑥했던 봄날씨 탓일까요. 올해 태백의 시간은 두 달쯤 늦게 가는 것 같습니다. 산벚들은 아직도 환한 꽃잎을 달고 있고, 개나리진달래도 미처 다 지지 않았더군요. 자작나무들도 이제서야 여린 새잎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해마다 태백은 봄이 늦게 당도한다지만, 올해만큼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싶었습니다. 함백산이며 대덕산의 5분 능선 위쪽으로는 아직도 벗은 겨울나무들로 가득했으니까요.

올봄은 유독 ‘갈 지(之)’자로 오락가락 왔습니다. 강원도 산간에는 4월 말까지도 눈보라가 퍼부었습니다. 그러다가 불시에 봄의 기운이 번지면서 태백 일대의 벗은 겨울나무 둥치 아래서도 봄꽃들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태백의 야생화라면 단연 백두대간의 함백산(1573m)과 대덕산(1307m)을 잇는 분주령(1080m)이 최고입니다. 두문동재(싸리재·1268m) 정상에서 출발해 금대봉을 거쳐 분주령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말 그대로 ‘꽃길’입니다. 해발고도 1000m를 오르내리는 산길이라 겁부터 먹기 쉽겠지만, 두문동재에서 시작하는 산길은 ‘등산’이 아닌 ‘하산’의 부드러운 내리막입니다. 그 길가에 정해진 순서는 다 무시한 채 사태가 나듯 야생화들이 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구간은 산림청의 ‘산불특별대책기간’에는 철저하게 입산이 통제됩니다. 매년 통제기간이 끝나는 5월15일 이후면 한바탕 봄꽃들이 잔치를 벌이고 난 이후가 되기 십상이지요. 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현호색, 산괴불주머니, 양지꽃, 개별꽃, 한계령풀, 대성쓴풀, 족도리난, 홀아비바람꽃…. 예년 같으면 지금쯤 다 지고 말았을 얼레지도 아직까지 성성하게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습니다.

사실 그 꽃밭 길을 다 걷고 나서 고심했습니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아는 곳이라지만, 기사를 더 보태서 사람들을 더 끌어들이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해마다 길이 넓어져 가고, 누군가 꽃을 캐간 흔적들이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숨겨두는 것이 맞는 것인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분주령의 꽃밭을 이야기하기로 한 것은 누구든 그 꽃밭에 들면 저 스스로 피어난 우리 땅의 야생화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왜 그것을 지켜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란 믿음 때문입니다. 그 화려한 봄의 꽃잔치에 다녀오시겠다면 되도록 천천히, 부디 발밑을 조심하시고, 조심스럽게 다녀오십시오, 수십명씩 모여서 떠들썩하게 다니는 행락 말고, 소중한 사람 몇몇과 함께 조용하게…그렇게 다녀오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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