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눈 쌓인 산이 보고 싶다." 제주도 서귀포 법환리 바닷가에서 겨울을 나던 중 병세가 악화되어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얼마 전, 법정 스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줄곧 병원에 갇혀 계시다가 오늘 오전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그리고 곧 길상사로 옮겨졌고, 오후 1시 52분에 제자 스님들과 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렇게 이 사바 세계와 육신을 떠나셨습니다. 허공에 떠나는 스님의 혼과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씁니다. "이 육체가 거추장스럽다." 치료되었다고 믿었던 폐암이 작년 재발하면서부터 강원도에서, 그리고 제주도에서 치병을 하면서 스님께서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기침이 심했고,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체중이 점점 줄어 나중에는 걷는 일조차 힘들어질 때 스님은 자주 그러셨습니다. 이 육신이 나를 가두고 있다고. 새장에 갇힌 새를 보는 것 같아 뒤에서 눈물을 쏟은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제 그 새가 날아갔습니다. "나는 죽을 때 농담을 하며 죽을 것이다. 만약 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거추장스런 것들을 내 몸에 매단다면 벌떡 일어나 발로 차 버릴 것이다." 20여년 전부터 스님께서 해오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방사능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고 돌아오셔서도 삶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못했습니다. 누구든 스님을 쉽게 놓아 드릴 수가 없었고,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저런 치료로 고생하시다 입적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법정 스님과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한 인간의 모습이고 종착점입니다. 어디에서 여행을 마치는가보다 그가 어떤 생의 여정을 거쳐왔는가가 더 중요함을 우리가 알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2009년 6월 스님께서 제자 두 명과 저를 포함해 가까운 사람 서너 명을 불러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결연한 의지였고, 특별히 스님께서 우리를 불러 공식적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따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결국 송광사에서 불교 예법에 따라 다비식을 치르기로 정해졌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그때 스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장례식과 다비식이 어디서 치러지든, 어느 장소에서 그의 육신이 불태워지든, 그것은 단지 무상함이 드러난 결과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스님도 그렇게 여기시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작년에 하셨던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 여겨져 여기에 밝히는 것뿐입니다. "만나서 행복했고 고마웠다." 그나마 몇 마디 말씀을 하실 수가 있으시던 며칠 전, 스님께서 침대맡으로 저를 손짓해 부르셔서 저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나서 행복했고, 고마웠다고. 저도 지금 스님께 그 말씀을 드립니다. 만나서 더없이 행복했고, 감사했다고. 이 보잘것없는 한 중생을 만나 끝까지 반말 한 번 안 하시고 언제나 그 소나무 같고 산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주셔서 행복하고 감사했다고. 이 삶이 고통이고 끝없는 질곡이라 해도 또다시 만나고 싶다고. 해마다 봄이면 "꽃 보러 갈까? 차잎 올라오는 것 보러 갈까? 바다에 봄 오는 것 보러 갈까?" 하고 연락하시던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간다." 오늘 법정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서귀포를 떠나기 전 죽음이 무엇인가 하고 묻자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아마 육신을 벗고 맨 먼저 강원도 눈 쌓인 산을 보러 가셨겠지요. 그리고 그토록 좋아하시던 법환리 앞바다도 슬쩍 보러 가셨겠지요. 오늘 큰 산 하나가 산을 떠났습니다. 이 마음과 마찬가지로 그 산이 한동안 텅 비겠지요. 그러나 곧 꽃과 나무들이 그 공의 자리를 채울 겁니다. 사람은 살아서 작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덜 슬프다는 것을 오늘 깨닫습니다. - 2010. 3.11. 시인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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