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글

바람 소리만 가득한 법정스님의 산골거처

아기 달맞이 2010. 3. 13. 18:42

1992년 이후 수도했던 곳..인적 없고 자연으로 '가득'
(평창=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입적한 법정스님다비식이 열린 13일 법정스님이 1992년부터 머물며 수도했던 강원 평창군 오대산 자락의 일명 쯔데기골 산골 거처(居處)에는 바람과 새소리, 계곡의 물소리만 가득했다.

이 곳은 평창군 진부면∼강릉시 연곡면을 연결하는 국도에서 물이 무릎까지 오는 계곡을 건너고 발목까지 눈이 쌓인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이상 올라가면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산 중턱에 있다.

바로 앞 계곡에서 들리는 물소리와 나무 사이를 가르는 바람 소리, 처마 밑의 풍경과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만 가끔 정적을 깰 뿐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사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내린 봄 폭설이 녹아 지붕에서는 눈물 같은 물방울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지금은 깨끗하게 정돈된 말끔한 가옥이지만 법정스님이 출가하듯 참선을 위해 처음 이곳을 찾았을 당시 양철 지방에 다 쓰러져 가는 말 그대로 오두막이었다.

계곡 입구에 있는 마을 주민 김상기(73) 할머니는 "법정스님이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말 그대로 화전민이 쓰던 산골 오두막이었다"며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 후 깨끗하게 고쳐져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너와와 굴피로 지붕을 얹은 건물에는 굴피로 만든 굴뚝이 있고 처마 밑에는 난초가 새겨진 나무 현판과 풍경이, 스님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기를 원했던 대나무 평상과 지팡이 2개, 작은 의자 등이 지키고 있었다.

거처와 약간 떨어져 있는 흙으로 만든 해우소(解憂所.화장실)의 벽에는 '기도하라'는 작은 푯말이 걸려 있고 겨울을 나기 위한 장작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일자형으로 된 거처는 서재 겸 침실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큰 방 한 개와 옆으로 3∼4개의 방이 붙어 있는 형태로, 문살 사이로 서재로 보이는 방안에는 스님이 쓰던 그대로인 듯한 책상과 그 위에 촛대, 볼펜과 유리 주전자, 휴지, 스탠드와 침대, 의자, 벽에는 대형 벽시계와 액자가 소박한 모습으로 걸려 있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텅 빈 다른 방안은 오히려 가득 찬 곳이기도 했다.
법정스님은 '오두막 편지'에서 "내 소망은 단순(單純)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平凡)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自然)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代身)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라고 썼다.

김 할머니는 "스님은 거처로 드나드시면서 우리 집에 들어와 차를 한잔하고 가시라고 해도 폐가 된다며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며 "내가 농사를 지은 감자는 맛있다고 참 좋아하셔서 몇 번 드렸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했다.

다비식이 열린 이날 김 할머니는 "거처를 갈려고 집을 나섰지만, 계곡물도 건너기 어렵고 눈도 쌓여 있어 봄에나 가봐야겠다"라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